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의 미국 대학 교수 임용은 분명 축하할 만한 일이다. 이는 목표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던 김 씨의 투혼과 열정이 빛을 본 결과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고운 시선으로만 이번 일을 바라보기에는 왠지 씁쓸한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왜 시간강사들이 미국행 더 나아가 외국행 열차에 몸을 실어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과도 같은 것이다.
시간강사들의 외국행은 일견 그들 자신의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본인 노력 여하에 따라 외국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 누가 뭐라 할 일이겠는가? 하지만 시간강사들이 외국대학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에는 국내 대학에서 교수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현실과 보통 전체 강의 시간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면서도 고작 한 시간당 2~3만원 안팎의 수업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열악한 처우 때문이라는 이유도 포함돼 있기에 바로 이것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현실이다.
실제 김은영 씨의 미국 대학 교수 임용 사실이 알려진 후, 시간강사들 사이에서는 이 기회에 나도 외국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고 교수 임용 기회를 찾는 편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속속 나오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곧 시간강사들의 외국행은 일종의 도피일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시간강사 10년차인 A씨는 “국내에서 교수되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외국에서 고생하더라도 그곳에서 기회를 찾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라고 한탄했다.
국내에서 교수 임용이 어려운 것은 워낙 쟁쟁한 인재들이 많아 경쟁이 심해서가 아님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교수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관행과 의례가 아직까지 투명하지 못하고 비리로 얼룩져있다는 사실이 보다 근본적인 이유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의 젊은 인재들은 깊은 좌절과 패배감을 맛보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국행 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수 인재들의 외국행은 국가적으로도 낭비일 수 있다. 국위선양이란 슬로건만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인재들을 포장할 수는 없다. 그들이 자신의 조국에서 맘껏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될 때 외국행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또 다른 기회와 도전을 위한 당당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교수채용 방식을 과감히 개선하고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동안 앵무새의 조잘거림처럼 되풀이돼왔던 이 문제에 교육부와 대학 당국은 더 이상 수수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인 제도 마련을 위해 나서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는 외국 대학 교수로 가는 한 시간강사를 보며 기쁘면서도 슬퍼해야 하는 이유가 없을 것이다. 진정 웃으며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