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위해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주인공들은 바로 총장들. 총장들은 권위·엄숙으로 상징되던 과거의 학자형에서 벗어나 만능 CEO형이 돼 발전기금 모금, 우수 인재 유치 등에 여념이 없다. 바로 이 모습이 21세기 총장들의 자화상이다.
◆만능 CEO형 총장의 하루에는 ‘쉼표가 없다’
“요즘 CEO 아닌 총장도 있나요?” 대학 총장들 중 리더십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하는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은 리더십 스타일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또 본지가 이번 기사를 준비하면서 총장들에게 역시 동일한 질문을 했을 때, 총장들의 대답은 한결 같이 ‘CEO형 총장’이었다. 21세기 총장들의 자화상을 한 마디로 대변해주는 대목이다.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은 “교육 시장이 개방되고 생존을 위한 대학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이라면서 “대학살림의 최종 책임자는 대내외적으로 반드시 CEO 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영길 한동대 총장 역시 “이전까지는 모든 사고방식과 행동이 학자적이었지만 대학 총장이 된 후 사정이 달라졌다”며 “만능 CEO가 돼 발전기금 모금에서부터 우수인재 스카우트, 장기 발전 계획 수립 같은 일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만능 CEO형 총장들의 하루는 어떨까? 손병두 서강대 총장의 예를 보자.
새벽 5시 기상. 7시 30분 조찬을 겸한 외부인사 미팅. 9시 30분 학교 업무 결재. 10시 보직교수들과 회의. 11시 30분 외부인사 접견. 12시 오찬 겸 외부인사 미팅. 14시 기업체 대표 등 접견. 15시 학교발전기금 기부자, 동문회 등 접견. 18시 학교 행사 참여. 19시 기업체, 경제계 인사 등과 만찬···
손병두 총장의 하루 일정을 둘러보면 도무지 쉴 틈이 보이지 않는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스케줄이 가득한 손 총장의 하루는 이 시대 총장들의 현주소다.
물론 모든 총장들의 하루가 이 같지는 않다. 아직도 ‘무늬만 총장’이란 소리를 듣는 총장들은 그저 ‘오늘도 무사히’란 말만 되풀이 할 뿐이다.
그러나 학교 내부에서건 외부에서건 오직 ‘학교’만을 생각하며 불철주야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은 분명 이 시대 총장의 자화상이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세일즈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학교 발전 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기꺼이 폭탄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학가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돈이 있어야 학교도 발전시킬 수 있는 법. 총장들은 어려운 시대에 총대를 메고 한 푼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 ‘돈 있는 곳’을 찾아 나서고 있다. ‘총장의 성패여부는 발전기금 모금에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총장들의 세일즈 경쟁은 치열하다.
총장들의 발전기금 모금 방식은 개인 또는 학교의 인맥을 최대한 활용, 총장 자신의 브랜드나 학교 비전을 파는 것. 다만 ‘무조건 돈을 달라’는 식은 아니며 기부에 따른 효과, 학교와 기부자 간 윈-윈 전략 등을 강조한다.
어윤대 고려대 총장은 대학가에 ‘와인 세일즈’ 신화를 남겼다. 어 총장은 지난해에 1백주년 기념물로 제작한 프랑스 산 고급 와인 ‘라 카르도네’를 각 계에 선물하고 총 1천억원이 넘는 기금을 모았다. 물론 와인이 아니라 ‘글로벌 고대’의 비전을 판 결과였다.
취임 2개월 째 접어든 손병두 서강대 총장이 지금까지 모금한 금액은 50억원. 아들의 축의금마저 학교 발전기금으로 내놓을 정도로 손 총장의 열의는 대단하다. 이에 발전기금과 관련한 감동적인 에피소드도 연출되고 있다.
