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간 경쟁이 가열되면서, 연구·교육 성과가 우수한 교수들의 처우가 점차 좋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정년 연장이다. 국내 대학 가운데 KAIST와 울산과기대, 경희대 등이 우수 교수에 대해 정년을 연장해 주고 있다. 고려대·포스텍·서강대·이화여대도 우수 교수 정년 연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올해 들어 교수 정년 연장을 대학가의 화두로 제시한 곳은 경희대다. 경희대는 지난달 초 “연구업적이 뛰어나고 대학 발전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교수를 대상으로 정년을 70세까지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달부터 10년 이상 근무한 60세 이상 교수를 대상으로 정년연장 신청을 받는다. 이를 희망하는 교수는 정년 이후의 연구·교육계획서를 대학본부에 제출하고, 교내 교원인사위원회가 이를 심사해 정년연장 대상을 선정하게 된다. 연구성과·학문성취도·강의평가·사회공헌·기여도 등이 평가 항목이다.
경희대 교수 1300명 가운데 신청대상(60세 이상, 10년 이상 근무) 교수는 111명으로 8.5%다. 이 중 오는 8월 정년퇴직이 예정된 교수 7명이 정년연장 신청을 할 수 있다.
정년연장 대상자로 선정되면 권한·책임·처우면에서 전임교원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 이는 지난해 9월 학교법인 경희학원이 정관을 개정하면서 가능해 졌다. 이사회는 “연구업적이 뛰어나고 대학발전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 70세까지 정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정관을 개정했다.
현 교육공무원법에 따르면 대학 교수의 정년은 65세다. 사립대 교원도 교육공무원법을 적용받기 때문에 경희대는 정관 개정 당시 교과부에 이 같은 내용을 문의한 바 있다. 교과부로부터는 “교원정년과 관련해 교육공무원법을 준용한다는 조항이 없다면 정관을 개정해 정년을 연장할 수 있다”는 답변을 얻었다. 교수의 보수나 정년은 사립대에서 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학들은 경희대처럼 정관을 개정해 정년을 연장해주거나 아니면 정년퇴직 이후 비전임으로 계약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비전임 계약의 대표적인 곳이 KAIST다.
KAIST는 서남표 총장 취임 이후인 지난 2007년 3월부터 국내 최초로 우수 교원의 정년을 연장했다. 상위 3% 내에서 ‘특훈교수’를 선정, 정년 이후에도 비전임직으로 계속 근무하도록 한 것이다. 특훈교수는 총장·부총장·단과대학장·학과장 추천을 받은 후, 국내외 전문가 평가를 거쳐 임명한다.
지금까지 특훈교수로 임명된 교수는 모두 7명. 이 가운데 실제 정년을 넘긴 교수는 김충기(66·전기전자공학) 교수다. 김 교수는 현재 학교측과 비전임 형태로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학교로서는 전임교원 보수에서 정년이후 김 교수가 받고 있는 연금(전임보수의 50% 정도)의 차액만 보전해 주면 된다.
장순흥 교학부총장은 “정년 이후 얼마만큼의 본인이 연구 성과를 얼마나 더 내느냐도 중요하지만, 후배들이 연구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특훈교수가 정년이후 자신의 경험을 살려 후배들에게 조언해 주는 역할을 긍정적 효과로 꼽았다.
이에 더해 KAIST는 올해부터 상위 15%의 우수 교수의 정년을 현 65세에서 70세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상위 3% 내에서만 선발했던 특훈교수제를 확대, 교수들에게 정년 연장으로 동기부여를 하겠다는 의미다.
정년 연장이 우수 교수 영입의 유인책이 되기도 한다. 울산과학기술대는 지난해 초 개교이래 우수교수에 대한 정년을 70세로 적용해 왔다. 법인화된 국립대기 때문에 정관에 ‘연구성과가 우수한 교수의 정년은 70세로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을 명시해 운영해 온 것. 정무영 부총장은 “연구업적이 우수한 교수를 영입해 오려면 정년연장이 필요했다”며 “다른 대학에서 저명한 교수를 모셔오는 데에 정년 연장이 한 몫을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정무영 부총장이 70세까지 교육·연구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포스텍에서 울산과기대로 옮겨온 경우다. 또 최근 영입한 서판길 포스텍 생명공학과 교수도 울산과기대의 정년연장에 매력을 느껴 옮겨오게 됐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포스텍도 최근 “연구하지 않는 교수는 퇴출시키고, 성과가 있는 교수에 대해서는 정년을 연장해주는 등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려대와 서강대, 이화여대도 최근 우수 교수 정년연장을 검토중이다. 고려대 김도성 교무지원부장은 “교수 정년보장에 대한 안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서강대 김동진 홍보팀장도 “명예교수는 한 학기 한 과목에 한해서만 강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강의와 연구 역량이 뛰어난 교수님들을 어떻게 활용할 지 검토 중”이라며 “정년을 연장해 주는 방법을 포함, 이분들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는 교내 ‘이화학술원’ 소속으로 정년을 넘긴 석좌교수를 외부에서 영입, 강의를 맡기고 있다. 신용하(서울대)·박경서(성공회대)·김우창(고려대) 교수 등이 타 대학에서 정년을 마치고 이화학술원 석좌교수로 영입된 경우다. 황규호 교무처장은 “앞으로는 교내에서도 우수 교수를 발굴해 정년을 연장해 주는 방안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우수 교수에 대한 정년연장 바람은 대학가로 확산될 전망이다. 고려대 공과대학의 한 교수는 “연구 성과가 우수한 교수의 경우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지 제고에 보탬이 된다”며 “특히 정년 이후의 교수들을 비전임으로 채용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인건비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전임으로 채용을 연장해도 교육·연구가 검증된 교수라 대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