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VS 한국 13대 0’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 경기 스코어가 아니다. 국민 전체가 흥분하는 스포츠 경기보다 오히려 더 자존심 대결을 펼쳐야 할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배출 성적이다. 더구나 지난 2008년 10월 일본은 한꺼번에 네 명의 수상자를 추가하면서 우리나라와의 차이를 훌쩍 벌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13대 0’의 충격 때문인지 노벨 과학상 배출이 언제쯤 가능한지, 또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에 대해 분석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포스텍 과학문화연구센터는 노벨상 분석을 시작했고 ‘노벨 과학상 분석 및 접근 전략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지난 2008년 12월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현재 정부의 기초과학 시스템으로는 노벨상 수상자 배출이 당분간 어렵다며 기존 학자뿐 아니라 신진 학자들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최근 일각에선 세계가 주목하는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다수 있는 데다 노벨상 수상 여부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많다는 점을 들어 조기에 이뤄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내놓는다. 여기에 주요 대학들이 노벨상 수상자 배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 주목된다.
■수상 가능성 있는 교수에게 집중 지원 = 사실 일본과 우리나라의 노벨상 수상자 배출 격차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대표적 연구소 중 하나인 RIKEN(일본이화학연구소)의 1년 예산은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일본의 연구소 한 곳 예산이 우리나라 전체 R&D예산인 13조6000억원의 10%에 맞먹는다는 얘기다.
연구 지원이나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실 때문에 우리나라 각 대학은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는 교수들에게 집중 지원하는 방법을 택했다.
서울대는 지난 5일 ‘노벨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사상 첫 ‘신석좌교수’를 임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석좌교수제는 50세 이하 능력 있는 교수들에게 석좌교수에 준하는 대우와 지위를 부여해 지원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선정된 교수에겐 △수업 부담 경감 △학기 중 28일간 해외체류 기회 제공 △최소 3년간 2억원가량 연구비 지원 △국제회의 참석 등 각종 경비 지원 △연구공간 추가 제공 등의 혜택을 준다. 현재 현택환(46) 화학생물공학부 교수와 김빛내리(41) 생명과학부 교수가 후보로 선정됐으며 이달 말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이장무 총장 취임 이후 ‘노벨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이는 ‘3B’전략을 통해 실현할 것”이라며 “학과별 경쟁을 통해 우수 교수를 유치하는 ‘두뇌 확보(Brain Gain)’, 우수한 교수에게 더 나은 연구환경을 제공하는 ‘두뇌 유지(Brain Sustain)’, 교수들이 학문 간 벽을 허물도록 유도하는 ‘두뇌 융합(Brain Fusion)’이 그것”이라고 밝혔다.
포스텍 역시 세계적인 성과를 낸 교수들에게 ‘포스텍 펠로’제도를 통해 집중 지원한다. ‘포스텍 펠로’에 선정된 교수에겐 △70세까지 정년 추가 연장 △연 5000만원 내외 특별상여금 지급 △대학원생 추가 배정(10명) 등 폭넓은 지원이 주어진다. 또 65세 정년 이후에도 교수아파트는 물론 연구실과 실험실 등을 지원받으며 학생 지도도 가능하다. 지난해 9월 두 번째 대상자로 세계 화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김광수·김기문 화학과 교수가 선정된 바 있다.
포스텍 관계자는 “2020년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고 이미 공언했다”며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오는 2월 중 공개할 예정이다. 노벨상 수상자 배출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연구중심 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한 중장기적 실행 계획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과학자 = 열악한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성과를 발표하고 있는 교수들을 주목할 만하다.
그 중 최근 가장 이목을 끌고 있는 학자는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다. 김 교수는 마이크로 RNA와 표적유전자가 인슐린 신호를 제어해 세포의 성장과 대사를 조절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지난해 말 화제를 모았다. 인체의 성장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존재가 구명된 것이다.
마이크로 RNA 분야는 지난 200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배출할 정도로 최근 생물학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다. 김 교수는 이미 ‘여성 과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로레알-유네스코 여성과학자상’도 수상한 전력이 있다.
이 분야 관계자는 “김 교수가 노벨상에 근접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그가 이뤄 낸 성과뿐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이라며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여성은 20여 명에 불과해 이를 바꿔 보려는 노력이 내부에서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유룡 KAIST 화학과 교수의 성과도 눈길을 끈다. 유 교수는 세계 최초로 나노 다공성탄소물질을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9월엔 세계 최초로 2나노미터 극미세 두께의 나노판상형 제올라이트 촉매물질을 합성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 성과로 <네이처>지에 논문 게재는 물론 특별 인터뷰 기사로 소개되는 영예도 얻었다. 현재 유 교수의 SCI급 논문 피인용 횟수는 1만 회에 이른다. 노벨상 수상자 평균인 5000회의 두 배 수준이다.
김기문 포스텍 화학과 교수 역시 최첨단 나노 분야의 권위자다. 국내 과학자 중 주저자로 발표한 단일 논문이 SCI급 논문에 가장 많이 이용된 학자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구멍이 많이 뚫린 나노 구조물을 만들어 새로운 바이오·나노 기초 기술을 개발하는 독창적인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세계적 권위의 화학지 <안게반테 케미(Angewndte Chemie)>에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한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