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후계체제를 놓고 안팎이 떠들썩하다. 유례없는 3대 혈통 세습을 놓고 찬반 논란이 한창이고, ‘청년대장’의 후계자 안착 여부도 관심거리다.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세습체제에 대한 비판 여부를 놓고 때 아닌 논쟁이 진행 중이다.
북한의 세습을 놓고 옳고 그름의 문제로 판단하는 가치개입적 접근은 일면적이다. 북한의 수령제 하에서 후계체제 구축과정은 충분히 예정된 구도였다. 이미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후계과정을 역사적으로 경험한 바 있는 북한은 당연히 김정일에서 다음 후계체제로의 구축과정을 언젠가 치러야 했다. 따라서 지금의 후계과정 평가는 세습 자체의 옳고 그름을 넘어 김정은의 자질과 정당성 확보 여부를 객관적으로 따져보는 게 타당하다.
오히려 지금 후계체제는 차분한 관찰의 대상이다. 김정은 후계체제의 특성과 안착 가능성을 정확히 타산해보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차분한 접근이 차분한 대응을 가능케 할 것이다.
지금 김정은 후계과정은 후계체제의 완성이 아니다. 후계자로서 공식 내정된 단계지만 명실상부한 후계자로 공식 확정된 것은 아직 아니란 뜻이다. 1974년 김정일은 당 정치위원에 선출됨으로써 후계자로 공식 내정되었고, 이후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당 정치국상무위원과 당비서·당중앙군사위원에 선출됨으로써 실질적 후계자로 공식 확정됐다.
이를 감안하면 지금 김정은은 당 중앙위원이고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지위이지만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비서직을 갖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오히려 1974년 김정일의 지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김정은은 향후 검증과정을 거쳐 당직과 국가기관 직위까지 확보함으로써 공식적 후계자로 확정되는 절차를 남겨 놓고 있는 것이다.
향후 김정은 후계과정은 안정성과 불안정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살아있는 권력이고 그가 선택한 후계자와 그 후계자를 후견할 김경희·최룡해·리영호·장성택 등이 최선을 다해 후계체제 구축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짧은 후계 구축과정에도 불구하고 북은 나름의 치밀한 계획 하에 거쳐야 할 준비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다. 후계자 낙점 이후 2009년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헌법 개정으로 국방위원회의 위상과 권한을 강화한 후 후계체제 대비용 국방위 인선을 확대했다. 후계체제를 제도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최고인민회의에서 후계체제를 국방위 차원에서 책임질 인사로 장성택 부장을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고속 승진시키고, 후계자를 뒷받침할 수 있는 최영림 내각 체제를 굳혔다. 헌법개정과 국방위 강화를 거쳐 내각 재편을 단행한 후 9월에 당대표자회를 개최함으로써 후계체제용 당 정비와 조직 인선을 완료했다. 그리고 연이어 당 창건기념일 열병식에 외신기자까지 초청해 후계자 내정을 대내외에 공식 선포하는 절차를 밟았다.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후계과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여전히 불안정성이 내재하고 있다. 이는 압축적 후계과정 자체가 갖는 한계이기도 하다. 압축 성장에도 빛과 그늘 있듯이 압축 후계과정에서도 부작용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김정일이 스스로 당 생활을 통해서 △쟁취한 권력 △확보한 권력 △검증받은 권력으로서 후계자의 입지를 다졌다면, 김정은은 △부여받은 권력 △올려 세워진 권력으로 후계체제를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정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국의 대응이다. 후계과정을 단지 놀랍고 비난할 일로만 간주하기보다는 북한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고 향후 김정일과 김정은의 바람직한 정책선택을 유도하는 영향력과 개입력을 고민 할 때다. 북의 정책선택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우리의 대응으로 북한의 합리적 정책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