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진보적인 목소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노동문제를 강의하는 인기강사가 강의평가 최고점에도 불구하고 학칙을 이유로 퇴출되거나 강의시간에 정부를 비판한 교수를 학교가 직접 나서 징계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대학생 연합 학술동아리에 대해 경찰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자 교수와 시민단체 등이 진보적인 학생단체에 대한 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경찰청 보안국은 대학생 연합 학술동아리인 ‘자본주의 연구회’ A씨 등 전·현직 회원 3명을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또 이날 체포된 3명을 포함해 동아리 회원 9명과 서울 지역 대학 총학생회 의장을 지낸 B씨의 자택 등 10곳을 압수 수색했다.
경찰은 “A씨 등은 2007년 3월 자본주의연구회를 설립했다”며 “특히 2008년 1월 개최한 ‘대안경제캠프’ 행사에서 이적성이 뚜렷한 행동 강령을 채택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경찰은 자본주의 연구회의 초대 대표인 A씨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상태다.
이를 두고 일부 교수와 시민사회 단체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나쁜 사마리아인’이나 ‘88만원 세대’처럼 시중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책으로 자본주의를 공부하는 진보적동아리에 대한 탄압이라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동아리 회원 체포는 헌법에 보장된 학문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며 “자본주의 연구회는 학문적 연구와 교류를 주로 해 온 대학 내 연구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자본주의 연구회에 여러 차례 강연한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젊은 대학생들이 사회 모순의 내면을 연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국가보안법으로 큰 흐름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강의 시간에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자주 제기한 교수를 징계한 경우도 있다. 한동대 B교수는 지난해 자신의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정부정책을 비판해 수업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최근 교원징계위원회로부터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사건의 골자는 이렇다. B교수는 ‘언어와 철학’ ‘고급 영문법’ 등 두 과목으로 이 대학 3~4학년생이 주로 듣는 강의에서 4대강 등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하지만 한 학생이 B교수의 강의내용을 녹음해 부모에게 알리고, 일부 학부모는 학교 측에 해당 교수의 징계를 요구한 것이다.
B교수는 “사회정치적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은 대학교수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면서 “감봉이라는 징계 수위보다 징계의 적절성이나 교수로서의 권위 손상 등 측면에서 그냥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동대 관계자는 “강의시간의 상당 부분을 강의내용과 상관없는 내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학습권 침해”라며 “해당 교수에게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사과와 학교 측에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했지만 거부해 결국 징계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사건은 언론에 노출되면서 “학문의 자유가 훼손됐다”거나 “비판교수 재갈 물리기 아니냐” 등 학교 측이 내린 징계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인천대는 5년 동안 교양과목 ‘한국사회와 노동문제’를 강의해온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을 박사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교체했다. 하 소장이 강의하는 한국사회와 노동문제는 매 학기 학생들이 직접 실시하는 강의평가에서 최고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온 인기 강의다. 특히 이 강의는 2005년 당시 총학생회가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강의”라며 학교 측에 개설을 요구하면서 하 소장을 강사로 섭외한 드문 케이스다.
이 강의를 수강한 김지영씨는 “이 강의는 내가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확신을 준 유일한 강의”라면서 “소중하고 가치 있는 강의인 만큼 모든 학생들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천대 측은 ‘박사학위 소지자 또는 변호사·회계사·기술사 등 자격 소지자’만 강사를 맡을 수 있다는 학칙을 들어 하 소장 교체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