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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칼럼] 한국대학신문
[제언]인문학 위기는 '자업자득'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이다. 미국발 전 지구적 경제위기가 최악의 시기를 넘어섰는가에 대해 어떤 전문가도 확답을 내리지 못한다. 경제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한국 사회는 정치적 리더십의 위기와 북한문제 등이 겹쳐 한층 뒤숭숭하다. 불안과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삶의 전 영역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대기업 CEO를 비롯한 지도층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문화와 역사, 그리고 철학사상을 다루는 사설 아카데미에도 직장인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노숙자를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처세술 같은 실용서적의 인기가 시드는 데 비해 인문학 고전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인문학자가 볼 때 이건 희소식인가?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정말로 증대하고 있다면, 대학 안에서 지원자가 없어 인문학과가 문을 닫고 인문학 과목들이 수강생 부족으로 대거 폐강되는 사태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한국의 인문학 교수들이 인문학 위기론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 국가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새삼스럽게 제창되고 있는 인문학 위기담론은 일종의 허구라고 생각한다. 한국현대사를 돌아볼 때 인문학이 위기 아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경우에도 학문의 역사 자체가 학문 분화의 역사에 다름 아니었고, 이는 만학의 왕으로 정의된 인문학의 실권(失權)의 역사였기도 하다. 자연과학이 가장 신뢰할 만한 ‘세계설명이론’으로 떠오른 근대 이후 이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총체적 도전과 격변의 와중에서도 서양 인문학은 서구사회 안에서 일정한 위상을 잃은 적이 없다. 자신이 놓여있는 삶에 뿌리를 둔 문학·역사·철학의 형상화 작업으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인문학은 인문적 감수성의 원천, 즉 자신의 상상력과 개념으로 스스로의 절실한 문제들을 주체적으로 풀어내 인류 보편의 지평으로 격상시키는 실천적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한국인의 비근한 삶과, 한국의 제도인문학이 따로 놀았던 것이다. 대학이라는 제도의 방패 뒤에서 한국 인문학이 식물적 삶을 영위하고 있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결국 인문학 위기의 주된 책임은 인문학자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위기의 시대가 삶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본원적 관심을 촉발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위기의 강도가 세질수록 ‘의미의 추구’도 절실해진다. 사회와 세계에 대해 살펴보는 것, 과거에 대한 물음이 바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모색이기도 하다는 것,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 것 등은 모두 인문학적 물음이며 상상력의 근원이다. 진정한 인문학은 이런 관심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지축이 흔들리고 삶의 거처가 균열되는 위기의 순간이야말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최적의 시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소진시키는 일상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인간은 때때로 그리고 홀연히 ‘인문적 진실’의 계기에 직면한다. 실용적으로는 쓸모없어 보이는 무용(無用)의 인문학이 크게 쓰이는 대용(大用)의 가치를 갖는 건 이 때문이다.

대학을 중심으로 고착된 한국의 제도인문학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보통사람들의 인문적 관심에 과연 제대로 부응할 수 있겠는가?
한국대학신문 칼럼 | 입력 : 09-04-08 오후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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