최근 하숙집에서 화재로 숨진 아들을 대신해 그 어머니가 1백만원을 보내왔을 때, 비록 큰 돈은 아니었지만 손 총장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진인사대천명’, 발전기금 모금과 관련한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의 신조다. 서 총장은 대학과 기부금 문화의 함수관계를 설명하면서 기부자들을 찾아 나선다. 최근에는 기부금 활성화 동아리인 ‘S-에인젤’을 국내 대학 최초로 출범시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등록금 한번 더내기 운동’으로 대학가에 화제를 일으켰던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은 동문들과 기업에 숙명여대의 비전과 꿈을 팔고 있다. 학교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누가 돈을 주겠냐는 것이 이 총장의 지론이다.
이효계 숭실대 총장은 지난 8월 초 미국을 다녀왔다. 미주에 있는 숭실대 동문을 만나 새롭게 출발하는 학교의 비전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이 총장은 약 1억4천만원을 모금했다. 이번 학기에는 교계, 동문회, 재계 인사 중 20여명을 선정, 1:1 공략을 통해 발전기금을 모금할 계획이다.
발전기금 모금에도 ‘협력관계’를 강조하는 양현수 충남대 총장은 지난 6월 공대 교수들과 함께 이놉스라는 회사로부터 22억원 상당의 소프트웨어를 기증받는 성과를 이뤄냈다. 양 총장은 공약사항이었던 4백억원 모금을 위해 발전기금 조성 추진본부를 설치하는 등 더욱 적극적인 공세에 나설 예정이다.
김영길 한동대 총장은 얼마 전 충주의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교회에서 진행된 한동대 후원 설명회가 끝난 뒤, 한 할머니가 바지춤에서 천원 몇 장과 동전을 한 움큼 꺼내면서 ‘꼭 좋은 학생들로 키워주세요’라고 말했던 것.
김 총장은 “큰 기업들이 주는 수 억원의 발전기금도 고맙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도움이 더 크게 느껴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지난 여름방학에는 미주 지역의 9개 도시를 순방하며 한동대 후원의 밤 행사를 개최했다.
◆총장이 아닌 어버이의 마음으로
분식집에서 학생들과 라면을 같이 먹는 총장, 앞치마를 두른 총장, 학생들과 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차 대신 도보를 선택한 총장. 권위적인 학자형 총장 시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들이다.
요즘 총장들은 스스로 총장실을 벗어나 구성원들과의 거리 좁히기에 나서고 있다. '고객 감동'이 경영의 키포인트로 떠오르면서 서비스 마인드로 무장하고 있다. 또 다른 21세기 총장들의 자화상이다.
임병헌 가톨릭대 총장의 학생 사랑은 재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하다. 임 총장은 이전 총장들과는 달리 교내에 마련된 사제관에 머물면서 종종 늦은 밤에 산책 겸 캠퍼스를 직접 돌아본다. 저녁에 기숙사에 들러서는 ‘출출한 사람들은 나와 같이 라면 먹으러 가자’하며 학생들과 함께 학교 앞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기도 한다. 또한 기숙사에 있으면 과일을 많이 못먹게 된다며 기숙사생들에게 과일도 사주고는 한다.
김혁종 광주대 총장은 지난 달 열렸던 학교 축제에서 손수 주막을 운영해 화제가 됐다. 명목은 북한동포 돕기 기금 마련. 하지만 학생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만들고 싶은 것이 또 다른 속내였다. 김 총장의 파격 변신은 구성원들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이날 수익금 1천2백만 여 원은 통일 쌀보내기 운동 본부에 기탁됐다.
상지대 정문에서 본관까지는 언덕길이다. 젊은이의 걸음으로도 15분은 걸어야 한다. 하지만 김성훈 상지대 총장은 가끔 이 길을 차가 아닌 도보로 이동한다. 길을 걸으며 학생들과 학교 발전에 관한 이야기 등을 나누고 싶어서다. 김 총장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얻은 소중한 의견들을 하나라도 놓치는 법이 없다.
시험 기간 때면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손수 야식을 나눠주는 손봉호 동덕여대 총장 역시 이 시대 총장의 대표적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