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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칼럼] 한국대학신문
경술국치 100년에서 보는 안중근의사
김문길 부산외대 일본어학부 교수

지난 3월26일은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을 맞아 정부와 민간단체가 관장하여 안의사 추모제를 같이 진행했다. 100년 만에 돌아온 안의사의 서거라 정부도 민간인도 마음에 더욱 와 닿은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일본인으로 매년 안의사의 서거를 매우 안타깝게 여기고 매년마다 제사를 지내는 곳이 있다. 필자는 그곳으로 지날 때 마다 자연 고개를 숙이며 그들에게 고맙게 생각해 왔다. 오늘날에도 그곳은 안중근 의사의 혼이 살아 움직이는 듯 한 감정이 든다.

 

안의사의 위패와 안의사의 업적인 비문을 볼 때 일본인을 죽인 살인범인데 그렇게 섬기고 있는가 의문이 갔다. 알고 보니 안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생활할 때 간수였던 지바도시치(千葉十七)헌병이 안의사의 위대한 정신에 감동을 받아 제대 후 고향에 돌아와 위패를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주위 사람들에게 점차 알려져 오늘날에는 더욱 성스럽게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이라 알게 되었다.

 

지난 1979년에 지바씨가 가지고 있었던 안중근의사의 휘호 “위국헌신군인신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란 휘호를 본국에 기증했다.

 

지바는 이미 작고하고 이 땅의 사람이 아니지만 죽을 때 안중근 의사의 유품을 환국하도록 유언을 하고 죽었다. 그 후 딸이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기증한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 안중근의사가 쓴 휘호 “위국헌신군인신분”에 대하여 정부나 일부 국민이 잘못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안의사가 여순감옥 생활을 할 때 간수였던 헌병 지바가 안의사에게 감동을 받아 위대한 사람인줄 알고 각별히 잘 대접을 했다. 이에 고마워 안의사가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지바에게 벼룩과 먹, 종이, 붓을 가져오라하여 써준 것이 ‘위국헌신군인신분’이다. 안의사가 떠나면서 남긴 이별의 말이지 안중근 자신이 군인이란 말은 아닌 것이다.

 

물론 안 의사가 1910년 2월7일 여순 관동 도독부지방법원에서 심문을 받을 때 “나는 의병의 참모중장으로 독립전쟁 중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쏴 죽였고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의병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계획했다” 라고도 진술했다. 따라서 안중근 의사는 의병의 정신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이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지난 3월23일 우리나라 육군본부는 안중근의사의 명칭을 의사에서 장군으로 고치고 본부 지휘부 회의실을 안중근 장군실로 바꾸었다. 그리고 모든 문서도 장군으로 고친다고 한다.

 

안의사가 지바에게 써준 휘호는 지바에게 군인신분을 다하라는 말이다. 재판을 받을 때 의병의 참모중장이라 했지 군인의 참모중장이라 하지 않았다. 의병과 군인은 구별해야 한다.

 

호칭이 어떻든 간에 안중근 의사 서거 100년을 지난 오늘날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안의사의 유해를 모셔 오는 것이다. 안의사가 죽을 때 해방이 되면 유해를 꼭 고국으로 돌아오도록 유언했는데도 불구하고 해방 60주년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또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지난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 사람을 죽이고 코,귀를 잘라간 코무덤을 환국할 때 불교의 지도자들이 안의사가 사용한 벼룩과 먹을 간직하고 있다가 후손들이 고국에 보내려 했었으나 일부 국민들이 안의사가 쓴 물품이 아니라고 기증을 거절했다.

 

안의사가 사용한 벼룩과 먹은 지바가 가질 때 후손들에게 알리려고 ‘安重根’이란 이름을 쓴것인데 안중근이란 이름을 보고 유품이 아니라고 말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앞으로 이런 유품도 모을 뿐만 아니라 국가 예산을 충분히 잡아 안의사의 유해를 꼭 발굴하여 고국에 모셔 와야 하는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칼럼 | 입력 : 10-04-19 오전 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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