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학문 연구·교육 등 상아탑으로서의 기능에만 충실하면 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대학의 역할은 교육·연구의 차원을 넘어 수익 창출로까지 확대됐다. 보유 기술을 사업화해 수익을 내고, 이를 다시 교육·연구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만 대학의 지속적인 성장·발전이 가능한 시대가 온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기술지주회사를 설립, 보유 기술 사업화에 나서는 대학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정부의 예산·제도 지원도 대폭 강화될 예정이어서 국내 대학들의 기술지주회사 설립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왼쪽 마이크 앞)이 지난해 12월 16일 한양대 기술지주회사 CEO들과 간담회를 갖고 제도개선과 산학협력선진화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한명섭 기자>
■법률 개정 후 2년간 8개 설립 … 대학 비즈니스 ‘본격화’
기술지주회사는 대학 내 산학협력단이 기술·자금을 출자해 설립한 법인이다.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사업화해 수익을 창출하는 데 설립 목적이 있다.
국내 대학들의 기술지주회사 설립이 가능해진 것은 지난 2008년 2월 ‘산업교육진흥과 산학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부터다. 개정 전까지 대학은 비즈니스와 동떨어진 교육·연구기관이라는 사회 인식 아래 수익 사업을 벌이는 데 제한을 받아 왔다. 따라서 기술지주회사는 국내 대학들의 비즈니스 활로가 열렸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법률 개정 후 지난 2년간 기술지주회사를 설립, 수익 사업에 뛰어든 대학은 한양대·서울대·고려대 등 총 8곳이다. 현재 각 기술지주회사는 1~6개의 자회사를 두고 대학이 보유한 기술을 활용한 제품을 생산·판매하며 일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관계자는 “하버드대·스탠퍼드대 등 세계 명문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술지주회사 운영을 통해 이윤을 창출, 교육·연구에 재투자함으로써 대학 발전을 앞당겨 왔다”며 “최근 수익 사업에 대한 국내 대학들의 관심과 필요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기술지주회사를 설립·운영하는 대학들이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라고 밝혔다.
■교과부 지원 강화로 설립 ‘가속도’ 예상
수익 사업에 대한 대학들의 관심·필요가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부터는 기술지주회사 활성화를 위한 교과부 지원도 한층 강화된다. 이에 따라 올해 각 대학의 기술지주회사 설립에 전격 드라이브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16일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들과 간담회를 열고 오는 2015년까지 기술지주회사 50개, 자회사 550여 개가 설립될 수 있도록 재정적·제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총 3조3000억원의 매출과 1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포부다.
이에 따라 교과부는 우선 올해부터 10여 개 대학 기술지주회사에 각각 연간 5억원 규모의 예산을 지원하고 △기술가치 평가 △자회사 출자 기술 사업화 검증 △전문기관 컨설팅 등에 사업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대학 기술 이전 전담조직인 TLO(Technology Licence Office) 활성화를 골자로 한 ‘커넥트 코리아 사업’을 전면 확대, 2단계 사업이 시작되는 오는 2011년부터 지원 금액을 현재 6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지원 대학을 현재 18개에서 80개로 늘릴 예정이다.
기술지주회사 설립·운영에 관한 제도적 규제도 대폭 완화된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교과부는 기술지주회사 △출자요건 완화 △사업범위 확대 △설립주체 다양화 △자회사 설립 방식 확대 △자회사 출자 시 기술가치평가 면제 근거 마련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기술지주회사 설립·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로사항을 발 빠르게 해소하기 위해 ‘기술지주회사 지원단’도 설치할 예정이다.
■신규 설립 ‘활발’ … 8개 회사는 내실에 ‘만전’
교과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올해부터 각 대학의 기술지주회사 설립이 한층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김주봉 교과부 학연산지원과 사무관은 “올해 상반기 중에만 광주과학기술원·동국대·부산대·연세대·조선대 등 최소 5개 대학이 기술지주회사 설립 신청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5개 대학은 이미 신청을 위한 막바지 준비 단계에 와 있다”고 밝혀 올해 기술지주회사를 신설하거나, 설립을 준비하는 대학들이 대폭 늘어날 것임을 암시했다.
아울러 앞서 설립된 8개 기술지주회사들은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술지주회사 운영 초기 단계인 만큼 탄탄한 내부 역량부터 갖추는 게 최우선이라는 판단이다. 강진양 삼육대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는 “내실을 탄탄히 하고 특성화를 이뤄 낸 기술지주회사만이 경쟁력을 확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향후 8개 기술지주회사는 신규 기술 발굴·사업화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자회사 수도 차근차근 늘려 나갈 계획이다. 한양대의 경우 2015년까지 자회사 25개 설립, 총 매출 3500억원 달성, 고려대의 경우 매년 자회사 3~5개 추가신설이 목표다.
