대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총장 선출제도와 그로 인한 파벌 인사 관행, 자기 사람 채우기 위한 ‘순혈주의’ 교수 임용 관행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학의 순수성이 총장 직선제와 파벌에 따른 인사 관행, 순혈주의로 얼룩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의 상아탑을 자임해 온 대학 총장 선거에 1980년대 학내민주주의 물결에 따라 교수 직선제가 도입되면서부터다. 교수들의 투표로 총장을 선출하면서, 총장 후보자별 파벌이 조성되고, 총장 당선 뒤 파벌인사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대학의 순수성을 헤치는 암적인 존재로 작용해왔다.
대학과 교수 사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총장 선출제도부터 손질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명문대를 중심으로 한 순혈주의 교원 임용 관행도 학교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있다. 자기 사람을 후배로 받아들이는 이런 관행은 ‘동종 학문간 교배’로 이어져 학문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해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 총장 직선제, ‘줄 선 교수들’ = 총장 직선제는 1980년대 민주화 바람을 타고 한 때 80여개 대학이 도입하기도 했다. 학문의 상아탑인 대학 운영을 교수가 맡아야 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전체 교수의 의견이 민주적으로 반영되야 함은 부정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총장 직선제는 불가피하게 총장 후보자를 두고 교수간 파벌이 조성되면서 선거 과열 양상을 보였다. 선거 과정에서 상호 비방이 빗발치면서 후보자 교수들의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다.
대표적인 사례가 후보자들의 논문 표절 의혹이다. 관행적인 자기 표절 문제 등 교수 사회 도덕 불감증을 해소하는 순 기능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전체 교수 사회가 싸잡아 비난 받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서울 소재 모 사립대 재단 관계자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 교수 집단이라면 사회적으로 존경받지만 기득권에 많이 안주하는 집단이기도 하다”면서 “대학 구성원이기보다는 스스로 기관을 자임하는 교수들의 특성 때문이다”고 비판했다.
총장 직선제는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감소 추세다. 2006년 한국대학교육연구소가 전국 4년제 사립대 162개 대학의 총장 선출제도를 조사한 결과 교수들만 참여하는 직선제는 10개 대학(6.2%)이었고, 학생 또는 직원이 부분 참여하는 대학은 23개대(14.2%)였다. 반면 재단 임명제는 76개 대학으로 과반수(58%)를 넘어섰다.
기존 총장 직선제의 폐단이 불거지면서 정부 차원에서도 재단 임명이나 학생과 직원의 참여를 독려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08년 10월 현재 전국 4년제 대학 200곳 중 총장 직선제를 유지하는 대학은 15곳(7.5%)으로 감소했다.
동국대는 지난 2006년 총장 선거에서 교수 직선제 대신 재단 선임으로 외부인인 오영교 전 행자부장관을 선출했지만 학내 논란은 여전하다. 동국대 재단 관계자는 “직선제는 규정도 없었지만 관행적으로 치러졌다. 선거 때 후보 중심으로 교수 사회 분열이 뚜렸했고, 학업이나 연구에 몰두해야 할 교수들이 정치화되는 양상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총장이 외부인사인 때문에 비협조적인 교수들이 적지 않아 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사립대 재단 관계자는 “재단 선임으로 바뀌더라도 교수들의 기득권은 없어지지 않는다”면서 “외부 총장을 교수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하기 힘든게 문제다”고 말했다. 그는 “태생적으로 제일 변하기 어려운게 교수사회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0년 총장 직선제를 첫 도입한 경북대는 외부 인사 영입 등 현행 직선제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어 주목된다. 경북대 교수회는 오는 19일 평의원회를 열어 ‘총장후보자 선출규정 개정 소위원회’를 구성해 총장 선출제도를 손보기로 했다.
