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노벨상을 수상한 해외 석학을 초청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노벨상을 수상한 만큼 유명세도 커 몇 년간 스케줄이 꽉 차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노벨상 수상 석학은 1, 2년 전에 미리 초청해도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대학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접촉해 이들을 데려오고 있다. 최근 강연을 한 노벨상 석학은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 쿠르트 뷔트리히 교수, 루이스 이그나로 교수, 아론 셰하노버 교수다.
■ 개인적 친분 크게 작용 = 노벨상 수상 석학 교수와 친분이 있다면 얘기를 꺼내기가 쉬워진다. 사제관계를 맺었거나 공동연구 활동을 펼치는 등의 인연이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물론 개인적 친분이 있다 해도 국내 방문 일정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지난달 25일 고려대에서 강연한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2009년 노벨 경제학상) 초청에는 안도경 서울대 교수(당시 고려대 교수)의 역할이 컸다.
안 교수가 1995~2001년 미국 인디애나대 정치학과에 재학할 당시 오스트롬 교수가 그의 지도교수였다. 안 교수는 오스트롬 교수가 기조 연설자로 참석하는 국내 타 행사 일정 전후로 강연을 부탁해 성사됐다.
지난달 30일 연세대에서 강연한 쿠르트 뷔트리히 교수(2002년 노벨 화학상)는 이원태 연세대 교수와 10년 전부터 공동으로 연구?학술활동을 했던 인연이 있다. 역시 뷔트리히 교수의 국내 일정에 맞춰 강연을 부탁한 케이스다.
■ 석좌교수 초빙 계기로 접촉 = 노벨상 수상 석학을 석좌교수 등으로 초빙한 뒤 이를 계기로 강연을 요청하기도 한다. 학회 추천을 받아 접촉이 이뤄진 경우도 있다.
루이스 이그나로 교수(1998년 노벨 생리의학상)는 2008년 건국대가 석학교수로 초빙한 인물. 당시 이그나로 교수를 초빙하기 위해 미국 현지를 방문했던 신찬영 건국대 교수는 “이그나로 교수는 일정이 빡빡한 편이지만 공동연구를 위해 내한하는 경우가 있다. 사전에 일정을 조율해 그 기간 중 강연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동아대에서 강연한 아론 셰하노버 교수(2004년 노벨 화학상)는 제20회 국제물리유기화학회 참석 차 방한했었다. 성대동 동아대 교수가 사전에 e메일로 강연 초청장을 보낸 뒤 방한 기간에 직접 부탁해 강연이 성사됐다. 성 교수는 “학회 추천을 받은 인사 중 연구 업적이 활발한 셰하노버 교수를 연사로 선정했다”고 덧붙였다.
■ 세계적 석학을 모시는 비용은 = 노벨상 석학은 세계적 지명도가 높고 섭외도 어렵기 때문에 초청주체에서 체류기간 모든 지원을 하는 것이 관례다. 노벨상 석학의 왕복 항공료와 숙박비 등 각종 체재비 지원은 물론 강연료도 지급하는 게 일반적이다. 비용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공개되지 않지만 모 대학의 경우 강연료로 3000달러 정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대학 측에서는 비용에 비해 노벨상 석학의 강연 효과가 더 크다고 밝혔다.
■ 강의 주제 선정은 제각각 = 보통 강연은 사전에 주제를 협의해 진행하지만, 노벨상을 받을 만한 정도의 석학이기에 예우 차원에서 주제 선정을 일임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 분야나 연구 주제에 대해 강연을 열거나 노벨상을 받기까지의 경력에 관한 강연이 이뤄질 때도 있다.
오스트롬 교수는 스스로 주제를 고른 사례로 꼽힌다. 기후 문제에 관심이 많은 오스트롬 교수가 직접 ‘누가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는가’란 주제를 선택해 강연했다. 안도경 교수는 “노벨상 수상 교수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주제 선정을 일임했다”고 밝혔다.
사전에 주제를 협의한 경우로는 이그나로 교수 강연이 있다. 신찬영 교수는 “이그나로 교수는 학생들 외에도 다양한 청중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왔다”며 “때문에 학부생들에게 유익한 강의 주제를 골라 이그나로 교수와 협의했다”고 밝혔다.
셰하노버 교수는 노벨상 수상 연구 분야인 ‘왜 우리가 살기 위해 몸속의 단백질이 죽어야 하는가’란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이에 관한 연구로 난치병 치료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최근 난치병 관련 연구를 수행 중인 점을 감안해 이 주제로 선정했다.
반면 뷔트리히 교수는 특정 주제에 대한 강연 형식이 아닌 자유로운 대화 방식을 택했다. 그는 ‘주니어 세미나’ 수업에 참여해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 석학 강연에 학생들은 만족 = 학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학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드물어 학생들의 관심은 높은 편이다. 전공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의 강연이라 배움의 자세부터 달라진다는 것이다.
뷔트리히 교수와 함께 하는 수업에 참석한 연세대생 박준우(생물학·2) 씨는 “뷔트리히 교수는 모든 참석자들과 눈을 맞춰가며 학생들의 질문에 응했다”면서 “73세란 나이에도 여전히 과학에 대한 열의가 엄청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지하면서도 때로 위트 있는 답변에 한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박 씨는 또 “뷔트리히 교수에게 과학자로써의 궁극적 목표에 대해 물었는데 그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뷔트리히 교수는 목표를 단정 짓기 어렵지만, 궁극적으로는 인류를 발전시키는 것이라 했다”고 전하며 학자로써의 자세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성대동 교수도 “강연에 참석한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기존 이론과 연구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꾸준히 연구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것”이라며 “노벨상 수상 석학을 직접 만나면서 학생들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 소득”이라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