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교육이 산업현장의 요구와 동떨어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한국기술교육대(총장 전운기, 이하 한기대)의 재직자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산업체의 수요는 오히려 늘고 있다. 1992년 노동부가 설립, 인적자원개발(HRD)로 특화된 교육역량이 산업체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한기대가 산학협력을 위해 지난 2006년 설립한 제2캠퍼스(충남 천안시 부대동)에는 하루 평균 500~600명의 재직자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9층 건물이 산업체에서 파견한 재직자로 넘쳐난다. 참여 기업만 해도 305개 업체, 교육 연인원은 2008년 기준 2만627명이다.
한기대의 재직자 교육은 대기업과 협력업체간 상생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재직자 교육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는 것이다. 시작은 지난 2005년 삼성전자와 손잡고 첨단기술교육센터를 설립하면서다. 2006년 첫해에만 1만5000여명이 참여했다. 삼성전자 직원들과 50개의 협력업체 직원들이 함께 한기대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것이다. 한기대가 자랑하는 ‘광역별직업능력중심대학(BRIDGE)’ 사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브리지(BRIDGE)’ 사업으로도 불리는 이 사업은 ‘한기대·삼성’의 실험이 성공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3년 만에 참여기업 수는 7개 대기업과 298개의 협력업체로 늘었다. 삼성전자와 50개 협력업체가 ‘브리지 모형 1’을 형성했다면, 삼성SDI와 51개 협력업체가 2번째 모델을, 현대제철·현대모비스·ABB코리아 등이 잇달아 참여해 후속 모델을 형성했다.
한기대의 ‘브리지(BRIDGE)’사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을 강조한 노무현 정부도 주목한 사업이다. 지난 2007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한기대를 방문,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라고 지시한 것. 이어 노동부 주간 ‘컨소시엄허브사업단’이 발족했다. 한기대가 중심대학을 맡아 전국 83개 운영기관에 대한 △사업 컨설팅 △정책개발 △네트워크 구성 등을 지원하고 있다. 대학이 시도한 ‘신 산학협력 모델’이 정부의 국책사업으로 확대·발전된 케이스다.
재직자 교육은 대학에도 이익이다. 기업현장의 재직자를 교육시키면서 실무중심 교육을 강화할 수 있고, 이는 고스란히 한기대 학부교육에도 반영된다. 연구과제처럼 기한이 정해진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과정에서 구축된 기업과의 네크워크가 지속된다. 한기대가 2006년 상반기에만 삼성전자와 삼성SDI에 70명의 졸업생을 취업시킨 이유다.
이우영 산학협력단장은 재직자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파생되는 효과가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돼 학교의 교육·연구에 도움이 되며, 학생취업과 기업의 교육 기자재 지원, 발전기금 모금으로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기대는 1992년 개교 이래 최고의 취업률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체취업률은 95%, 정규직 취업률은 80.5%를 기록했다. 이같은 취업률은 한기대가 가진 특성화된 교육모델인 ‘KUT 기술교육모델’ 덕분이다. 한기대의 공학교육은 이론과 실험실습 교육이 50대50 비율로 편성, 운영되고 있다. 교수들도 산업체 경력을 갖춰야 임용될 수 있다.
이우영 단장은 “교수 채용 시 3년 이상의 산업체 경력을 필수 조건으로 하고 있다”며 “전공 교수의 산업체 파견이라는 ‘교수현장 연구학기제’를 실시함으로써 급속한 기술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교육모델은 타 대학 이공계 학생들의 취업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한기대는 지난 2004년부터 매년 이공계 미취업자 60명을 대상으로 기술교육을 하고 있다. 지식경제부가 주관하는 ‘이공계전문기술연수사업’을 한기대가 위탁받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이를 통해 배출된 미취업 이공계 졸업자 중 70~80%가 취업에 성공했다. 2007년엔 교육을 마친 학생 50명 중 39명(78%)이, 지난해엔 졸업생 50명 중 36명(72%)이 취업했다.
‘이공계전문기술연수사업’이 전국의 이공계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수요자중심산업인력양성사업’은 지역의 미취업자 100여명을 대상으로 한다. 이는 충청남도가 지난 2005년 지역의 이공계 미취업 졸업자를 교육 시켜달라며 한기대에 위탁한 사업. 이를 통해서도 한기대는 매년 70~80명의 미취업자를 취업시키고 있다. 수요자중심산업인력양성사업 수료자의 2007년 취업률은 78%, 지난해 취업률은 77%였다.
