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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정정기간' 유명무실
교수출장·연락두절 예사…학생들만 속앓이
절차 까다롭고 복잡해 원래 도입취지 못 살려

서울의 한 대학을 다니는 김모씨는 지난 학기만 생각하면 억울하다며 수강권을 침해받았다고 털어놨다. 성적이 공부한 만큼 잘 나오지 않아, 학기말 성적 정정기간에 성적 정정 신청을 했지만 교수가 일방적으로 거부했기 때문. 그는 “성적 정정을 신청했는데 교수님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B학점도 괜찮은데 얼마나 더 성적을 올리려고 하는냐’는 꾸지람뿐이었다”며 “정당하게 성적 정정을 신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는 명백한 수강권 침해”라고 말했다.


성적 정정기간이 유명무실하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성적 정정기간이란 교수가 성적을 최종 확정하기 전, 학생이 성적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기간으로, 사유가 타당할 경우 성적을 정정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성적 정정기간의 도입 취지와 달리 매 학기 교수와 학생 간의 성적 정정으로 인해 충돌이 발생하고 있지만 별다른 개선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성적 정정 신청 시, 성적 확정 유예기간이나 성적 재심 등 보완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1일 대학가에 따르면, 대부분의 대학들이 기말고사 후 성적 정정기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하고 있다. 정정기간은 성적 공시 여부와 관계없이 평균 일주일. 교수가 성적 정정기간 마감 하루 전에 성적을 입력하면 사실상 성적 정정은 힘들다.


가톨릭대 사회학과 김모씨는 “성적 정정기간에 성적을 올리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경우”라며 “성적 정정기간에 맞춰 성적을 입력하는 교수님도 있지만 정정기간이 다 돼서 성적을 입력하는 교수님도 많다. 이런 경우 성적 정정은 하지 말라는 소리”라고 말했다.


경기대 학생 커뮤니티 ‘거북이’에는 성적 정정기간에 교수를 성토하는 내용의 글이 수십 건 올라와 있다. 성적 정정기간이 ‘성적 무조건 납득 기간’이라는 것이다. 이 대학의 한 학생은 “성적 정정이란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한 것 같다”며 “성적 정정기간에 교수님이 중국으로 출장 가셔서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성적 정정기간에 교수님이 전화기를 꺼 둬서 연락할 방법이 없다. 성적 정정기간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며 “교수님이 명확한 근거로 채점했다면 이에 대한 이유를 성적 정정을 신청한 학생에게 알려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성적을 정정할 경우 절차상의 복잡함 때문에 담당 교수가 성적 정정을 기피하는 경우도 있다. 이화여대는 성적을 정정할 경우 총 7가지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성적정정원 △성적정정 경위서 △성적기준표 △출석부 사본 △교과목 성적표 사본 △성적 정정 신청학생 중간·기말고사 답안지 △성적 산출에 들어간 모든 자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성적을 정정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 대학 국문과 이모씨는 “성적 정정을 신청하려면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의 제기를 잘 안 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성적 정정도 학생의 권리인 만큼 절차를 간소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수들은 성적 정정과 관련해 무조건 학생들 입장만 들어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특히 고학년의 경우 취업을 앞두고 타당한 이유 없이 성적을 올려 달라고 하는 등 골치를 앓고 있기 때문.


정충교 강원대 기획처장은 “일부 교수들이 성적 정정기간 마감 직전에 성적을 입력하거나 연락을 끊는 등의 행위는 개선해 나갈 부분”이라며 “학생들의 요구를 전부 수용할 경우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학점 인플레 현상이 더욱 심해진다”고 말했다. 청 처장은 이어 “학기 말에 한 번 성적을 산출하는 것보다 중간중간에 성적을 여러 번 공지하면 학생들과 성적 정정에 대한 불필요한 마찰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거용 한국대학교육연구소장은 “교수 입장에서 다소 귀찮더라도 성적 정정기간에 채점이나 점수 합산 등 잘못된 것이 없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며 “성적 정정의 기준선을 확실하게 한 다음, 학생이 정정을 신청했다면 재심 등을 거쳐 학생과 교수가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혁 기자 (blinddance@unn.net) | 입력 : 09-10-26 오전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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