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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회고록 출간한 팔순 양띠 교수들
이화여대 김재은·서광선 명예교수 인터뷰
40년 봉직 기록, 한국 지성사로서도 의미
팔순에도 꾸준한 활동, 대안대학 세우는 꿈도

지난해 12월, 팔순을 맞은 1931년생 이화여대 명예교수 다섯 명(김영일, 김영호, 김재은, 서광선, 안광식 교수)이 <팔순 양띠 교수들 이화사랑 반세기>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이들은 1996년 정년퇴임 후에도 꾸준히 만나 이화여대에 얽힌 추억을 공유했다. 다섯 교수 중 책 표지의 글씨를 쓴 서광선 교수(이하 서 교수)와 그림을 그린 김재은 교수(이하 김 교수)를 만나 그들이 1960여 년 강단에 선 이후 반세기 동안 경험한 이야기를 들었다.

“(서 교수) 이화여대 재직 중에도 양띠 동갑내기 남자 교수 다섯이 자주 만나 식사도 하고 소식도 서로 전하며 굉장히 가깝게 지냈어요. 양띠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거든요. 하하(웃음). 2009년 가을인가, 모여 앉아 팔순을 어떻게 보낼지 의논했죠. 여행을 다녀오자는 의견도 나오고 다섯 명 전공이 다 다르니 인문 사회과학 학술 대회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함께 봉직 회고록을 내는 것이 어떻겠냐는 데 의견을 모았지요.”

2010년 새해부터 책을 쓰기로 약속했지만, 독감, 입원, 가족 여행 등으로 다섯 교수의 책 출간은 난항을 겪었다. 특히 김 교수는 위암 수술 후유증으로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2010년 후반기, 다행이도 김 교수의 건강이 회복돼 책이 무사히 출간될 수 있었다.

“(서 교수) 40년 학자 생활에 원고 마감은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죠. 제가 대표를 맡아 선생님들을 많이 괴롭혔어요. 다행히 해를 넘기지 않고 2010년 마지막에 책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이화여대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학교 야사도 될 수 있고 교수사가 될 수도 있죠. 또 한국의 정치·사회적 상황도 담겨 있기에 한국의 지성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해놓고 보니 굉장히 뜻있는 문서가 된 것 같아요.”

“(김 교수) 다섯 교수의 글에 영문학·독문학·심리학·기독교학·언론학 등 전공이 배어있다고 느꼈어요. 그걸 속일 수 없더라고요. 지난해 12월 15일 출판 기념회가 열렸는데 제 손님으로 다른 대학 명예교수들이 굉장히 부러워하더라고요. 당분간 이런 성격의 책이 또 나오긴 어려울 것 같죠?”

이 책의 색인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이 있다. 바로 다섯 교수가 오랜 시간 함께 일했던 고 김옥길 전 총장이다. 김 교수와 서 교수 모두 그녀를 강한 지도력을 지녔던 리더로 기억했다.

“(서 교수) 냉면과 빈대떡이 김 총장님 집의 고정 메뉴였습니다. 한번은 저와 김 교수가 속한 입시제도개선위원회에서 입시를 사지선다형이 아닌 논술 시험으로 바꾸자고 제안했어요. 이화여대에는 70년대 논술을 실시했던 거죠. 물론 3년 만에 채점의 어려움을 호소한 다른 교수들의 건의로 사라졌지만, 김옥길 총장은 저희가 새롭게 시작한 일에 많은 지지를 보태셨어요. 그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났지만, 한국 여성 지도자의 모범이 될 만한 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옥길 전 총장과의 인연 외에도 서 교수는 1964년부터 1996년까지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겪은 일들을 책 속에 풀어놓았다. 특히 1980부터 84년까지 정치교수로 해직됐던 경험을 묵묵히 써냈다.

“(서 교수) 제 글 제목이 ‘강계 촌놈 염소가 이화동산에 태어나다’인데 제가 말을 안 듣는 염소와 닮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해 12월 유신정권의 재건을 획책하는 신군부 세력이 국민들의 민주화 바람을 억제하기 시작했죠. 대학교수들이 강단에서 바른말을 하면 잡아가던 시대였고 당시 제가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했죠. 그동안 책도 쓰고 붓글씨를 배웠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는 데 서예가 큰 도움이 됐어요. 또 목사 안수를 받기도 했고요. 그 시간이 나에게 힘든 시기인 동시에 축복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37년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이화여대에 봉직한 김 교수는 책에서 교수들의 실수 에피소드를 묶어 소개했다. 그중 ‘교수들의 정년 퇴임사’란 글에는 퇴임 후 교수들의 자세 대한 김 교수의 생각이 녹아있다.

“(김 교수) 정년 퇴임사를 할 때 3분의 시간이 주어져요. 그 3분의 말 속에 교수들이 그동안 함께했던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정년까지 일할 수 있었던 건 총장·이사장의 지지도 있겠지만, 선·후배 동료들 그리고 제자가 지지해줘서 가능한 일이거든요. 정년 퇴임사에서 저는 함께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신세 진 많은 분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약속을 했었죠.”


김 교수는 그 약속을 지켰다. 그는 30년 동안 퇴근하며 옛 아현동 골동품 가게들을 지나며 모은 민속품 천 점을 이화여대 박물관에 기증했다. 또 10년 동안 자신이 그린 펜화를 이화여대 심리학과 동창회에 내놓기도 했다. 퇴임 후에도 김 교수는 계속해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김 교수) 교수들이 보통 만 65세에 정년퇴임을 합니다. 그들에게는 그동안 쌓아온 전문성이 있는데, 이것을 썩히는 것은 굉장히 아깝다고 생각해요. 저는 정년 1년 전에 창의성교육연구소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퇴임 후에는 자연스럽게 장소만 옮겨서 하던 일을 계속했죠.”

다섯 교수의 회고록에는 공통점이 있다. 글의 스타일은 모두 다르지만, 결론에서 학교에서 봉직한 시간들이 행복했다는 말을 진심으로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팔순의 나이에도 활발히 활동한 두 노 교수의 앞으로 계획과 바람을 물었다.


“(김 교수) 나는 75세까지 살면 잘 산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팔십 넘게 살았으니까 그 이후에는 덤으로 산다고 생각합니다. 건강이 별로 좋은 편이 아니라서 올해는 건강관리를 잘 해서 봉사활동도 좀 하고 싶고 나이 든 친구들과도 열심히 교류하고 싶습니다.”

“(서 교수) 전임 교수가 되지 못한 강사들을 전임 교수로 하는 대안 대학을 만들고 싶어요. 65세에 강제 은퇴한 교수들은 연금을 받으니까 무료 봉사시키고 대학 입시에 실패한 학생들을 데리고 오고요. 교사(校舍)도 필요 없어요. 한 장소가 아니라 유동적으로 옮겨 다니는 거죠. 이화여대에서 남자라는 이유로 총장 소리를 못 들었는데, 거기서는 제가 총장을 하려고 합니다. 하하(웃음). 한국대학신문에 처음 밝히는 포부인데 제가 못 지키더라도 이러한 생각은 널리 퍼질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윤수경 기자 (skyoon@unn.net) | 입력 : 11-01-13 오후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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