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일,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우리나라 10개 국공립대학이 2007년에 ‘한국과학재단과 한국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발주한 연구과제를 대상으로 연구비 집행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는 “연구비 집행 전반에 관행적인 부당 집행과 낭비 요인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익위가 밝힌 주요 사례는 연구보조원 인건비를 부당하게 청구?유용, 연구와 무관한 개인적 여행 경비 등으로 출장비 청구 수령, 연구에 사용한 기자재를 기부 채납하지 않고 개인 용도로 사용, 회의비 등을 식비나 음주 비용으로 사용, 연구간접비를 총장 업무추진비로 처리 등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이전부터 누누이 지적돼 왔던 것으로 우리 대학 사회가 여전히 연구비 관리에 있어 개선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들이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연구자의 의식 부족과 철저한 관리?감독체계가 구축되지 못한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먼저, 연구비를 업무추진비 등으로 유용한 것은 대학 사회의 오랜 관행이고, 연구기자재 기부 채납을 하지 않은 것은 업무 처리 지연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으나 투명하고 올바른 연구비 집행을 위해 반드시 탈피해야 할 과제다. 연구보조원 인건비 부당 집행 문제는 우리 대학 사회의 고질적 문제로, 연구책임자인 교수와 연구보조원 간의 종속적 관계와 학문후속세대 육성에 대한 무감각이 만들어낸 병폐라 하겠다. 학문후속세대 양성에 대한 책임의식과 연구자 간의 민주적 관계 수립을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연구비 횡령은 공익을 위해 투자한 공적 자금을 횡령한 범죄 행위다. 간혹 연구비 중 연구책임자들에게 돌아가는 인건비성 경비가 적다는 문제제기도 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연구비 횡령의 이유가 될 수는 없으며, 무엇보다 엄격한 법적용과 처벌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연구비 부당 집행에 대해 연구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정부나 대학 당국의 연구 지원과 관리?감독 책임 또한 적지 않다. 권익위에서 밝힌 한 사례에 따르면, 지방 소재 모 대학이 민간기업에 취직한 연구보조원에게 2개월 간 지급한 인건비가 80만 원이었고, 다른 대학에선 연구보조원 인건비를 외국인 연구보조원 등록금, 기숙사비 등으로 지급해 적발되기도 했다. 재정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현재 수준의 정부와 대학 당국의 재정 지원으로는 학문과 대학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재정 지원과 함께 투명한 연구 관리를 위한 제도 정착도 시급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몇 년 전부터 연구비 중앙관리제도, 인건비 풀링제, 연구비 대학 전용카드 사용 의무화, 참여연구원의 인건비 각출 및 일괄관리 금지규정 명문화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번 권익위 발표가 아쉬운 점은 이러한 연구 관리 제도의 도입과 운영을 통해, 우리 대학의 연구 관리가 얼마나 투명하고 깨끗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비교?검토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권익위 지적처럼 나아진 게 없다면 추진 정책 자체에 대한 전면적 제고가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권익위는 “그동안의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년 예외 없이 발생하는 일부 국?공립대학 교수의 연구비 횡령으로 뿌리 깊은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다고 했으며, “이번 실태조사가 해당 대학 연구과제 전체가 아닌 일부만 표본으로 점검한 결과라는 점에서 전체적인 부당집행 정도는 더 심각할 것”이라고 했다.
권익위는 이명박 정부 들어 국립대학에 대한 조사 결과를 세 번 발표했다. 작년 기성회 회계와 발전기금 운영, 올해 연구비를 조사 발표한 것이다. 국립대학 기성회 회계와 발전기금의 문제는 정부가 재정?회계법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로 들었던 만큼 재정?회계법 도입을 위한 사전정지작업이란 오해를 낳기도 했다. 지금 한나라당은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을 6월내 통과시키겠다는 목표다. 연구관리 조사?발표가 개선 과제 도출 없이 국립대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대하고 있어 또한 ?국립대학 재정·회계법?도입을 부추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형평성을 잃지 않은 활동으로 정치적 오해가 없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