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 칼럼
최갑수
한국대학신문 칼럼
[최갑수 칼럼]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서울대 법인화 핵심은 '지배구조'
총장독재형 이사회 체제 가능성
내부혁신 뒷전...재정 확충에만 집착
최근 서울대는 ‘서울대 법인화 방안’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공개, 이를 토대로 공청회를 열고 학내 구성원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임기 내에 서울대 법인화를 추진하겠다는 이장무 총장의 의지가 격식을 갖춰 가고 있는 셈이다.
법인화의 핵심은 대학지배구조의 변경이다. 현재 서울대는 국가의 영조물로서 법적 근거는 갖고 있지만 독자적인 법인격을 부여받고 있지는 못하다. 따라서 대학발전을 위해서는 자율권의 확보가 불가결한데, 이를 위해 법인화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본부가 추구하는 법인화는 일본 도쿄대 식의 ‘특수법인’으로의 전환이다. 그리고 실제 대학지배구조의 모습도 도쿄대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도쿄대는 최고의결기구인 이사회 구성원의 과반수를 내부인사로 채우고 총장이 이사장을 겸하는 이른바 ‘총장독재형’의 지배구조인데, 보고서는 이를 ‘제1안’으로 채택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도쿄대는 총장직선제를 유지한 반면, 서울대는 그것을 없애고 교수업적평가에 따른 연봉제의 전면 실시를 꾀한다는 점이다.
사실 총장직선제는 법인화와 얼마든지 양립 가능한 것이고 연봉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학본부가 법인화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런 것들을 끼워넣기 식으로 끌어들인 것은 보고서 작성자의 편견 내지 반민주성을 드러낼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보고서가 법인화를 대학발전의 계기로 보면서도 대학발전의 관건을 재정확보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가 세계적인 대학이 되기 위해 “획기적인 재정확충, 창조적 교육·연구역량 등을 강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법인화가 필요하다”고 밝히는데, 사실 재정확충과 법인화는 아무런 논리적 관련성이 없다.
재정확보는 현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고(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법인화가 된다고 해 갑자기 대학재정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보고서에는 왜 그런 혼선이 나타나는 것일까? 법인화는 염불에 불과할 뿐, 재정이라는 잿밥이 관심의 초점이기 때문이다.
이는 현 서울대 집행부의 고민과 진짜 동기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그러기에 보고서에는 전략과 전술이 마구 뒤섞여 있다. 현 상태에서도 대학발전을 위해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들이 법인화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해 동원되는가 하면, 법인화와 관련해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사항들이 아무런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 듯 보고서는 명과 실이 상부하지 못하다. 그러기에 보고서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놓치고 있다. 보고서는 대학의 법인화가 세계적인 추세라고 밝히고, 미국 동부의 일류 사립대들이 모방대상임을 암묵적으로 전제한다. 그렇다면 의당 그 대학들의 발전이 그 대학지배구조 때문인지를 물어야 한다.
사실 미국의 3700개에 달하는 대학들은 주립을 포함해 유사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유독 100여 개 정도의 연구대학, 특히 동부 명문 사립대들만이 초일류대학으로 대접받는다면 관건은 나변에 있는 것이다.
국가 형성과정, 대학과 사회의 관계, 학문 형성과정, 지식인의 존재방식 등의 사항들을 면밀하게 따져야 규명될 수 있는 문제다. 또한 보고서는 국내외 대학의 법인화 사례를 분석하고 있는데, 법인화의 형식과 내용을 따질 뿐 그것이 그 대학의 발전에 기여했는지 하는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60년에 걸친 서울대의 역사에 대한 자기진단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1946년 서울대가 출범할 당시에 벌어졌던 이른바 ‘국대안 파동’에서 왜 미국식 대학지배구조(이사회)가 대학구성원들에게 격렬한 저항의 대상이 되었는지, 서울대가 어려운 여건에서도 이 정도의 발전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왜 우리의 고등교육에서 사립대학의 비중이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것인지, 고등교육의 공교육 재원의 비중이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인지 등을 따지지 않는다.
특히 현 국립대학체계가 우리의 고등교육사에서 갖는 의미가 분석되어야 했다. 바꿔 말하면 서울대는 자기개혁을 구상함에도 언제나 우리의 고등교육 전반, 특히 다른 국립대학들을 아우르는 품새를 보여 주어야 한다.
이번 법인화 논의가 서울대 스스로 체질을 개선하고 내부혁신을 꾀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활발한 의견소통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 행해지고 있는 설문조사는 법인화를 전제하고 있어 적절한 의견수렴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는 문명사적인 반성과 전환을 촉구하고 있으며, 법인화를 포함하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기회가 우리 고등교육 전반을 새롭게 고민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최갑수 칼럼 | 입력 : 09-03-30 오전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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