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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대학출신CEO2]“기술자는 학벌이 아니라 기술로 승부해야”
김장회 서울시치과기공사회장
“치기공사로 성공하는 것과 전문대학을 나왔는지, 4년제를 나왔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예요. 저는 후배들에게 끈기를 갖고 기술을 습득하고, 항상 공부하라고 조언합니다. 세미나나 관련 스터디도 자주 참석해야 하고요. 그러다 보면 어느 사이에 최고의 치기공사가 되어 있을 겁니다.”

김장회 서울시치과기공사회장(광암치과기공소 대표)은 대학에 진학하기보다 대를 이어 농사짓기를 원하시던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1년 반의 시간을 보냈다. 결국 그는 또래보다 3년이나 늦은 1979년 대전보건대학 치기공과에 입학했다.

“재수학원에서 만난 친구가 치기공과를 추천했어요. 소규모 자본으로 사업을 할 수 있고, 기술만 있다면 얼마든지 개척이 가능하다고 설득했죠. 친구의 추천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제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하지만 1983년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취직했던 기공소들의 작업환경은 정말 열악했어요.”

김 회장이 취업할 당시 기공소들은 지하실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분진이 작업장을 가득 채웠고, 햇빛 한 줌 받기도 쉽지 않았다. 작업 강도도 무척 높아서 오전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일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7년을 보낸 김 회장은 자신이 생겼고, 1990년 광암치과기공소를 설립했다.

“당시 저를 포함한 종업원 3명과 자본금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금액으로 시작했죠. 장비라고 해 봐야 크라운(자연치아가 손상되었을 때 인공치아를 만들어 자연치아 위에 씌우는 것)작업을 할 수 있는 핸드피스 등 정말 기본적 것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미나와 스터디를 빼놓지 않는 등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노력 덕분에 김 회장은‘엠프레스’라는 재료를 이용한 보철물을 다른 기공소보다 일찍 제작할 수 있었다. 엠프레스가 다른 치아와 색깔이 잘 어울린다는 장점이 알려지면서 기공소는 발전하기 시작했고, 2005년에는 종업원 18명에 매출액 12억원 정도의 대형 기공소로 거듭났다.

“사업을 하면서 전문대학 출신이라 힘들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안 했어요. 기술자는 기술로 말해야지 학벌로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기술을 습득했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치기공에 대한 김 회장의 열정은 자식의 진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처음에는 치기공과를 거부했던 큰아들은 아버지의 열정에 못 이겨 고려대 치기공과에 입학해 이달 졸업을 앞두고 있다.

“제가 (치기공 기술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자식에게 기술을 알려준다면 더 잘 가르쳐 줄 수 있을 것 같았고요. 하지만 아들에게는 영어를 강조합니다. 좋은 치기공 기술을 한국에서만 쓴다는 것은 아깝습니다. 영어를 하게 되면 자신이 개척할 수 있는 범위가 세계 수준으로 넓어지죠. 앞으로 치기공을 전공하는 학생은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부분입니다.

4년제 대학에 치기공과가 자꾸 늘어나게 되면, 전문대학 치기공과의 설 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김 회장은 고개를 젓는다.

“아들의 대학 커리큘럼을 보니 실습보다는 연구와 발표 위주로 짜여 있더군요. 실무 관련 능력은 전문대학 학생들이 좀 더 뛰어날 거라 여겨집니다. 전문대학 커리큘럼이 실무 위주로 짜여 있거든요. 4년제와 전문대학 각각 담당해야 할 몫이 있다고 봅니다.”
조용석 기자 (chojuri@unn.net) | 입력 : 11-02-02 오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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