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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 단과대 자율운영 확산
경희·고려·동국·한양대 등 단과대에 자율권 부여...지표상승 등 긍정평가
‘부익부 빈익빈’ 심화 우려...모금실적 평가 “총장 책임 떠넘기기”주장도
“42명의 총장이 경희를 이끌어 갑니다.” 경희대가 요즘 대학광고에서 자주 쓰는 카피다. 42명의 단과대학장·대학원장이 인사·예산권을 갖고 대학을 끌고 가게 하겠다는 대학 방침이 담겨있다. 지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자율운영제를 시범 실시한 경희대는 올해부터 이를 전체 단과대·대학원으로 확대 시행한다. 학(원)장에게 인사권과 예산권, 교육과정 편성권까지 부여하는 것이다. 대신 해마다 평가를 해 그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단과대 예산의 5~10%정도)가 차등 배정된다. 대학측은 각 단과대가 제출한 5개년 발전계획에 근거해 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단과대간 선의의 경쟁을 기대하고 있다.

단과대 자율운영은 단과대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 운영성과를 평가해 인센티브 등을 차등 배정하는 것이다. 총장과 대학본부가 통제하던 하향식 대학 경영에서 벗어나 단과대 간 선의의 경쟁을 유발시켜 전체 대학의 경쟁력을 끌어올리자는 취지다.

현재 단과대 자율운영을 표방한 대학은 경희대를 비롯해 고려대·동국대·서강대·아주대·한양대 등이다. 연세대와 중앙대는 제한적인 자율운영을 택하고 있다. 연세대는 경영대와 공대에만 자율운영권을 주고 있고, 중앙대는 일부 운영비만 학장 재량에 맡기고 있다. 두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은 단과대에 자율권을 주고, 평가를 통해 인센티브를 차등 배정하고 있다.

이미 2~3년 전부터 단과대 자율운영을 실시해 온 대학들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단과대학 자율적 책임경영제’를 운영해 온 아주대는 국제화 지표와 전임교수 강의비율에서 효과를 봤다. 김민구 기획처장은 “국제화 지표 중 영어강의비율은 (책임경영제) 시행 전 5%에서 지금은 11%까지 확대됐다”며 “전임교수 전공과목 강의비율도 90%에서 95%로 늘었다”고 밝혔다.

동국대는 2007년부터 단과대 자율운영을 실시해 왔다. 각 단과대가 재정수입과 인센티브를 합산해 산출한 총액 예산을 자율 편성·집행하는 ‘총액 자율예산 배정제’와 ‘인센티브제’를 실시해 온 것. 이 대학도 자율운영 실시 이후 교수 연구업적 등에서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김승용 경영평가팀장은 “2007년과 2008년 평가결과를 분석해 보면 평가지표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며 “국내외 저명저널 게재 논문수가 50% 상승했고, 외부연구비는 32%, 영어강좌 수는 200% 상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율경영에 대한 부작용도 우려된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단과대별 ‘부익부 빈익빈’현상의 심화다.

올해부터 단과대 평가를 통해 예산을 차등 배정하겠다고 밝힌 고려대는 최근 △전체 교수 수 △외부 연구비 수주액 △SCI 논문 편수 등을 기준으로 60억원을 자율 예산을 차등 배정했다. 이번 예산 배정에서 수위에 오른 곳은 공과대·생명과학대 등 이공계열이었다. 한재민 기획처장은 “많이 받아간 단과대학 중엔 10억원을 넘게 배정받은 곳도 있으나 적게 받아간 쪽은 수천만원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3가지 지표에서 하위권을 기록한 문과대 등은 적은 예산을 배정받았다는 말이다.

지난달 17일‘단과대 책임경영시상’을 진행한 아주대도 마찬가지다. 아주대는 이날 6개 단과대와 14개 학부를 대상으로 평가를 진행, 우수 단과대(학부)에 총 1억7900만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여기에서도 공학계열이 두각을 나타냈다. 연구역량에선 전자공학부가, 교육역량에선 기계공학부가, 국제화역량부문에선 화공신소재공학부가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논문 편수나 연구비 수주액 등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인문분야나 순수학문 쪽의 불이익을 우려한다. 자율운영이 단과대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재민 고려대 기획처장은 “기본적으로 한정된 자원을 모든 단과대에 똑같이 배정하긴 어렵다”며 “단과대 간 자율경쟁을 통해 잘하는 데는 더 주고 못하는 데는 적게 주기 때문에 그런 우려가 나올 수 있다”고 인정했다.

학문적 특성이 다른 단과대들을 일률적 잣대로 평가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한 사립대 문과대학장은 “인문학 분야는 논문 편수와 연구비 수주액에서 이공계열을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에 기준을 달리 적용해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학들도 이 점을 감안해 평가지표 설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2006년부터 목표관리 경영제도를 실시해 온 서강대는 공동지표인 교책지표(70%)와 단대별 목표인 특성화지표(20%) 등을 적용하고 있다. 이중 △연구업적 △발전기금 △외부장학금 수혜율 등을 평가하는 교책지표에선 단과대별로 자율적으로 목표를 설정 토록하고, 평가는 전년대비 실적으로 평가한다. 서정목 문과대학장은 “단과대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달성 여부를 평가받기 때문에 인문학분야라고 해서 불이익 받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아주대 김민구 기획처장도 교내 인문학 분야의 우려를 받아들여 “교육의 질적인 요소를 평가할 수 있는 정성 지표를 개발하는 중”이라며 “자율적 책임경영제 시행 2단계를 맞는 2010학년부터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통상 2년 임기의 학장이 연간 평가를 잘 받기 위해 가시적 성과에만 집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 학기 ‘학장리포트’를 통해 학장의 성과 평가를 하는 대학도 있다. 단대별 연구실적, 발전기금 모금실적, 학생 평가 등이 상세히 기재된 리포트가 보직임명 등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한 사립대 교수는 “학장들이 단기적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한 사업을 벌일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연구와 교육에 매진해야 하는 대학의 목표와 상충되는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평가지표에 발전기금 항목을 포함한 점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총장과 대학본부가 할 일을 단과대에 떠넘기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사립대 총장을 지낸 한 대학 교수는 “학장의 발전기금 모금 실적 등을 평가해 인센티브를 차등 배정하겠다는 것은 총장이 해야 할 책임을 단과대에 떠넘기는 것”이라며 “그럴 경우 모금능력이 떨어지는 인문학이나 순수학문 분야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하영 기자 (press75@unn.net) | 입력 : 09-05-04 오전 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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