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네이처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과학자들과 저널들이 논문 표절에 대한 계속되는 경고를 무시해온 결과 표절의혹이 있는 논문들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처는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과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서 근무했던 재료공학 박사 박 융씨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발표한 논문 중 적어도 8편이 표절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박씨가 두 군데 저널에 각각 두 편씩 발표한 논문도 중요 내용이 중복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박씨와 함께 근무했던 연구진과 표절당한 원본 논문의 저자들은 박씨의 논문 발표에 대한 조사 결과 표절된 4개의 논문을 온라인 저널 사이트에서 이미 제거했거나 표절임을 공표했다. 그러나 조사 연구진이 저널 편집자에게 제시할 표절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저널 편집자들이 표절 사실을 안 후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박씨의 다른 표절 논문들이 아직까지 버젓이 방치돼 있다. 박씨의 다른 논문들에 대해서는-그는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약 80편에 가까운 논문을 발표했다- 아직까지 완전하게 조사하지 못한 상태다.
박씨는 지난 1997년 영국 협회(British Council)에서 주관하는 교환 프로그램에 의해 방문 과학자 자격으로 캠브리지로 건너와서 그 곳 재료공학 과학자 캐빈 노울즈(Kevin Knowles)의 실험실에서 근무했다. 박씨의 논문 표절 의혹은 지난 2002년 4월에 일본 히메지 기술원의 재료공학 과학자 바가우딘 바가우디노프(Bagautdin Bagautdinov)가 노울즈 박사에게 자신의 논문 중 한 편을 표절한 증거를 보낸 것에서 시작됐다.
노울즈는 재료금속공학대 학장 데렉 프레이(Derek Fray)와 함께 표절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노울즈 박사는 “박씨가 자신의 논문의 독창성을 증명하려 했으나 우리를 설득시킬만한 증거를 대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캠브리지로부터 월급이나 연구비를 받지 않는 방문 과학자였으므로 즉시 방출됐다. 이후 박씨는 한국으로 귀국한 것으로 추측되나 네이처지는 그의 향후 행방을 쫓는데 실패했다.
박씨가 떠나자 그의 다른 논문에 대한 여러 건의 표절 시비가 뒤따랐다. 한 예로 당시 리버풀 대학의 재료공학 박사 피오도르 보로딕(Feodor Borodich)는 3곳의 표절 부분을 발견, 박씨가 캠브리지에 있는 동안 그가 발표한 저널 19곳에 이를 세세히 알렸다. 카이스트 연구진 또한 카이스트와의 협력으로 그가 발표한 논문을 조사, 표절 1건과 3건의 중복된 논문 내용을 추가로 찾아내 지난 2002년 6월 여섯 군데의 저널지에 이러한 사실을 이메일로 알렸다.
그러나 그 후 다른 사건들은 보고되지 않았다. 노울즈 박사는 추가로 3건의 표절 부분을 찾아냈으나 관련된 저널에 아직 연락하지 않고 있다. 이 중 하나는 저널 자체에서 표절을 의심해 온라인으로 표절 논문임이 표기됐으나 나머지 두 개는 쉽게 구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다른 저널에서도 부정행위의 가능성에 대한 증거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박씨가 이전에 발표한 논문과 상당 부분 중복되는 논문을 발표한 곳인 ‘미국 세라믹 소사이어티(The Journal of the American Ceramic Society)’는 카이스트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음을 시인했으나 네이처지로부터 보고를 받고 나서야 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씨의 표절 논문 중 하나를 출판했던 잡지 ‘물리학 D: 적용 물리학(The Journal of Physics D: Applied Physics)’도 카이스트의 이메일을 받았으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표절 의혹을 피한 박씨의 다른 7편의 논문에서 공동 저자였던 노울즈 박사는 찾아낸 표절 내용을 저널에 즉각 알리지 않은 점을 후회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표절 논문에 대해 더욱 예민해졌다”면서 박씨와 관계없는 중복된 내용의 논문에 대해서도 최근 해당 저널에 고지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가 방문 과학자였다는 점이 이번 사건에 대한 캠브리지의 조사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네이처로부터 처음 연락을 받은 프레이 박사는 “우린 (캠브리지의 표절시비에 대한 관심이) 곧 사라질 줄 알았다. 그 사람은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그를 정식으로 고용했더라면 문제는 달라졌을 것이다”고 밝혔다.
박씨의 표절 논문에 대한 조사를 벌인 저널들은 방관의 태도를 보인 다른 저널에 실망스러움을 표했다. 뉴욕의 리지 미국 물리학회(American Physical Society in Ridge)의 편집장 마틴 블룸(Martin Blume)은 보로딕 박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나서 ‘물리학 리뷰 B(Physical Review B)’의 논문을 조사해봤다. 그는 표절임을 나타내는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이에 블룸씨는 “표절 의혹이 있음을 알았을 때는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저널들은 이번 사건이 표절 논문에 대한 정책과 방안의 시급함을 드러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표절을 뿌리뽑을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은 지난 10월 런던에서 열린 국제 순수적용물리학 협회(International Union of Pure and Applied Physics)의 회의에서 거론된 바 있다. 회의의 진행자 중 한 사람인 블룸 박사는 이 협회가 올 가을까지 표절 관련 법 제도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