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 반대까지 부딪힌 서울대 법인화
반대 목소리 커져···정관설립 시 파장 예고
서울대 법인화가 중대 국면을 맞았다. 지금까지는 서울대 본부가 추진하던 법인화에 서울대법인화반대공동대책위원회 등 일부가 반대 목소리를 내온 형국이었다면, 이제는 교수들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며 법인화 추진을 재검토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본부가 구성한 법인 설립준비위원회가 정관을 내놓을 7월 즈음에는 대대적인 반대도 예고되고 있다.
■ 커지는 반대 목소리 = 서울대 법인화를 둘러싼 갈등은 지난해 12월 법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부터 불거졌다. 서울대 민교협교수들과 공무원노조, 대학노조 등이 주축이 된 서울대법인화반대공동대책위원회(이하 법인화공대위, 상임위원장 최갑수 서울대 교수)는 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서울대 본부 앞에 천막을 치고, 법 통과 무효를 주장하며 크고 작은 문화행사와 집회들을 이어왔다. 그렇지만 이들의 움직임은 사실상 ‘일부’의 목소리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11일 서울대 법인화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서명에 서울대 교수 149명이 동참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교수들이 집단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교수들이 이름을 걸고 성명 발표에 나서는 것은 강한 의사의 표현으로, 이는 법인화 문제가 이제 일부 반대 목소리로만 치부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11일 법인화공대위는 성명에서 “서울대 본부 측은 내부적으로 법인화가 오랜 논의와 적법한 과정을 거쳤다고 홍보하지만, 실제로 매우 요식적인 절차만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밟았고 다수 교수들의 진의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법인화공대위는 “서울대의 앞날을 책임져야 하는 교수진의 일원으로서 문제점이 분명하게 드러난 법인화 추진을 곧바로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법인화공대위는 다음 날인 12일에는 “교수·직원·학생에 대한 총투표를 실시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법인화 공대위는 “날치기로 법인화 법안이 처리된 이후 수많은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본부가 설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으로 법인화를 추진하려 한다”며 부당함을 지적한 뒤 향후 반대 목소리를 더 키우겠다고 확고히 밝혔다.
■ ‘모르쇠’ 일관 본부 = 서울대 법인화는 지난해 12월 국회 통과 때부터 ‘날치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에 대해 법인화공대위는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서울대 본부 측은 이미 국회를 통과한 이상 법인화법 시행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익현 서울대 기획처장은 “서울대 법인화법은 이미 통과 1년부터 상정이 돼 있었고, 단순히 교과위 심의가 안 됐을 뿐”이라며 “서울대 입장에서는 국회를 통과한 유효한 법률을 이행하지 않고 준비를 제대로 못하는 게 오히려 직무유기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이러한 법인화 추진을 두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이유는 모르쇠로 일관한 본부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본부는 특히 지난 3월 말 국립대학법인 서울대 정관의 작성, 최초 이사 및 감사 선임, 법인 설립 등기 등의 업무를 추진하는 ‘법인설립준비실행위원회’(이하 준비위) 명단을 법인화공대위 측과 논의 없이 발표, 또다시 내홍을 부르기도 했다.
김연옥 대학노조 서울대지부장은 “지난 1월부터 노조가 준비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그렇지만 오연천 총장은 ‘아직 구성이 안 됐다’면서 계속 미뤄오다가, 결국 3월 31일 기습 발표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서울대 공무원노조와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노조원 200여명은 급기야 법인화 추진과정에 구성원 참여 보장을 요구하며 이날 총장실 복도를 점거하고 총장 퇴근을 저지하기도 했다.
한편 본부가 이렇게 반대 목소리를 배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나서봐야 득 될 것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국회를 통과한 법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반대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법인화 추진이 우선한다는 이야기다.
■ 정당성 확보가 쟁점 = 본부의 이와 같은 소통능력 부재는 3일 법인설립추진단이 학생들에게 이메일을 보낸 일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법인설립추진단이 발송한 메일은 법인 설립의 의의를 밝히고, 법안 통과 이후의 법인화 추진 경과를 알리는 내용을 담았다. “법인화 추진에 대한 좋은 의견이 있을 경우 법인설립추진단에 메일을 보내달라”는 안내도 있었다. 이와 관련, 최종원 법인설립추진단장은 “법인화 추진과정에 대한 학생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이를 반영하고자 메일을 보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인화 논의가 상당히 진행된 지금에서야 의견 수렴을 하겠다는 것은 이미 늦었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12월 법인화법이 통과된 이후 반대 목소리뿐 아니라 법안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만 서울대 본부는 구성원의 의견수렴에 적극 나서지 않은 채 법인화를 추진했다.
법인화 공대위는 “현재 설립준비위원회 분과 회의가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어떻게 이야기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실정”이라며 “이러한 상황인데도 의견 수렴을 잘하겠다는 것은 때깔 좋은 포장일 뿐”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12일 서울대 법인화공대위가 “교수·직원·학생 등 모든 구성원을 대상으로 법인화 투표 실시하자”고 제안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렇지만 본부 측은 “투표를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남익현 기획처장은 “정관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준비위가 늦어도 6월 말에나 7월 말에는 정관을 만들어 주길 기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학칙과 제반 규정을 만들어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소통 부재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정관 등이 나온 후 공청회 등을 통해 보완하고 점검하겠다”고 덧붙였다.
■ 정관 모습 드러내면 또 파장 = 이번 주 기획재정부에서 서울대 재산에 대해 조사가 끝나면 준비위는 본격적으로 1~2개월 내 정관 설립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대학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정관 설립은 이사회 구성과 함께 서울대 법인화의 가장 큰 쟁점이다. 법인화공대위 측에서 이를 위한 준비위 구성에 문제를 제기한 상황에서 향후 큰 진통이 예고된다.
정치권의 반대도 서울대 법인화 추진과정에 중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초 서울대 본관 앞 잔디광장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서울대법인화법은 대학을 황폐화하고 교육의 질을 추락시킬 것”이라며 “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도 서울대 법인화법에 대해 “서울대가 관리하는 국유재산만 장부가액으로 3조2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거액의 자산을 가진 서울대를 법인화하는 것은 다른 대학과 비교하면 엄청난 특혜를 주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법인화법 시행인 내년 초까지 7개월여가 남은 상황에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야당 측이 얼마나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지 역시 관건이다. 최갑수 법인화공대위 상임대표는 “서울대 법인화 문제는 고도의 정치적 사안”이라며 “법인화 문제가 다른 교육의제와 함께 묶여 내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핵심적인 공약으로 발돋움하리라고 믿는다”고 말해 정치권이 나서줄 것을 적극 호소하고 있다.
법인화법의 국회 통과 이후 법인화공대위의 일관된 반대, 준비위 구성에 따른 총장실 점거, 그리고 정치권의 가세와 교수들의 반대 성명 발표에 이르는 흐름은 향후 정관 설립 이후 또 한 번의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아울러 올 연말 발표될 이사회 구성에서 다시 한 번 충돌도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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