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질랜드 의류판매회사 할렌스타인스는 2001년 5월 13일부터 20일까지 약 1주일 동안 TV방송에 우리나라 국회의 폭력 장면 6-7초 분량을 비즈니스 셔츠 광고로 활용했다. 그들의 부적절한 상술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 국회는 마땅히 이를 수치로 여기고 자성의 계기로 삼았어야 옳았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그 이후에도 사사건건 국회 내 폭력을 일삼아 왔으며, 폭력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8년 12월 18일에 발생한 ‘쇠망치 국회폭력’ 사태는 전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으며, 그때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앞에서 한없는 수치심을 느껴야만 했다. 2009년 1월 5일에는 이른바 ‘공중부양’으로 회자되었던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국회 내 폭력사태가 발생했으며, 2010년 12월 8일에는 한나라당의 단독 예산통과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국회폭력이 재연되었다. 이와 같은 국회 내 폭력 사태는 쿠데타와 같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원들 스스로가 자행한 국회 파괴 행위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로렌스 콜버그는 의원의 입법활동에 요구되는 도덕적 수준을 5단계로 보았다. 이는 법을 준수하는 4단계와 최고의 도덕적 수준에 해당하는 6단계 사이에 위치하며, 국민들에게 가장 유익한 방향으로 규범체계를 만들 수 있는 공리주의적 사고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중에는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2, 3단계나, 혹은 상을 바라고 벌을 피하는 1단계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의미 있는 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이미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되는 기본 요건이 있다. 바로 ‘논의의 윤리학’이다. 이것은 논의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고 적용되는 의사소통능력과 의사진행 규칙들이다. 우리 국회의 폭력사태는 바로 이 논의 윤리학의 부정에서 비롯된다. 의사규칙에 관한 법체계가 이처럼 총체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것은 국회 내부에 의원들의 불법과 비리 사실을 기소할 수 있는 어떤 제도도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하원은 의원들로 구성한 ‘윤리위원회’와는 별도로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한 독립적인 의원윤리 심사기구로서 ‘의회윤리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시민들의 제보와 고발까지 허용하고 있다. 영국의 상원과 하원에서도 의원들로 구성한 ‘윤리특권위원회’와는 독립적으로 의원의 윤리위반 사항을 심사하는 ‘윤리감찰관’과 의원들의 공적 비용을 점검하는 ‘비용지불감찰관’ 제도가 있다. 미국과 영국의 의원들은 의사규칙 위반은 물론이고 의회의 사무용품이나 팩스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하찮은 일에 대해서조차 징계조치를 피할 수 없다.
국회는 헌법이 그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독립적인 국가기구이다. 국회가 원만한 국정 기능을 수행하려면 국회윤리특별위원회와는 별도로 불법ㆍ비리 의원들을 기소할 수 있는 자율적인 사법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오직 이 경우에만 국회는 그 본래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국회 내 폭력과 비리를 방치하는 것은 의원들 스스로가 국회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국회는 지금 선진화 요구에 직면하여 있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전국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직업별 청렴 수준을 설문한 결과를 보면 국회의원은 총 25개 직업군에서 꼴찌로 나타났다. 국회 정상화의 길은 의원윤리심사제도의 강화에 있다. 오직 그 길만이 국회가 국민들의 오랜 불신을 떨치고 새로 거듭날 수 있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