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경 칼럼
박의경
[박의경 칼럼] 전남대 정치외교학 교수
2010 대한민국 정치코드, ‘신뢰’·‘관용’
박의경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근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1년여를 끌었던 용산참사 문제도 최근 겨우 해결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회 갈등의 골이 완전히 봉합된 것 같지는 않다. 남북갈등보다 남남갈등이 더 문제라더니, 드디어 사회통합이 정치에서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사회통합위원회도 설치됐다. 통합위원회가 설치되었다는 것은 ‘통합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통합에 문제가 있다는 말은 사회 성원 상호 간에 신뢰가 부족함을 의미한다. 신뢰는 사회가 시작되고 유지되는 기본 원칙이다.
신뢰가 형성·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관용이다. 관용이란 서로를 용납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 근저에는 서로에 대한 인정의 미학이 깔려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서로란 아는 사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사적 관계가 아니라 공적 관계에서 형성된 제도를 통한 시민들을 의미한다.
상대에 대한 관용이 자리 잡을 때, 토론이 품위 있게 진행될 수 있고, 토론이 익어 가야 타협의 가능성이 생긴다. 관용이 있어야 신뢰가 싹트고, 신뢰가 형성돼야 관용이 자라난다. 바로 여기에 민주주의의 핵심이 있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신의 저서 <신뢰(Trust)>에서 21세기 국가경쟁력의 척도를 사회적 신뢰도로 보고 있다. 20세기는 산업화의 정도나 속도로 국가 발전을 평가했다. 그러나 산업발전이 한계에 이르러 사회는 더 이상 그것만으로는 발전할 수 없게 됐다.
즉, 21세기는 개인적 신뢰도가 아닌 사회적 신뢰도가 높은 사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는 결론이다. 여기서 불행하게도 한국은 21세기 발전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수준에 속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신뢰도가 낮다고 평가됐기 때문이다.
정치는 정치대로 누구 말이 맞느니, 안 맞느니 논쟁으로 소진되고, 경제는 경제대로 물건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선거절차와 공약에 대한 확인을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시민단체에서 많은 시간과 인력을 소비하고, 소비자보호원 등에서는 물건의 정량·품질이 표시대로 되어 있는지,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 많은 인력·비용을 사용하고 있다. 생산과 개발에 투자돼야 할 국가의 절대비용이 새어 나가는 현장이다.
우리 사회가 불신과 불관용으로 인해 과다하고 불필요하게 지출하는 비용은 이외에도 허다하게 많다. 상대를 믿지 못해 뒷조사하는 비용과, 대비해야 하는 비용을 생각해 보자.
은행이나 우체국에 가면 우선적으로 뽑는 ‘순번 대기표’가 바로 우리 사회 불신의 상징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그 ‘순번 대기표’를 뱉는 기계를 전국 은행의 지점에 설치하려면 우리의 세금이 얼마나 소요되는가를 생각해 보았는지. 신뢰는 경쟁력이다. 신뢰에 기반한 신용사회가 구축된다면, 우리 사회 전체적인 과소비 구조도 전체적으로 조정될 수 있을 것이다.
불신으로 지출되는 비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하자. 적은 비용으로 많은 것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뢰의 힘이다. 신뢰라는 경쟁력을 생산해 내는 힘은 관용에서 출발한다.
여러 가지 규제장치·제동장치는 바로 신뢰하기 힘든 상황을 신뢰할 수 있게 만들려는 데 그 첫 번째 목적이 있다. 타인을 믿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움직임이 동시에 타인에 대한 신뢰를 형성할 수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한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은 광고 카피로 그칠 일이 아니다. 21세기 첫 10년을 지난 대한민국이 미래를 위해 품어야 할 모토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나의 신뢰가 국가의 장래를 바꾼다.’, ‘나의 관용이 국가의 품격을 올릴 수 있다.’
불신 사회의 궁극적 귀착점은 공권력과 국가정책에 대한 불신이다. 국가정책을 신뢰하지 못하기에 정책을 용인하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한다. 참고 기다려 보는 사회적 인내심은 어디에서도 작동하지 못하고, 사적 관계 설정에 더욱더 매달리게 된다.
신뢰의 회복과 관용의 진작은 21세기 국가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코드다.
박의경 칼럼 | 입력 : 10-01-15 오후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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