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채 논란으로 촉발된 ‘공정사회’ 화두가 대학가로 번졌다. 다양한 잠재력을 지닌 학생들을 선발한다는 취지에도 공정성·신뢰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된 입학사정관제가 쟁점이 됐다.
정두언 의원(한나라당)이 “입학사정관제도 의심된다”고 발언한 것을 비롯해 차관 시절부터 제도 도입을 주도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입에서 “잘못 운영됐다”는 말이 나왔다. 때마침 연세대 입학사정관의 남편이 대입 특혜 의혹을 암시하는 글을 트위터에 남겨 수험생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7일 대학가에 따르면, 현행 입학사정관제는 의혹이 제기되기 쉬운 구조란 지적이다. 개별 입학사정관이 과도한 업무를 소화해야 하므로 평가의 신뢰성 문제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 선도대학에 선정된 서울 주요 대학들도 전임 입학사정관 수는 20명 내외에 불과한 탓이다.
한 대학 입시 관계자는 “전임 입학사정관만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라고 전제한 뒤 “교수 입학사정관을 활용해야 하는 구조인데, 평가 기준이 자의적인 전형에서 알게 모르게 혜택을 받는 경우를 원천봉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입학사정관전형 합격생 중 특목고 출신 비율이 높다는 통계가 공개되면서 논란은 가열됐다. 입학사정관전형 서류 대필 업체에 대한 수사 의뢰와 함께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는 교직원 자녀가 입학사정관제로 특혜를 받은 사례가 있는지도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대교협은 대학별 교직원 자녀 입학비율을 공개하고, 특혜 의혹이 제기되는 대학은 교과부와 공동으로 감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서류 대필 시비에 대해선 표절 여부를 가려내는 검색 시스템을 운영하고, 장기적으로 전체 대학이 활용할 수 있는 서류 검증 시스템도 개발키로 했다.
개별 부정이 아닌 경우도 문제가 됐다. 정성평가 요소가 강한 입학사정관전형이 특목고 학생들을 합격시키는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교협이 공인영어 성적이나 수상 실적 등을 요구하는 전형을 입학사정관제에서 제외키로 했으나 이 같은 운영 공통기준의 ‘실효성’에는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실제로 외고·국제고·과학고 등 특목고 출신이 비교적 유리한 지원 자격을 없애지 않고, 일반 전형으로 돌린 사례가 많았다. 연세대·한양대·성균관대 등은 어학 성적 등 제출을 명시해 문제가 될 수 있는 전형들을 입학사정관전형에서만 제외시키고, 계속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대학은 지난 1일 공시된 특목고 출신 합격자 비율이 높은 대학으로도 드러났다.
고려대 고교등급제 논란도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 지난달 15일 1심에서 창원지방법원이 고려대 2009학년도 수시 2-2 일반전형이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고려대는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 정진택 고려대 대외협력처장은 “지난달 말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입학사정관제 기준에 어긋나는 수시모집 ‘일반 전형’을 시행했다는 의혹과 고교등급제 관련 판결을 받은 고려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관심사”라고 말했다. 그는 “공정사회 화두를 꺼낸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이자 대교협 회장교인 고려대가 찬바람을 맞으면 입학사정관 확대 추세도 주춤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이 같은 관측은 7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현실화됐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안민석 의원(민주당)은 이기수 고려대 총장에게 “고려대가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교협 회장으로 이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고 추궁했다. 김상희 의원(민주당)도 “법원 판결을 떠나 대교협이 이 문제를 재심해야 대교협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이 총장은 “고교등급제 적용이 사실이라면 고려대 총장직과 교수직, 대교협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며 결백함을 주장했다. 그는 “보정 산식에서 문제가 된 상수 α값과 k값은 고려대 입시 전술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어 공개하지 못했다. 항소심에서는 이에 관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해 명예를 회복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고려대는 1심에서는 ‘영업 비밀’을 이유로 α값과 k값을 공개하지 않았고, 법원에 이에 대한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면서 “이제 와 ‘공교육 저해’ 우려 때문이었다고 말을 바꾸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봉구·홍여진 기자 paper81·dike@un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