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지리산에 방목한 반달가슴곰 두 마리가 야생의 상태에서 새끼를 낳았다. 그 소식이 전해질 즈음 서울에서는 ‘국민위원회’가 탄생했다. 여야는 방송법·신문법·IPTV법·정보통신망법 등 언론관련 4개 법안에 대해 논의할 사회적 기구로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이하 국민위원회)를 문방위에 설치·운영키로 합의했다. 여론 수렴과정을 거쳐 6월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키로 한 것이다. ‘국민위원회’의 활동기간과 여론수렴 기간은 석 달 열흘로 정해졌다.
정부와 여당은 방송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신문·대기업’ 자본의 지상파시장 유입이 필요하다며 ‘경제 살리기’를 위해 관련법안을 하루속히 처리하려고 한다. 또 비슷한 이유로 신문과 대기업이 종합편성과 보도전문 채널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차별적으로 익명 행사되는 인터넷상의 댓글 폭력을 다스려야 한다면서 여당은 사이버 모욕죄 규정을 제안했다.
반면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관련법안들이 ‘족벌신문과 재벌기업’으로 하여금 방송시장을 장악하게 하고 자신의 정치권력 기반을 확고히 하려는 시도”라며 “민주주의의 여론 다양성 기반을 근본적으로 붕괴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사이버 모욕죄는 인격권을 보호하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반대의견을 제압하려는 기만 술책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여론 소수자들의 의견 속에 내포된 소중한 가치를 찾아내고 다수 여론이 가지고 있는 허점을 발견해 수정·보완하는 절차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생명선이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론조사기관들이 지난 몇 개월간 실증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다수 국민 여론은 언론 관련법안에 대해 부정적이다. 특히 논란의 핵심인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여론조사에 참여한 국민의 60~70%가 반대의견을 표명해 왔다. 자칫 언론 관련법안을 찬성하는 국민을 찾아내거나, ‘자기 편’ 입맛에 맞게 숫자를 부풀리는 것을 도모한다면 그것은 ‘여론 수렴’이 아니라 ‘여론 조작’이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국민위원회’를 통해 국회가 수렴하려고 하는 여론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위원회 활동 결과물이 어느 정도의 효력을 가질 것인지, 위원회가 합리적·생산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자문기구’에 불과하다는 여당과 그 이상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야당·시민단체 간의 의견 대립은 ‘국민위원회’를 출발부터 삐걱거리게 한다. 위원이 독립성과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을 추천한 정당의 조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위원회’는 여야가 추천한 20인으로 꾸려졌다. 절반인 10명이 현직 교수이고 대부분 수도권 대학에 종사한다. 교수가, 그것도 수도권에 재직 중인 교수들이 국민의 절반을 대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 큰 걱정은 이들이 권력 정치가들의 100일 전투에 동원된 ‘대리전사’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것은 시간을 ‘생산’하고 미디어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발전의 발목을 잡고 대립·갈등하는 시간을 유예시킬 뿐이다.
인간이 되고자 염원한 곰과 호랑이에게 환웅이 준 기회의 시간이 석 달 열흘이다. 쑥과 마늘로 견뎌 내던 곰은 100일이 아니라 단지 스무 하루 만에 사람이 됐다. 지혜와 정성이 닿으면 시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위원의 절반을 대학 교수가 차지하고 있는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가 부디 곰보다 더 지혜롭게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한다. 곰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국민위원회'가 최소한 곰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