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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이이화] "배타적 풍토, 보수적 전통이 대학 연구의 한계"
서울대, 한국 근현대사 교육 외면
역사란 ‘현실을 바로 알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
언론매체, 역사 미화 말고 냉철하게 다뤄야
“서울대에 80년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근현대사를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강좌도 없고 전공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가야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그릇된 사고때문에 역사연구 이전의 사실규명이나 자료 수집마저도 손을 놓고 있는 겁니다.”

지난 1986년 2월 소장파 역사학자들이 결집한 「역사문제연구소」에 참여, 오랫동안 연구소장을 지내며 한국 역사 재조명과 대중화에 공헌해 온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을 본지 김우종 주필이 만났다.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무관심과 외면을 강하게 꾸짖으며 한국 사학발전을 위해 대학의 ‘교수사회 풍토 변화’가 시급하다고 그는 지적한다.

김우종 주필=절대 권력의 철옹성같기만 했던 박정희 군사정권의 몰락에서부터 가장 최근의 서민 대통령 노무현 정권의 출범에 이르기 까지 역사는 계속 변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랜 동안 우리의 역사를 살펴오신 이 선생님께서는 우리 역사라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이화 고문=역사의 특성인 보편성과 특수성을 우리의 역사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름대로의 지정학적인 특성이라든지 높은 농업생산력으로 타국을 침범하지 않는 평화주의적 민족의 특성, 그리고 무수한 외침을 극복할 수 있었던 정치경제적인 요인과 민족의 단합 등 다양한 특성과 측면들이 있습니다. 근현대 우리나라는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생물학적인 유기체로 볼 수 있는데, 근래의 노무현 정권 창출까지 포괄해서 생각할 때 우리의 역사는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을 아우르는 ‘진보하는 역사이며 근대성이 확보된 역사’의 모형이 될 수 있습니다.

김= 그와 같이 우리의 역사가 긍정적인 발전을 이뤄왔다고 보신다면 이는 민중의 힘이라고 봐야할까요?

이= 해석하기 어려운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민중사를 추구해왔습니다만, 개혁투쟁적 시각으로 민중사를 재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피지배층인 민중의 권익확보투쟁을 통해 끊임없이 개선을 추구하고 노력한 것이 오늘날까지 온 것이 아닐까요? 4.19와 6월 항쟁, 광주 항쟁 등을 거쳐오면서 민중적인 에너지가 결합되서 나타난 것으로 봅니다. 3.1운동과 동학혁명, 18세기 농민항쟁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죠.

김= 그런데 우리는 이런 역사를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채 왜곡하고 은폐해 온 경향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사관에 따라 다른 해석을 가진 경우도 있으나 그런 경우라면 탓할 수는 없는 것이고. 현실 왜곡과 은폐는 우리의 역사적 굴곡속에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동학운동인데, 유림세력들이 사회혼란을 내세워 이를 반대했죠. 반봉건 반독재 등 민족주의적 모순과 계급주의적 의식에 저항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동학이거든요. 지주 앞의 소작인들이 시달리고 양반 밑의 일반 평민들이 압제당하는 것을 막아보자는 것 뿐이었는 데 말입니다.

즉, 18~19세기에 들어와서는 우리 역사가 자체의 내재적 발전을 꾀했었죠. 농민항쟁이라든지, 실학파를 중심으로한 정조의 개혁이라든지 상당한 개혁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항이후 스스로 개방과 변화를 하고자 했습니다. 일제 침략이 아니라도 내재적인 요인에 의해 근대성을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쇄국정책과 함께 결국 일제가 그 싹을 잘라버린 것이죠. 영국은 식민지에 자치를 부여했고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를 식민지에도 적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어요. 황민화 교육 뿐만 아니라 자체 문화, 민족의 풍속 등을 말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해방이후 교육은 일제 식민지교육을 주도했던 사람들에 의해 계속 이뤄졌고 박정희 정권에 와서는 유신의 이데올로기로, 한국적 민족족의를 민주주의를 위한 허울좋은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역사가 진실보다는 왜곡으로 나타난 겁니다.

김= 사실 대학에서도 학생들의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정치적 상황자체가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어렵게 한 점도 없지 않지만 선생님께서는 대학에서 이뤄져온 우리 역사에 대한 연구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한국전쟁 이후 60~70년대, 우리 역사는 부분적이긴 하지만 많이 진전됐고 80~90년대에는 획기적인 발전을 거듭해온 게 사실입니다.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북한은 남한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우리가 「역사문제연구소」를 발족한 것도 대학교육만으로 안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일례로, 서울대에 80년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근현대사를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강좌가 없고 전공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가야 역사적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본격적인 역사연구 이전의 사실규명이나 자료 수집 등의 1차적인 역사연구 준비작업마저도 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김= 이것이 교수들의 보수성 탓입니까?

이= 학교의 교수성향과 교수사회의 전통때문입니다. 기존 교수사회의 학문을 비판하지 않을 온건한 사람들만을 선호하면서 근현대사를 철저하게 연구할만한 기회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문제연구소의 필요성을 자각한 것도 이와 같이 대학들이 제대로 근현대사를 연구하지 않는 행태를 묵과할 수 없었던 데 있습니다.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하되 대학의 이러한 풍토를 깨치는 운동으로서 「역사문제연구소」를 발족하고 동시에 「역사비평」을 발간하는 등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우리 역사연구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생각합니다.

