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고교등급제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고려대 수시모집에 응시했다 떨어진 수험생 학부모들이 낸 손해 배상 청구소송에서 창원지방법원은 학부모의 손을 들어줬다. 고려대가 학교간 학력차를 반영하기 위해 내신 등급을 보정한 것은 사실상 고교등급제라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지원자간 학력차가 아닌 ‘출신교’의 학력차를 근거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고교등급제와 관련해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있다.
우선 수시모집을 하는 대부분의 대학은 내신 성적 외에도 자기소개서, 추천서, 면접, 논술, 입학사정관제 등을 활용한다. 내신 성적이 유일한 판단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대학이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기는 어렵다. 이번 소송에서 창원지법이 원고측 소송액수(1천만~3천만 원)의 일부(7백만 원)만 인정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일 것이다.
수시모집은 내신이나 수능 성적 같은 객관화된 시험에 의해 평가될 수 없는 다양한 재능을 평가해 해당 대학에 적합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비교과영역, 자기소개서, 추천서, 수상실적, 대외 활동 등이 추가로 활용된다. 따라서 수시모집에 지원하는 학생은 교과 성적 외에도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고민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문제는 공정성이다. 2012학년도 수시모집부터는 예비 합격자를 통한 추가합격이 가능해져 대입에서 수시모집이 차지하는 실질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특히 입학사정관제가 확산되는 추세를 생각할 때 수시모집의 공정성 확보는 중요 관건이다. 수시모집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는 객관화된 시험성적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손쉬운 해결책이므로, 공정성 요구가 높아질수록 수시모집의 본래 취지가 훼손되는 모순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대학들은 여전히 수시모집에서도 다양한 재능보다는 객관화된 시험성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수시모집을 통한 대입 제도의 다양화와 ‘여러 줄 세우기’는 분명 우리 대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쟁점은 대학들이 수시모집에서 객관성, 공정성 기준을 넘어 교육적 타당성에 입각한 대입 선발을 감당할 능력과 책무성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입학사정관제를 포함한 수시모집이 비록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위험부담을 안고 있지만, 더 큰 가치인 교육적 타당성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정부는 이를 감내하고 대학에 자율권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제도가 정착하려면 대학들이 교육적 타당성에 기반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이에 대한 사회의 요구와 문제 제기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당초 취지에 부합하는 수시모집을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생각해본다. 첫째, 무엇보다 교육적 타당성에 근거한 객관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은 수시모집의 과정과 기준, 결과를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학교별 학력차 극복을 위한 각종 지원책이 적극 추진돼야 한다. 셋째,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뽑는’ 경쟁보다 ‘제대로 가르치는’ 경쟁을 해야 한다. 넷째, 다원화사회에선 오히려 ‘역(逆)고교등급제’가 필요하다. 이는 수시모집이나 입학사정관제 선발이 갖는 부모에 의한 기회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 길이다.
고교등급제는 자칫 ‘있는 자’에게 교육기회를 몰아주는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등급을 결정하는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며 본인 실력과 관계없는 피해자가 나올 수 있고, 비평준화 지역 명문고나 특목고 집중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학교들의 학력이 동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차이는 다른 방법으로 보정돼야 한다. 문제는 학교간 격차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가 아니다. 학생간 격차를 어떻게 확인하고 찾아낼 것인가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