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군대라는 화두를 떠올리게 된 것은 국무총리 임명동의를 위한 국회청문회 때문이었다. 총리 임명자의 군문제와 관련하여 격론이 벌어졌지만, 원래 정치적 맥락에서 밝혀질 진실이란 그가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뿐이고, 그의 행위의 정당성 문제는 개인적 친소관계와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갈릴 것이라는 짐작은 어려운 부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을 자극하는 부분은, 정총리가 서울대 총장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서울대 총장이었다면 그의 교육관이 한국 교수들의 교육관을 어느 정도 대표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과연 그가 혹은 이 땅의 교수들이 진심으로 군대를 무엇이라 생각할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군 문제가 필자의 강의시간에 문제되는 때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논의될 때이다. 필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제도적 차원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주제는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지금 다루고자 하는 것은 개인에게 군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함축과 그에 대한 생각에 깔린 사상이다. 군대를 개인주의적으로 생각하면, 군대는 개인 발전에 있어 하나의 장애물 정도가 된다. 내 자유의 침해 요인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군대는 가능하면 안 가는 게 좋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상수다. 구지 군대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남자답게 되려면 군대를 꼭 가야 한다거나 군대를 나와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마초이즘이나 성공의 방편 정도의 생각일 뿐이다. 만일 병역의무는 국민으로서 져야할 마땅한 의무이고, 나는 대한민국 국가 속에서 내 삶을 펼쳐야 할 존재하는 개인으로 인지하고, 국가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할 뿐 아니라 기쁨이 된다고 말하면, 이는 전체주의적이라거나, 국가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사실상 이러한 어법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 유신 시대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활용한 수사법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중요하고, 군대가 필요하다는 것은 다 알지만, 우리는 어떤 논리로 이것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가 문제이다. 문제는 군대를 생각하는 관점의 문제이다. 개인의 부단한 발전을 삶의 목표로 설정하고, 자유란 간섭 없음이라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관점으로는 병역의무를 부담으로 느끼지 않기가 어렵다. 결국 개인은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고, 개인의 발전이 공동체에 대해 갖는 의존성을 바탕으로 시민의 덕성을 중심으로 생각을 전개할 수 있어야 병역의무가 부담이 아니라 자신의 자율적 삶의 한 부분임을 인식할 수 있다. 전자의 사고방식을 보통 자유주의적이라 부르고 후자의 방식을 공동체주의적 혹은 공화주의적이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보면 공동체주의적이었던 우리 사회에 자유주의적 관점이 들어오면서 개인의 인권이나 자유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개인에 대한 존중이 강화되었다. 우리의 전통적 사고의 폐해에 대해 자유주의적 사고는 교정적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사실상 전통적 사고를 대체해버린 경향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사회의 많은 문제들의 뿌리가 자유주의적 사고에서 등장하므로, 최근에는 학자들이 공동체주의 혹은 공화주의에 대한 관심들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를 고려할 때 공동체 중심적 사고는 복고를 의미하고 과거의 폐해와 나쁜 생각의 부활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이 존중되고, 자유주의적 자유 개념과 병존할 수 있는 공화주의적 사고에 대한 고민이 우리의 문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병역의무가 문제의 초점이 될 수 있다. 군대의 필요성이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으로 묘사되거나, 애국심에 대한 호소로 일관해서는 곤란하다. 병역의무가 복고와 수구의 논리로 미화되거나, 마초이즘에 바탕을 둔 ‘남자라면 반드시’라는 논리로도 곤란하다. 자유주의적 사고에 훈련된 오늘의 젊은 세대들이 애국심과 공동체에 대한 필요를 스스로 깊이 공감하게 하는 방식으로 병역의무가 설명되어야 한다. 국가주의적이고 쇼비니즘적 민족주의의 논리가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생각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가 가능하려면 시민의 참여라는 개념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참여 없는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참여를 억압하는 이 시대적 모순이 있지 않은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