총장 직선제가 그 동안 후보난립과 공약 남발, 선거운동 과열 등 폐단을 낳으면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데 따른 것이다. 교수회는 공청회 등을 거쳐 5월 말 평의회 의결을 통해 2010년 차기 총장 선출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총장 선출 이후 파벌 논쟁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반대로 재단이 총장 임명권을 가져가면서 대학 총장이 법인을 견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막이 없어지는 등의 또다른 우려도 나온다. 국립대의 경우에는 국립대재정회계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총장 임명을 내부 이사회가 해야할지, 정부 관여가 필요한지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과정에서 총장 직선제에 교수들뿐 아니라 행정 직원과 학생들 참여를 확대해 교수들만의 직선제 폐단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대학교육연구소 김삼호 선임연구원은 “총장 직선제의 폐단이 크다고 해서 법인 임명제로 가는 것도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 “교수는 물론 직원과 학생들도 당락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확대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근 두산을 재단으로 영입한 뒤 총장직선제에서 재단 선임제로 바뀐 중앙대의 경우 학내 논란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협의회장은 “총장 직선제의 문제가 없지않다. 어떤 교수들은 진절머리 치고 차라리 재단 선임하자는 의견도 있다”며 “그러나 기본적으로 직선제 폐지 분위기는 민주주의 실패다. 선거에 따른 폐해는 민주주의 강화하면서 치뤄야 될 비용이고 그런 단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 파벌 인사, '교수간 맞고소' 등 불협화음 끊이지 않아 = 교수들의 파벌 싸움이 교수들간 맞고소와 징계 회부, 임용 취소, 보직 해임 등으로 얼룩진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7월 한양대 간호학과 교수 5명이 학과에 신규 임용된 A 교수와 간호학과장 등 4명을 업무방해와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A교수 임용시 연구실적물을 허위로 제출한 게 뒤늦게 드러나 학과장이 보직해임 됐고, A 교수는 임용 취소 뒤 복직됐다. 학과장은 이어 A 교수 등의 복직 허용을 문제 삼아 고소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해 당시 해당 대학 모 교수는 “인사권을 둘러싼 교수간 파벌 싸움은 대학가의 고질적 문제”라면서 “교육과 연구에 몰두해야 할 교수들이 감정 싸움에 휘말리는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2월 이필상 고려대 총장이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논문 표절 논란으로 낙마하면서 총장 직선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재단 이사회는 총장 선출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로 하면서 후보자 대상 전체 교수의 예비심사제(네거티브 투표)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차기 총장 후보자 전원이 예비심사 결과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혀 재단과 교수간 갈등을 빚기도 했다. 비 고려대 출신 교수가 총장에 당선된 뒤 ‘교수들의 파벌주의가 깨진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결국 파벌주의을 넘지 못한 셈이 됐다.
문제는 총장 선출을 포함한 교수 사회 내부의 파벌 문제의 폐단이 한양대 사례처럼 법정에 서지 않고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김삼호 선임연구원은 “한양대 사건과 지난해 전남대 교수 논문 문제 등 모두 파벌주의가 작용해 일어난 사건”이라며 “그러나 이런 문제가 비리와 연루되지 않는 한 크게 드러나지 않는게 더 문제고, 법제도적으로 할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원은 “교수사회 스스로 의식교육이 필요하다. 스스로가 못하면 대학 교수 사회의 신뢰성 회복은 요원하다”고 자정기능 회복을 촉구했다.
■ 순혈 주의 = 특정 대학 출신을 교수로 채용하는 대학들의 ‘순혈주의’ 관행도 대학의 폐쇄성을 드러내고 있다. 순혈주의 관행 척결을 위해 정부도 지난 2002년부터 관련 법을 제정해 규제하고 있다.
대학교원임용령 제4조 3의 규정에 따르면, 교원 신규 채용시 특정 대학의 학사학위 소지자를 모집단위별 채용인원의 3분의 2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순혈주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서울대는 타교 출신 교원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지만, 2004년 7.5%에서 2007년 9.1%로 소폭 상승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서울대는 지난해 특정대학 출신 학위 기준을 ‘학사’에서 ‘박사’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은 대학교원임용령 개정을 교과부에 건의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또 ‘특정 대학 쿼터’ 기준이 ‘본교 타 전공’은 예외로 하고 있어 학부 전공과 다른 전공으로 임용하도록 하는 헛점을 갖고 있어 개선책이 요구된다.
실제로 2007년 7월 기준으로 서울대 교수 1752명 중 서울대 학부 출신 교수는 1593명으로 90.9%에 달한다. 특히 국어교육학·중어중문학·경영학·미학·지리학·의상학·소비자학·아동가족학 교수는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총장 선출에서도 순혈주의가 작용한다.지난 2006년 12월 한국대학교육연구소가 낸 ‘대학 총장 선출 현황과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3회 연속 모교 출신 총장을 뽑은 대학은 경북대, 서울대, 전남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경희대, 중앙대, 동국대, 서울여대, 원광대, 한신대, 용인대, 광주가톨릭대 등 14개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규모가 큰 지역 거점 국립대와 2만명 이상 정원 수도권 사립대는 모교 출신 총장 비율이 각각 44.4%와 70.0%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파벌에 따른 인사관행과 순혈주의는 또 능력있는 인재를 외면하면서 대학 구성원들의 경쟁력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김사열 경북대 교수회 부의장은 “스탠포드대의 경우 자교 출신을 25%이상 뽑지않는 등 대부분이 순혈주의를 멀리하고 있다”면서 “이들은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나라와 다양한 대학 출신을 뽑아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최근 포스텍 학생들 논문 실적을 보면 서울대를 앞서고 있다”면서 “포스텍의 경쟁력은 다양한 교수들의 경쟁관계에서 나오고 결국 학생들의 실력차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