김= 「역사문제연구소」가 우리나라의 역사연구 방향을 크게 전환시킨 데 공헌한 것은 누구나 주지하는 사실입니다.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지요. 그와 같은 대학의 연구행태와 경향은 단지 서울대에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 그렇죠. 학교에 따라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르죠. 고려대와 연세대는 서울대와는 또다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와의 교류가 없어요. 그래서 학부는 서울대를 나와 연세대나 고려대 대학원에 진학해 담당연구교수를 학생들이 찾아가야하는 경우가 80년대 많았어요. 교수들이 정년퇴직하고 나면 그 보수성이 달라질 것인가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 제자들이 그대로 이어받게 되니까요.

김=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원인을 바로 거기에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것 같군요.

이= 네. 지방대도 서울대 출신 교수들이 터를 잡고 있기 때문에 연구풍토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서울대 사학과 출신여부가 참다운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견주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배타적 교수사회의 풍토는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 교수들이 스스로의 이론과 생각만을 옹호할 단단한 벽을 쌓고 있으면 그들의 제자들은 스승의 논리를 비판할 수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그렇습니다. 서울대의 역사연구경향 중 학문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선시대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미화하려고 든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가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 지속된 왕조라는 논법은 역사학자가 해야할 것이 아니죠.

김= 절대적 권력에 의해 오래 버틸 수 있는 것을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죠.

이= 그렇습니다. 대한제국과 명성황후, 고종을 옹호하는 데 열중해 미화하고 왜곡하는 사람도 있죠.

김= 근래에 김대중 정부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아직은 시기 상조라고들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시점까지 역사를 가르치는 게 옳을까요?

이= 김대중 정부에 대해서도 가르쳐야죠.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포함되어서는 안되고 진실로 객관적으로 접근하면 안될 건 전혀 없다는 겁니다. 덮어만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거죠. 당시의 기록과 당시의 학자들이 바라보는 시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 역사는 과거이며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이= 그것은 죽은 역사죠. 아무런 가치가 없는 역사라는 겁니다. 역사의 의미란,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현실을 아는 것이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저것 다 빼버리면 무엇으로 현실을 알 수 있겠습니까? 지난 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권장해야할 바이지 해선 안된다고 막아야할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김= 시간이 흘러 평가가 달라지더라도 현실에 대한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만 해도 이것이 상당히 자유롭거든요. 바로 어제까지의 사실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내일에 대한 시각이 생기는 거죠.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대학교수들만 아니라 이른바 재야학자라든가 특히 언론매체의 역할도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반 대중들의 역사관에 이들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게 사실 아니겠습니까?

이= 역사의 대중화에 동감합니다. 저도 노력하고 있고 기여한 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언론이 역사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만 미화하려할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해야한다는 겁니다. 역사적 고증을 제대로 거쳐 역사를 다루어야 한다는 거죠.

조중동 대표적 일간지도 문제가 많지요. 해방전 폐간되기 직전까지 갔던 언론이 친일세력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에 대해 솔직히 밝혀야 하며 이를 은폐해서는 안됩니다. 본인들이 반성을 해야 한다는 거죠. 몇몇 문인들도 그렇고 말이죠.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의 피해자 후손들이 연좌제로 고통받던 세월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들이 명예회복을 위해 분투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세력이 누구냐 하면 가해자들의 자식이고 친일파들의 자식이고 다 그렇다는거죠. 이와 같은 역사 위에서는 민주화라는 말을 할 수도 없는 겁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을 전공하는 젊은 역사학도들이 거의 없어요. 세계적으로도 참혹한 전쟁으로 꼽히는 이 땅의 전쟁을 자기 나라의 젊은이들이 외면한다는 겁니다.

김= 아직도 해야할 일들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아직도 올바른 역사연구에는 많은 장애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까?

이= 그렇죠. 많은 30~40대 젊은 역사학자들이 넓은 시야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언론이나 작가들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역사를 상업적 소재로 마구 이용하는 면면들이 눈에 너무 자주 띄입니다. 어느 시대나 있는 것이지만요, 최근들어 상업성에 의해 역사가 왜곡되는 경우가 지나치게 많지 않은가 합니다.

김= 마지막으로 역사학도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이= 역사학자는 이론이든 저술을 통해서든 열심히 공부를 해야죠. 현대사는 안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어선 안됩니다. 발견된 역사자료를 감춰놓고 몰래 볼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자료를 공유하여 그것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해야 합니다. 역사는 무엇을 가지고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인가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대중적으로 더 접근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대중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그러려면 문체를 쉽게 쓰고 재미도 줄 수 있어야 하며 정사만을 고집할 것도 없습니다. 신록은 지배자의 역사인데 오늘날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을 정사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다가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할 일입니다.

이이화(李離和)는 누구인가?

1937년 충남 부여 출생

<학력>

광주고 졸업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경력>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역임

역사문제연구소장 역임

동학 100주면 기념단체협의회 공동대표

(현) 역사문제연구소 고문

<저서>

허균의 생각

우리 겨레의 전통생활

이야기 한국인물사 1~5

조선후기 정치사상과 사회변동

겨레의 역사를 빛낸 사람들

한국사이야기

<상훈>

1993년 심산상 수상

2001년 제15회 단재상 학술부문 수상

윤지은 국장 기자 (alice@unn.net) | 입력 : 03-03-15 오전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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