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이름이 ‘기중’이군요. 한자로 어떤 ‘기’자와 ‘중’자인가요? 이름을 외우려고 물어보는 겁니다. 한자는 외우도록 돕는 힌트거든요. 음에 대한 힌트보다는 의미에 대한 힌트가 더 기억하기 쉽습니다. 이런 게 바로 ‘LBH(Learning By Hint)’ 학습법이라고 보면 됩니다.”
전광진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사진>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의 이름을 외운다고 말했다.
“‘열심’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 질문이 이어진다. 기자가 선뜻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자 전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열심’의 뜻이 뭐냐 물어보면 ‘최선을 다하는 것’ 정도로 말합니다. 열심은 원래 더울 ‘열(熱)’ 자에다가 마음 ‘심(心)’ 자를 씁니다. ‘뜨거운 마음’이라는 거예요. 마음을 뜨겁게 달구니 어떤 일을 할 때도 부지런히 하겠죠”라고 말한다.
기자가 무릎을 치자 또 다시 질문 공세다. “그럼 ‘한심’은 무슨 뜻일까요?” 기자가 잠시 생각하다 “‘한’자는 혹시 차가울 ‘한(寒)’ 자를 쓰나요?”라고 답하자 전 교수는 박수를 친다. “맞습니다. 마음이 차가운 것을 ‘한심하다’라고 합니다. ‘열심’의 반대말이기도 하고요. 반대말도 힌트 중 하나죠.”
그러더니 전 교수는 기자에게 자신이 출간한 사전을 펼쳐 보인다. 전 교수가 낸 사전은 모두 세 권. 지난 2007년에는 5만8000단어를 수록한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을, 지난 2008년에는 한글을 깨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에게 꼭 필요한 1만5000단어를 수록한 <어린이 속뜻사전>을 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에는 초중생들의 국어사전 찾기 수업을 겨냥해 고유어·외래어·한자어·혼종어 등 2만8000단어를 수록한 <초중교과 속뜻학습 국어사전>을 출간했다.
앞선 두 권의 책 역시 인기지만, 이번에 낸 사전은 벌써부터 반응이 상당하다. 국어사전 분야에서 다른 사전들을 제치고 넉 달 만에 사전분야 3위(교보문고 집계)를 달리고 있다. 1·2위에 오른 사전이 각각 2008년, 2009년에 발행된 것을 감안할 때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하 어플)으로도 사전을 냈다. 사전이 인기를 끌자 어플을 개발하는 업체에서 제안이 들어온 것. 아이폰을 꺼내 보이면서 사전 어플을 자랑한 전 교수는 “유료 다운로드 수에 따라 받는 수익이 쏠쏠하다”며 싱글벙글한다.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에 따르면 그야말로 ‘승승장구(乘勝長驅: 싸움에 이긴(勝) 여세를 타고(乘) 계속(長) 몰아침(驅))’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하면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중어중문학과 교수인 전 교수는 왜 우리말 한자어 사전을 만들게 됐을까.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등호가 뭐냐’면서 배운 것들을 자꾸 물어보는 거예요. 대략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왜 그런지 정확하게 설명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명을 해주다 보니 알게 됐지요. ‘암기’가 아니라 ‘이해’를 시켜줘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한자는 뜻글자입니다. 한자로 만들어진 우리말 단어를 이해시키면 그 속뜻까지 알 수 있겠구나 싶어 속뜻사전을 만들게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든 사전이 바로 첫 사전이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이다. 혼자서 어휘를 선별하고 뜻을 다는 작업에 걸린 시간은 무려 12년. 순수하게 사비를 털어 사전 작업에 매진했고, 새로운 학습법도 정립했다. 바로 ‘LBH 학습법’이다.
사전 집필이 끝났지만 출간하기가 용이치 않았다. “사전은 돈이 안 된다”며 거절하는 출판사도 있었고, 사전을 내자고 하던 몇몇 출판사와의 계약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 사전의 토대가 된 LBH 학습법을 딴 ‘LBH교육출판사’다.
“집사람이 졸지에 사장 겸 사원이 됐지요. 그런데 의외로 사전을 내자마자 반응이 좋았습니다. 지금은 사전 세 권이 모두 사전분야 베스트10에 올라 있습니다. LBH 학습법이 옳았다는 뜻이고, 참 뿌듯합니다.”
전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LBH 학습법을 널리 알리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매달 한 번씩 초중고 교사들과 교감·교장 선생님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는데, 벌써 27차까지 진행했다. 2년 동안 자신의 학습법을 알리는 까닭은 우리 교육의 혁명을 위해서다.
“사전 표지에 이런 글귀가 있어요. ‘암기에서 이해로, 대한민국의 교육혁명을 주도하자’라고요. 우린 암기가 좋은 걸로 착각하는데, 속뜻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길 하는 겁니다. 암기의 ‘암(暗)’자가 왜 ‘어둡다’는 의미의 한자일까요. 바로 덮어놓고 외우니까 그런 겁니다. 우리 교육은 암기에서 이해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감히 ‘교육혁명’이라는 말을 사전의 표지에 쓴 겁니다. 제가 낸 사전이 전국 집집마다 한 권씩 놓일 그날까지 앞으로 끊임없이 노력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