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2005~2006년 연속 박스 오피스 1위. 2006년 영국 황실 주관 로얄버라이어티 쇼 공연. 2007년 브로드웨이 상설공연 시작. 2010년 10월 중국 13개 도시 투어. 누적공연 횟수 7000회, 누적관객 300만명.
이는 넌버벌 퍼포먼스(비언어극) ‘점프’를 설명하는 경력의 일부다. 소개하지 못한 내용이 한참 남았을 만큼 점프가 가진 이력은 화려하다. 하지만 이 퍼포먼스의 제작자인 김경훈 (주)예감 대표
<사진>가 예술계 전문대학인 서울예술대학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화, 연극, 음악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 흥미가 많았던 김 대표는 막연히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서울예대 광고창작과에 입학했다. 당시 남산에 둥지를 틀었던 서울예대는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예술인이었기 때문에 김 대표의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왼쪽 어깨에 부딪히는 사람은 문예창작과 학생, 오른쪽 어깨에 부딪히는 사람은 연기전공 학생이었어요. 한쪽에는 실용음악과 학생들의 노랫소리가 들렸고요. 당시 광고를 전공하던 저는 친구들의 재능을 모아서 멋진 작품을 만든 후 잘 포장해서 세계인에게 팔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는 생소했던 공연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했던 것 이지요.”
김 대표는 97년 대학을 졸업한 후 안정적인 직장을 잡지만, 꿈을 버리지 못하고 친구들을 모아 점프의 모태가 된 ‘별난가족’이란 작품을 제작한다.
“함께 시작했던 친구들은 전공이 다 달랐어요. 한명은 문창과 출신이었고 또 다른 한명은 연기를 전공했죠. 친구들은 극본을 만들었고, 연기를 고민했고, 필요한 예술인들 모았습니다. 저는 기획부터 펀딩, 경영과 마케팅 등 전반적인 것을 총괄하는 프로듀서를 맡았고요. 대학에서 맺은 인적 네트워크와 다양한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점프도 없었겠지요.”
하지만 성공이 금방 찾아온 것은 아니다. 2000~2003년까지 점프는 빛을 보지 못했고, 김 대표의 개인 빚이 13억원에 달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화려한 볼거리와 재미있는 스토리로 무장한 점프가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주)예감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현재 김 대표가 (주)예감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쇼엔아츠와 세븐센스 등의 매출액을 합하면 150억을 넘는다.
“21세기는 창조산업의 시대입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때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작품이 창조적이고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혹시나 후배들이 학벌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면 학벌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끊임없이 창조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창조적인 생각과 그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 21세기가 원하는 인재입니다.”
김 대표에게 예술계 전문대학 졸업자들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사업체에 취업하는 일이 드물어 예술대학들이 취업률과 대학평가에서 매번 낮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질문하자 의외로 간단한 대답을 내놓았다.
“예술계 학생들의 취업률을 산출할 땐 연극인협회나 뮤지컬협회 등 예술관련 단체에 등록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어떨까 제안합니다. 종업원을 건강보험에 가입시키는 것은 고용인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지만 우리나라처럼 예술기반이 약하고 정부의 후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의무만을 강조하긴 힘듭니다. 협회나 관련 단체들은 등록된 예술인이 취업된 상태인지, 어떤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지 비교적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공정한 취업률 조사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에 가입하는 풍토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일정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융통성 있는 정책도 병행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