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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칼럼] 한국대학신문
[기고]대학도 ‘슬로우’해지면 어떨까?
김현철 초당대 교양학부(슬로우문화연구센터) 교수
과학기술문명의 진보와 더불어 인류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속도’를 누리게 된다. 그리고 그 ‘기계적 속도’가 등장함으로써 인류가 단위 시간당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의 범위가 급속히 확산된다. 하지만 이것은 공간과 공간을 밀착시킴으로써, 우리가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사라지게 하였으며, 장소마다 존재하던 고유성을 상실시키게 된다. 장소마다 독특하게 존재하던 흔적은 사라지며, 그 발자취는 찾아볼 수 없게 된다.

현재 인류는 ‘속도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다. 속도를 지향하는 삶이란 속도가 조장하는 세계관을 긍정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속도를 추구하다 보니 '느림'이란 답답함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더 나아가 장애 혹은 후퇴, 심지어 게으름과도 연결되어 도덕적으로도 용납되어서는 안 될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속도가 조장하는 세계관의 문제를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다. 속도전에서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는, ‘결과지상주의’의 사고를 조장하게 된다. 결과지상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누구나 느끼는 그 허탈감은 속도로 인해서 우리가 느끼는 멀미와도 같다. 걸어 다니거나 뛸 때, 즉 생체적인 속도로 움직일 때 우리는 멀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체적 속도를 능가하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자동차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있다고 할지라도, 그 속도로 인해서 멀미를 느끼게 되는 것은, 기계적 속도가 우리 인간에게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결과만이 중요하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던 우리가 지금 느끼는 허탈함과 공허함은 생체적 속도를 능가하는 기계적 속도로 달려왔을 때 느끼는 멀미와도 같다. 우리 삶의 흔적인 ‘과정’이라는 공간은 이와 같이 우리에게 허탈함이란 느낌만을 남긴 채, 사라지게 된다.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속도가 조장하는 세계관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효율성’은 목적지로 향하는 여러 길 중에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하도록 쉴 새 없이 계산하도록 만든다. 효율성이란 다름 아닌 세상을 수치화시켜서 바라보는 사고라고도 할 수 있다.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가치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위해 잃게 되는 또 다른 것들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면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 포기되었던 우아함과 아름다움 같은 것들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효율성이 작동되지 않는 영역에서 그 가치를 들이댈 때 발생한다. 음악의 영역에서 미술의 영역에서 효율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네 삶에서 수치화시킬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전통적인 가치들은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판단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효도, 관용, 종교적인 가치 이 모든 것들이 그러한 영역에 속한다. 결코 계산될 수 없는 가치들이 효율성의 관점에서 수치화되어 버린다. 그리고 폐기처분된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더 이상 그 가치를 선전하는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모회사 TV 광고는 ‘빨리 빨리’라는 가치가 우리를 지배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IT 강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를 드러내 놓고 주장한다. 하지만 ‘빨리 빨리’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우리가 잃었던 것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권일 수도 있고, 자유일 수도 있다. 이제 효율성이라는 가치를 선전하기 위해서 애꿎게 돌려서 이야기 할 필요가 없는 그런 시대에 살게 되었다.

지금 초당대에서는 효율성과 속도에 지배된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고 본래의 속도를 되찾음으로써 균형과 조화로운 삶을 구현하려는 정신문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속도 제일주의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속도에 끌려 다니지 말자’는 일종의 문화운동이다. ‘슬로문화의 구현 운동’이라고 이름 지어도 좋을 듯싶다.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것이 대부분을 차지함으로 숙성한 사회와 문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속도 문제를 극복하는 것의 의미는, 세심함 부드러움 사려 깊음과 같은 잃어버린 가치들을 회복시키는 것이며, ‘슬로문화의 구현 운동’은 속도 시스템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과 환경에 대한 배려를 위한 첫 발걸음이다.
한국대학신문 칼럼 | 입력 : 11-01-13 오후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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