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전라도 광양 땅에 사는 김(金)가 성을 가진 이가 바위에 붙은 1.5㎝ 쯤 되는 이끼 모양의 것을 따다 말려서 먹으니 맛이 있었으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고을 원님을 찾아 가 ‘맛을 보라’고 드리며 이름을 물었으나 원님도 그 이름을 알 리가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원님은 어부에게 성을 물었다. 어부가 ‘제 성은 김가입니다’라고 대답하니 즉석이서 이름을 ‘김’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한자어 ‘바다 해(海)’와 ‘이끼 태(苔)’를 합쳐서 ‘해태’로 쓰이는 요즈음의 ‘김’은 대부분 인공으로 길러진 것인데 이 기술은 일본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는 설이 있다.
청어(靑魚)를 말린 것을 처음에 ‘과매기’라고 했다. 청어를 잡은 뒤 눈이 나란히 놓이도록 꿰어 말린다는 뜻으로 꿸 관(貫), 눈 목(目), 고기 어(魚) 자를 써서 ‘관목어’라고 했던 것인데 뒤에 이 말이 변하여 ‘과매기’라 부르게 된 것이다.
경상북도 해안지방, 특히 영일만이 있는 구룡포 지역에서 많이 나는 이 ‘과매기’는 한겨울인 12월 말에 잡히는 청어를 꿰어 해동기인 2월 말까지 해변가 덕장에서 해풍으로 말린 것이다. 그런데 이 청어는 늦게 생산되기도 할 뿐 아니라 살이 두껍기 때문에 두 달 동안에 말리기가 어려웠고, 가격 또한 만만치 않아 생산 원가가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대체 어종으로 등장한 것이 ‘꽁치’이다.
꽁치는 청어보다 일찍 잡혀 12월 초부터 2월 말까지 3개월 동안 충분히 말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살이 얇아 빨리 마르고 값도 청어보다 헐하고 청어와는 다른 독특한 맛을 보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과매기’는 거의 ‘꽁치’를 말린 것이라고 봄이 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