초기 재정·사업화 마인드 부족 등 문제점도 나타나
-기술지주회사들 “운영해 보니 현실적 어려움 많다”
기술지주회사 설립에 활기가 더해지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문제점들도 나타나고 있다. 기술지주회사들은 특히 △초기 재정 부족 △교수들의 사업화 마인드 부재 등을 운영에 있어서의 최대 난제로 꼽고 있다.
기술지주회사들은 우선 초기 재정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술지주회사는 교수들이 개발·보유한 기술을 사업화해 수익을 창출한다. 그러나 대학이 보유한 기술은 기초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아 이를 사업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응용 단계로의 업그레이드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같은 기술 상용화 과정에서 별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학의 한정된 자금으로는 상용화를 시도하는 모든 기초 기술을 지원하기엔 무리가 있다.
정경호 고려대 기술지주회사 투자기획실장은 “창업 전 단계 비용이 매우 부족하다”며 “대학 기술은 질적으로는 뛰어나지만 개발 단계가 낮아 상용화하려면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상용화된 모든 기술이 창업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성공 여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학교의 지원을 받는 것도, 민간 자금을 끌어 쓰는 것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초기 재정 부족은 고스란히 창업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진다. 열악한 재정으로 기술을 상용화해 사업을 벌였는데 실패할 경우 대학이 받게 될 타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9일 서강대는 올해 초 기술지주회사에 자회사 ‘서강푸드’를 설립하고 일반 라면보다 지방은 70%, 염분은 50%가량 낮은 ‘서강라면’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서강대는 자회사 설립은 위험 부담이 크다고 판단, 라면 생산에 활용된 ‘초임계 이산화탄소 유체 추출법’에 대한 특허권을 관련 기업에 판매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서강대 관계자는 “자회사 설립 대신 기업에 특허권을 판매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자회사 설립보단 특허를 판매하는 것이 위험 부담이 한결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수들의 비즈니스 마인드 부재 역시 넘어야 할 산이다. 현재 대다수 교수들이 연구 성과를 기술지주회사에 이전하는 것을 꺼리고 있음은 물론, 사업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도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대학 기술지주회사 고위 관계자는 “몇몇 교수들은 자신이 맡긴 연구 성과가 사업적으로 성공하더라도 본인에게 돌아오는 수익이 너무 적다며 기술 이전을 거절하기도 한다”며 “어렵더라도 공공의 이익과 대학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해 줬으면 한다. 기술지주회사가 거둬들인 수익은 결국 대학에 재투자돼 교수들의 연구 여건을 개선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이성균 한양대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
“시장 경쟁력 확보됐을 때 설립해야”
“기술지주회사의 경쟁 상대는 대학이 아닌 기업입니다. 철저하고 신중한 준비 과정을 거쳐 기업을 이길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경쟁력을 갖췄을 때 설립해야 성공할 수 있어요.”
이성균 한양대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는 “기술지주회사의 성공 여부는 표면에 드러나는 설립 시기·규모 등이 아니라 얼마나 강한 시장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각 대학의 기술지주회사 설립이 활성화되는 가운데 자칫 분위기에 휩쓸려 ‘다른 대학도 하니까’라는 식의 안일한 태도로 시장에 대한 준비 없이 뛰어들었다간 실패를 면할 수 없다는 충고다.
이 대표가 이끌고 있는 한양대 기술지주회사는 지난 2008년 7월 설립된 국내 최초의 기술지주회사다. 기술지주회사 중 가장 먼저 수익을 내고 해외로까지 기술을 수출하는 등 눈에 띄는 성과를 일궈 가며 맏이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 대표는 이처럼 한양대 기술지주회사가 안정적인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던 원인을 철저한 시장 중심 운영에서 찾았다.
“기술지주회사는 대학의 부속기관이 아닌 독립적·전문적 기업이에요. 비즈니스 마인드로 무장하고 무슨 일을 하든 판단 근거를 전적으로 시장에 둬야 합니다. 간혹 연구 측면에서 볼 땐 정말 뛰어나지만 시장 경쟁력은 별로인 기술들이 있어요. 대학의 입장에선 거두겠지만 기업의 입장에선 버려야 옳지요.”
기술지주회사들이 겪고 있는 초기 재정 부족, 교수들의 사업화 마인드 부재 등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했다. 이 대표는 “정부·대학이 힘을 모아 관련 제도를 만드는 게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며 “특히 교수들이 사업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교과부는 대학 평가 기준에 관련 항목을 추가하고, 대학 역시 교수 평가에 사업화 기여도 등을 반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한양대 기술지주회사 운영에 관한 포부도 밝혔다.
“지난 2년여간 한양대 기술지주회사를 운영하면서 ‘양보다는 질로, 규모보다는 내실로 승부하겠다’고 재차 다짐하곤 했다. 이 같은 신념을 바탕으로 최초를 넘어 최고의 기술지주회사로 만들겠다. 10년 후인 2020년엔 자회사를 35개로, 총 매출을 1조원으로 늘리는 게 목표다. 차근차근 노력한다면 반드시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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