한기대 재직자 교육 어떻게 성공했나 -
협력업체까지 아우르는 재교육으로 기업부담 줄여

한기대가 2003년 11월 산학협력단 설립 직후부터 재직자 교육에 힘을 기울인 까닭은 대·중소기업간 기술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임금비율은 60%도에 미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재교육 비율도 낮다. 2006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기업 규모별 직업능력개발 참여율은 29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15%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재교육율은 57.6%에 달했다.
한기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에 입사하는 사람이 대기업 입사자보다 직무역량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도 재교육율은 대기업의 절반도 안 된다”며 “그럼에도 협력업체들이 대기업 공장 가동과 제품의 질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대기업은 이들까지 맡아 재교육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에 고민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이 협력 중소기업 직원들까지 한기대 재직자 능력개발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이유다. 더욱이 기업들은 대학에서의 교육이 산업현장과 괴리감이 있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2006년 산업기술진흥협회가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의 98.6%가 이공계 신입직원을 대상으로 재교육을 실시했다. 신입직원 1인당 필요한 재교육 기간은 대기업의 경우 7.4개월, 중소기업은 6.2개월이었다. 직원 한명에 대한 재교육 비용도 대기업은 2406만원, 중소기업은 1241만원이 소요됐다.
이럴 때 한기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브리지’ 사업을 들고 나온 것이다. 호응은 대단했다.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7개의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끌고 들어왔다. 대학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기술격차를 해소, ‘상생’을 선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 또한 한기대가 92년 개교이래 실무위주의 기술교육을 실시해 오면서 인적자원개발(HRD) 특성화에 성공했기에 가능했다.
한기대 재직자 능력개발프로그램의 설비제어 기초과정을 수료한 한 삼성전자 직원은 “현업에서 공압과 밸브를 다루며 지금까지 배운 것들에 대해 원리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지만 (교육을 마치고 나니) 이제야 설비를 보면 뭔가 트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삼성테크윈의 인턴 기술교육을 마친 강인철씨는 “이런 교육을 청소년 시기에 접하게 된다면 전문인력 창출에 효과가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직자 교육모델 브랜드화 하겠다”
[인터뷰] 이우영 한기대 산학협력단장

“한기대의 재직자 교육프로그램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고 싶다.” 한기대 산학협력의 핵심은 기술교육에 있다. 끊임없이 변모하는 신기술에 대비해 재직자 교육의 허브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재직자 교육은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대학 경쟁력 제고에도 보탬이 된다. 이우영 한기대 산학협력단장은 “재직자 교육을 하다보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프로그램·장비가 뭔지 알게 된다”며 “이공계 교육이 산업현장과 불일치라고 하는데 재직자 교육을 하다보면 이런 점은 자연히 해소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재직자를 대상으로 교육하다보면 교수들도 최근의 산업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교수들은 이를 학부 교육에 반영하게 돼 대학의 실무교육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한기대 학생들이 실무중심의 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에 미리 장학금을 주고, 우수학생을 확보하려는 기업들이 많다. 한기대도 이 학생들에 대해서는 담당 지도교수를 배정한다. 대학과 교과과정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기업도 필요한 교과목을 요구한다. 학생들은 방학 때 해당기업에서 실습을 받고,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그 기업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한기대 재직자 능력개발프로그램에는 7개 대기업, 298개의 중소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2005년 삼성전자와 50개 협력업체로 시작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 단장은 그 이유를 대학과 기업이 ‘윈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찾았다.
“기업은 자체 교육시설을 갖추고 전담인력을 확보해야 하는 부담을 해소할 수 있다. 기술은 시시각각 변화·발전하는데 이에 대응해 교육 인프라를 갖추려면 예산이 많이 소요된다. 대학은 본질적으로 신기술을 개발하고 교수법을 연구하는 곳이기 때문에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 강점이 있다. 기업과 대학이 필요한 연구과제를 서로 제안할 수도 있다. 아울러 교육모델을 만들면서 현장의 노하우가 축적된 기업과 연구개발에 강한 대학이 각자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점도 서로 이익이다.”
이 단장은 인적자원개발(HRD) 중심의 산학협력사업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브랜드화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기대는 산업체와의 계약학과제 운영, 맞춤형 교육을 도입한 1세대 대학 군에 속한다. 기업 현실과의 연계성을 이어나가는 작업을 해오면서 대학도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결과적으로 HRD 중심의 산학협력으로 승부했던 것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한기대의 재직자 능력개발모델을 국제적으로 브랜드화 하고 싶다. 2007년 GE(미국), 보쉬(독일), 덴소(일본) 등 세계적 기업 능력개발자들이 참석한 ‘국제 HRD 컨퍼런스’에서 한기대 재직자 능력개발모델을 발표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자신감을 갖고 세계에 널리 알려도 될 만한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