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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무소 뒷마당에는 아직도 그의 숨결이...
후쿠오카 윤동주 66주기 추모제에 다녀와서
김우종 본지 전 주필, 문학평론가

지난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이 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한 지 66주기 되던 날이었다. 일본이 전쟁으로 힘이 빠진 틈을 타서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하려 모의하다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으로 죽은 날이다. 함께 투옥된 송몽규(宋夢奎, 교토제국대 학생)도 며칠 뒤에 그렇게 죽었다.

올해도 추모행사는 옛 형무소 뒷마당에서 한일 공동주최로 열렸다. 작고 50주기를 맞아서 처음으로 추모행사를 연 지 16년째다.

한국대학신문은 16년 전 교수, 학생, 문인, 기자, 가수, 무용가, 풍물놀이패 등 50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추모행사단을 꾸려 후쿠오카에 도착, 다음 날 추모제를 열었다. 그리고 곧 교토로 날아가서 2월 16일 아침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구내에 세워지는 시인 윤동주 시비 제막식에 참가하고 오후에는 윤동주 문학심포지엄을 주최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도시샤대에서 마련해 준 리셉션에 참여했다. 모든 행사는 한국대학신문사가 주최했다.

한국대학신문이 16년 전 그처럼 많은 비용을 투자해 윤동주 추모행사를 개최하고 그 행사를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는 이유는 이렇다. 대학생이며 시인이었던 윤동주의 후쿠오카 옥사가 의미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물음을 통해 이 땅의 대학인들을 비롯한 모든 지식인과 온 국민이 마땅히 지향해 나가야 할 가장 올바른 정신과 삶의 지표를 찾고자 하는 것, 그리고 또 그 깃발을 온 세계 하늘에 휘날리며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평화의 세상 만들기에 앞장서자는 것이다.

나는 한국대학신문 주필이며 문인으로서 1994년 가을 후쿠오카 감옥을 사전 답사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반세기가 흘러서야 그토록 슬프고 원통한 그의 생체실험장을 처음으로 찾아갔던 것이다. 너무도 야속하고 무심했던 우리 민족이다. 그날 나는 감시카메라가 매달린 감옥의 높은 담벼락을 올려다보다 눈물이 핑 돌았었다. 해방을 반년 앞두고 곧 죽게 될 한국의 젊은 대학생 시인이 3층 감방의 창살에 발돋움을 하고 간신히 매달려 멀리 현해탄을 바라보며 민족의 운명을 슬퍼하고 어머니를 부르다가 팔의 힘이 빠져 쓰러졌을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가 너무도 가여워 솟구치는 눈물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곧 대형 걸개그림 그리기에 착수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95년 2월 14일 우리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송몽규 등과 함께 웃고 있는 윤동주의 걸개그림 앞에 모여서 추모제를 시작했다.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전국의 우수한 미대생들을 참여시켜 제작한 그림이다.

이날 이 광장에서 서울대 이애주 교수(무용가)는 소복을 입고 풍물놀이패들의 연주에 맞춰서 춤을 추며 윤동주의 넋을 위로하고 한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가수 양희은은 '아침 이슬'을 불렀다. 애수를 머금은 그녀의 맑은 노랫소리는 담을 넘어 윤동주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자리와 멀리 하늘과 땅에 울려 퍼졌다.

이날 일본측 대표 니시오카겐지 후쿠오카대 교수는 내 뒤를 이어서 앞에 나가 한 손을 높이 치켜들고 격한 목소리로 지난날 일제의 과오를 외쳤다.

“우리가 윤동주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간담회 때 그는 나의 손을 꼭 붙잡고 진정한 한일 간의 화해의 길을 우리 손으로 열어가자고 했다. 이날의 행사는 과거의 역사를 되새기며 증오와 분노로 원수를 갚자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가해자와 피해자의 만남을 통해서 참된 반성과 화해와 평화를 찾자는 것이었다.

그 후 우리는 교토로 날아가서 윤동주가 옥사한 2월 16일에 맞춰 거행된 시비 제막식에 참가했다.

도시샤대가 시비를 세웠지만 이것은 한국대학신문이 교토의 코리아구락부(도시샤대 출신 한국인동창회) 대표들을 만나서 시비건립을 강력하게 추진하며 의지를 보인 결과였다. 도시샤대는 일본 근대사에 많은 훌륭한 인물을 배출한 대학이지만 그동안 누구의 기념비도 건립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졸업생도 아니고 더구나 일본에 맞섰던 한국인 윤동주의 시비를 세운 일은 지극히 이례적인 사례가 됐다. 지금은 한국의 학교들이 수학여행으로 교토에 가면 학생들이 이곳을 답사하고 있으니 감회가 깊다.

이번 추모제는 참가 문인 21명이 각자 기본 경비를 부담하고 다른 많은 행사 비용을 한국대학신문이 후원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일본측도 대표자 마나기미키코(馬男木美喜子)를 비롯해서 후쿠오카대 구마기(熊木勉) 교수와 일반인 등 20~30명이 참가했고 한국총영사관의 부영사 배판열(裵判烈)도 함께해 주었으며 서일본신문 기자가 취재해 갔다. 서일본신문은 17년 전 형무소 사전 답사 때 그 사실과 다음 해의 추모제 계획을 전면기사로 보도해 전 일본에 알린 바 있다.

