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몇 교수들의 자살 소식이 이어져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경찰 조사 등을 통해 밝혀진 해당 교수들의 주요 사인은 연구 실적에 대한 극심한 중압감이었다. 다른 연구자들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뛰어난 연구 결과를 내놔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교수들의 목을 조이고 만 것이다. 사건 발생 이후 대다수 교수들은 고인이 느꼈을 어려움에 대해 공감을 표하는 한편,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또 앞으로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수 개개인, 그리고 대학이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더 잘해야 한다” 연구 업적 압박 ‘극심’
지난달 24일 물리학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는 서울 S대 A교수가 연구 업적에 대한 부담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조사 결과 A교수의 점퍼 호주머니에서는 “큰 논문을 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힘이 든다. 가족과 학생들, 구성원에게 미안하다. 물리학을 너무나 사랑했는데, 잘못해서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가 나왔다. A교수는 연구 업적에 대한 심리적 압박으로 평소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왔으며 불면증·우울증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A교수에 앞서 같은 달 20일에는 서울 K대 의대 B교수가 자신이 근무하던 의료원 건물에서 투신해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B교수는 평소 우울증으로 약을 복용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앞서 지난 2008년에는 부산, 2007년에는 충남에서 우울증을 앓던 교수가 연구·강의 부담 등을 이유로 자살, 교수들이 대학에서 받는 스트레스 수위가 위험 수준을 넘어섰음을 증명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연구 업적에 대한 극심한 압박이 비단 자살한 교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실제로 현재 많은 교수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다수 교수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연구 실적에 관한 부담”이라며 “앞서 간 교수들의 심정이 이해된다.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고 털어놓고 있다.
서울 한 대학 교수는 “교수들이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은 연구”라며 “특히 최근 대학 정보공시제 도입으로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대학들 간 경쟁이 가열됐고, 교수들은 더욱 극심한 실적 경쟁에 내몰리게 됐다”고 밝혔다.
또 경남 한 대학 교수도 “정보공시제 도입 이후 교수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부쩍 늘어났다. 실적을 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극심해졌다”며 “실적이 부족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돼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 같은 악순환이 장기적으로 반복될 경우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 업적에 대한 부담과 함께 대학 구성원들과의 갈등 역시 커다란 스트레스 요인이다. 전북 한 대학 교수는 “어느 집단이건 인간관계로 인한 어려움이 없는 곳은 없다. 대학도 마찬가지”라며 “동료 교수들과 갈등을 빚게 될 경우 학교가 불편하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어져 스트레스 수치가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열정이 짐으로 변하지 않게…” 대학·교수 공동 노력 필요
많은 교수들이 학내에서의 과도한 스트레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과 교수 개개인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조언이 많다. 학문에 대한 교수들의 열정이 삶을 누르는 짐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많은 교수들은 무엇보다 연구의 양보다는 질을 중시하는 학내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철갑 조선대 산업의학과 교수는 “뛰어난 연구 성과는 필연적으로 상당 기간의 숙고를 거쳐야만 생성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대학들의 경우 아직도 양적 부분을 상당히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양적 평가를 배제할 수는 없지만 질적 부분을 좀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인식이 확산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수들이 삶과 죽음에 대해 바르게 알고 성찰할 수 있도록 대학 차원에서 워크숍·연수 등을 진행할 필요성이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오진탁 한림대 생사학연구소장은 “인간다운 삶만큼 인간다운 죽음 역시 중요하다. 태어나고 죽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있는 우리 삶 역시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며 “삶·죽음에 대해 바르게 아는 것만으로도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 존엄한 인간으로서 교수들이 삶·죽음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도록 대학 차원에서 교육의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에 대한 중압감을 줄이기 위한 교수 개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 대다수 교수들은 특히 △동료·가족·사제·친구와의 대화 △등산·걷기 등의 운동 △취미 생활 등과 같은 작고 소소한 노력들이 연구 실적에 대한 부담감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혼자 아픔을 끌어안고 고민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때로는 연구를 잊고 휴식을 즐기는 게 교수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 준다는 말이다.
<민현희·이정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