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의혹]이필상 교수는 ‘사퇴’ 오연천 교수 땐 ‘잠잠’?
서울대·고려대, 총장 취임전후 이중게재 의혹 대비
“고려대, 교수 간 갈등으로 사태 확대·재생산 돼”
“서울대, 외부 언론 지적에 교수사회 반감 가져”
논문 이중게재 의혹으로 고려대는 총장이 낙마했는데 서울대는 왜 잠잠할까? 최근 서울대 총장선거를 바라보며, 대학가에서 제기되는 의문이다. 물론 3년을 사이에 둔 두 사건 사이에는 아주대 총장 사퇴 등 몇몇 표절 시비가 있었다. 그러나 두 사건이 국내를 대표하는 사립대와 국립대 총장 취임 전후로 빚어진 일이라 비교 대상이 되고 있다.
◆고려대 총장 사퇴와 대비되는 서울대 총장선거=지난 3일 치러진 ‘서울대 25대 총장 임용후보자 추천 선거’에서 오연천 교수가 1위로 당선된 뒤 서울대의 분위기는 잠잠하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오 교수의 논문 이중게재 의혹이 불거지긴 했지만, 말 그대로 ‘의혹’에 그쳤을 뿐 논란으로 확대되진 않았다.
이는 지난 2007년 초 대학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 때와 대비된다. 당시 이 총장은 총장취임 직후, 1988년 교내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2편과 2005년 교외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1편에 대해 표절 의혹을 받았다. 이후 교수의회가 꾸린 진상조사위원회가 그의 논문 8편 중 "6편은 표절, 2편은 이중게제"라는 의혹을 제시했지만 최종 결론은 내리진 못했다.
당시 이 총장은 “제자들에게 연구 주제로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라며 “직접 구상했던 논문 주제와 관련 기초자료를 학생들에게 주고 이를 확대 발전시켜 석사학위 논문을 만들어 보라 했다”고 해명했다. 그의 제자들까지 나서 “표절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사태는 오히려 걷잡을 수 없이 확대돼 결국 재임 67일만에 사퇴했다.
반면 오연천 교수가 총장후보자 1순위로 당선된 서울대는 의외로 조용하다. 오 교수는 1987년부터 2001년까지 5건 11편의 논문에서 이중게재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검증작업을 벌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 조용하다는 게 외부의 시선이다.
◆고려대 표절 공방 치열, 서울대 조용한 검증= 이런 차이가 나타난 이유는 뭘까? 먼저 고려대는 이필상 총장 표절의혹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며 문제를 확대시켰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표절 의혹을 받은 서울대 교수들은 이에 반감을 갖고 오히려 오 교수를 지지했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서울대 총장선거 과정에선 오 교수에 대한 의혹만 제기됐을 뿐, 이를 둘러싼 공방은 벌어지지 않았다.
반면 고려대는 표절 공방이 교수 간 이전투구 양상으로 확대됐다. 당시 이 총장은 “총장 취임 전 사퇴 압력을 받았다”고 밝혔다. “취임식 직전 경영대 교수 3명이 논문 표절 의혹을 언론에 제보하겠다”며 “취임식 전 사퇴할 것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은 언론을 통해 고려대 안팎으로 퍼지며 논란을 증폭시켰다. 일각에선 당시 TV 드라마와 이를 비교하며 ‘하얀고탑’이란 신조어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교수의회 진상조사 과정에서도 최종 판정 전 중간조사결과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사태 확산을 불러왔다. 한 고려대 교수는 “당시 논란은 경기고-고려대 출신 교수들과 비경기고-비고려대 출신 교수 간 갈등이 표출된 것”이라며 교수 간 파벌싸움이 사태 확산을 가져왔다고 풀이했다.
이에 반해 외부(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서 처음 거론된 오 교수의 논문 이중게재 의혹은 학내에서 이슈화 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한 사회과학대 교수는 “투표 직전 언론사에서 이중게재의혹을 제시했는데, 서울대 교수들은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후보 3명 모두가 경기고-서울대 출신이기 때문에 출신에 따른 파벌 갈등이 없었고, 2위를 한 오세정 교수 또한 차기를 염두에 둘 것이기 때문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공과대 교수는 이에 대해 “거론된 논문들이 대부분 10년도 더 된 것들이고 당시에는 학계에 이중게재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며 “오히려 이 문제를 거론한 언론사에 대해 교수들이 반감을 갖고 오 교수를 지지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과거 관행에 대한 대학 외부 지적에 대해 오히려 교수들이 ‘오 교수 지지 ’로 단합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오 교수측, 이중게재 의혹 대처 능숙”평가=실제 오연천 교수 측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하지 못해 2차 투표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오 교수 측 관계자는 “1차에서 과반을 득표, 마무리 됐을 때와 그렇지 못해 2차 투표까지 가야하는 상황에 따라 대책이 세워져 있었다”라며 “가장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52.7%의 득표율을 얻어 승부를 1차에서 마무리졌다.
과거 관행처럼 이뤄진 일에 대해 특정 교수가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자연과학대 교수는 “오 교수의 이중게재의혹이 학자로서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이중게재에 대한 기준이 없던 당시의 일로 총장 후보로 나온 교수가 불이익을 받는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논문 이중게재 의혹에 대한 오연천 교수 측의 대응이 능숙했다는 평가도 있다. 한 서울대 관계자는 “제기된 의혹에 대해 오 교수측이 언론을 상대로 해명을 하거나 반박을 했다면 오히려 논란이 확산됐을 것”이라며 “오 교수 측의 태도가 너무 조용했다. 선거와 언론의 속성을 알고, 조용히 대응한 게 사태 확산을 최소화하는 데 주효했다”고 지적했다.
연구윤리에 관한 검증체제가 구축됐느냐의 여부에서 오는 차이란 지적도 있다. 호문혁 서울대 교수협의회장은 “3년 전 이필상 총장 당시에는 국내 대학에 연구윤리지침이나 이를 검증할 기구가 없지 않았느냐”며 “그러나 지금은 서울대에 연구윤리규정이 있고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있기 때문에 검증결과를 기다려 보자는 분위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총장후보 논문 검증 허술했다” 지적도=실제로 2007년 당시 국내 학계에는 이렇다 할 연구윤리 규정이 없었다. 이 총장 표절 논란 와중이었던 같은 해 2월 8일 과학기술부가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공포했을 뿐이다. 이후 각 대학들이 연구윤리에 관한 자체 규정을 만들었고,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필상 총장 당시에는 표절 시비를 검증할 기구가 없던 때인 만큼, 내부 공방에 따라 사태가 더 확산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인 셈이다.
다만 국내 최고 학부인 서울대가 후보추천 과정에서 연구윤리 부분을 너무 허술하게 취급하지 않았냐는 지적은 제기된다. 총장 예비후보 6명 가운데 본선에 나갈 3명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총장후보초빙위원회(이하 초빙위)가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 교수는 “초빙위가 후보들로부터 발전방안이나 재산현황 등을 알 수 있는 서류는 제출받았지만, 연구업적에 관한 서류를 받지 않았다”며 “현재 연구진실성위원회가 후보들의 연구업적을 검증하고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총장 후보 등록 전에 후보들의 연구업적에 대한 사전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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