새로 단장된 형무소 뒷담 앞에 돗자리를 깔고 양측 대표가 두 나라 말을 함께 쓰며 인사말을 시작으로 영정 앞에 꽃을 바치며 제사를 올리면서 한국수필가협회 대표가 '윤동주 찬가'(김우종작)를 낭송하고, 모던포엠 대표가 '별 헤는 밤'을, 그리고 모든 참가 시인이 창작시를 낭송했다.

추모행사를 함께해 준 일본측 단체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은 1994년 가을 창단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해마다 윤동주가 죽은 그 자리에 가서 꽃을 바치고 묵념을 올리며 그를 향해 추도사를 하고 시낭송도 해 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16년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월 모여서 윤동주의 시 한두 편에 대한 연구발표 및 토의를 해 왔다. 이들이 그동안의 활동을 묶어서 발행한 책자에는 이 단체를 창립하게 만든 아버지가 김우종이라고 적혀 있다. 1994년 내가 처음으로 그곳을 답사하고 그곳 니시오카 교수와 만난 직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후 이 단체는 그동안의 공적으로 한국의 파라다이스 문화재단이 제정한 문화상을 수상해 수필가 전숙희 재단 이사장의 뜻을 전했지만 이들은 수상을 한사코 사양했다.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한국으로부터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대가를 받는다면 윤동주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 훼손되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 여성 회원은 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자기 집 정원의 수선화로 향기로운 꽃다발을 만들어 나를 맞아 주며 말했다. 윤동주의 맑은 향기가 해마다 그렇게 자기 집 정원에서 수선화로 피어나는 것을 꺾어 왔다고. 한 꽃대에 일곱 송이 정도씩 핀 것을 30개 정도 묶었으니 약 200송이의 수선화를 준 셈이다.

그리고 한 할머니는 신문기사를 보고 참가하게 되었다면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육첩 방은 남의 나라”(<쉽게 쓰여진 시>)라고 읽어 나가다가 복받쳐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울먹였다.

윤동주를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가수나 배우들을 좋아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의 한류가 소리없이 가해자의 땅 일본 도처에서 작은 시냇물처럼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윤동주의 정신세계는 세 가지로 집약된다. 바로 순결과 사랑과 평화다.

첫째, 순결정신은 그의 시 여러 곳에서 '부끄러움'이라는 말로 나타난다. '서시'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에서 이 정신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 부끄러움은 도덕적 양심에 대한 부끄러움이며 과거 선비들이나 관리들이 가장 큰 덕목으로 삼은 염치사상 또는 청빈사상이 이에 해당된다. 투기, 위장전입, 차명, 탈세 등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병역기피로 애국심을 버린 사람 아니면 출세 길에 나설 수 없음을 거의 입증해 주는 국회 청문회를 보면 대한민국 지도층의 청렴지수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이른 것인지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윤동주의 순결주의가 왜 그토록 절실한 정신적 순화의 지표가 되어야 하는지는 이런 현실이 말해주고 있다.

둘째, 윤동주의 사랑의 정신은 민족주의적이면서도 세계적, 보편적인 사랑의 정신이며, 한편으로는 인간적 정서를 상실해가는 현대 과학문명의 치명적 증상을 치유할 사랑의 정신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서시'에서 이렇게 말한 “모든 죽어가는 것”에 대한 사랑은 우리 민족만의 죽음과 이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사상적 근간은 민족주의와 기독교정신이 하나 되어서 북간도에서 키워진 것이며 예수의 사상 자체가 그렇듯이 그것은 민족주의적 사랑의 정신을 세계적 보편성으로 확대시켜 나간 것이다.

셋째, 윤동주의 정신세계는 평화에 대한 사랑이며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 수호정신이다.

<십자가>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이 그것이다. 살인자들 앞을 가로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겠다고 말한 그는 분명히 저항시인이지만 자기 목숨을 희생시켜 가면서 꽃처럼 피를 흘리겠다고 한 것은 평화적 방법으로 평화를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정신은 평화주의이며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주의이다. 그리고 그것은 거룩한 자기희생정신이다.

윤동주는 이 같은 순결과 사랑과 평화의 정신을 십자가처럼 짊어지고 남의 나라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했다. 그런 의미에서 옛 후쿠오카 감옥은 윤동주의 순교지이며 우리 민족의 순교지이고 그 정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성지다.

천주교에서 순교자를 기리며 그 자리를 미리내 성지, 해미 성지, 홍주 성지로 정하고 찾아가듯 후쿠오카 감옥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민족적 사랑과 인류적 양심의 성지로 순례의 발걸음을 옮기고, 우리는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그 높은 담벼락을 쳐다보며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

한국대학신문 기자 (gizoong@unn.net) | 입력 : 11-02-28 오전 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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