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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캠퍼스> 청주대학교
젊음의 활기 샘솟는 '천혜의 명당'
55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청주대는 오랜 전통 만큼이나 잘 가꿔진 캠퍼스가 자랑이다.

우암산(일명 와우산) 기슭에 자리한 청주대 캠퍼스는 대학 진입로인 청암로가 퍽이나 인상적이다. 활엽수가 우거진 청암로를 따라 캠퍼스에 들어서면 젊음의 싱그러움과 함께 캠퍼스의 활기가 금방 느껴진다.

청주대 캠퍼스가 자리 잡은 우암산 자락은 청주대인의 보금자리이자 심벌이다. 캠퍼스를 둘러싸고 있는 우암산은 소가 누운 형상을 하고 있어 옛부터 천혜의 명당으로 꼽힌다. 청주대 학생들은 우암정기를 받는다는 뜻에서 ‘우암인’이라 불리며 ‘우암캠퍼스’ ‘우암축제’ ‘우암한마당’ 등 우암은 곧 청주대인들의 기상을 나타낸다.

22만평에 달하는 청주대 캠퍼스는 숲을 연상하는 울창한 수림 등 주위 우암산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학생들의 사랑을 받는 캠퍼스는 명소마다 독특한 이름이 붙여져 있다. 대학 정문에서 후문에 이르는 대학 중앙로는 ‘청암로’, 인문대 앞 연못은 ‘석정원’인데 모두 설립자 형제의 아호를 딴 이름이다.

예술대와 본대를 연결하는 길은 우송로(일명 소솔길)로 명명되었고 본관은 청석관, 박물관은 청정관 등 건물마다 이름이 붙여져 캠퍼스의 멋과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캠퍼스 명소>

청암로 - 청암로는 계절별로 색다른 멋을 느낄 수 있지만 특히 여름철엔 나뭇잎에 하늘이 가리워져 마치 자연 터널을 연상케 한다. 학생들에게는 사색의 장소로 지역주민들에게는 더위를 식혀주는 쉼터로 각광받고 있다. 가끔 다람쥐나 청설모가 출현하기도 해 낭만을 더해주고 있다. 여름 못지않게 늦가을 낙엽으로 뒤덮인 청암로는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을이면 일부러 낙엽을 쓸지 않아 계절의 낭만을 맘껏 느낄 수 있다. 간혹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소로 등장할 만큼 멋들어진 곳이다.

석정원 - 청주대 명물인 석정원은 인문대 앞 아담한 인공 연못. 다른 연못과 달리 연못 중앙을 가로지르는 통나무가 퍽 이색적이다. 이 통나무는 성년식, 생일 등 각종 기념일을 맞은 학생들을 올려 놓고 연못에 빠뜨리는 일종의 통과의례. 주위 그늘과 벤치 등 휴식공간이 많아 학생들로부터 인기다. 석정원 외에도 이공대학 앞 연못 역시 울창한 숲으로 둘러 싸여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다.

민주광장 - 도서관 앞 대학상징물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조성된 민주광장은 각종 전시·공연을 비롯 주요행사들이 열리는 곳이며 학구파들이 삼상오오 짝을 이뤄 잠깐 머리를 식히는 공간. 민주광장에서 정문쪽으로 내려오면 설립자 청암 김원근, 석정 김영근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법과대학(구본관) - 옛 본관으로 사용했던 법과대학은 설립자 청암 선생이 설계하고 직접 붉은 벽돌을 찍어 세운 3층 건물로 설립자의 혼이 깃듯 곳이다. 처음 지을 당시 외벽만 벽돌로 지었을 뿐 내부는 목조로 이루어져 오랜 기간이 지나며 마모되었으나 지난 90년 내부 바닥과 천정은 불연제와 내화처리된 경량텍스로 바꾸고 창틀 교체, 난방 보일러 등을 설치해 현대식 건물로 다시태어 났다. 옆에 위치한 별관 역시 설립자 청암, 석정 선생이 직접 지은 것으로 법대가 구본관으로 옮겨감에 따라 현재는 대학원 단독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우암산 명당 이야기>

청주대 캠퍼스가 자리한 우암산에는 풍수지리와 관련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이 전설에 의하면 조선 선조 때 풍수지리학의 대가였던 토정 이지함이 팔도의 산천경개를 돌아보던 중 아랑산(현 강서동)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는데 동쪽 우암산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대장군의 웅장한 정기가 눈에 띄었다.

급히 우암산에 당도해 산세를 살피는데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산세가 흡사 황소기질 같음을 느끼고 소상히 살피던 중 서쪽을 향해 움푹 들어간 곳에 혈(穴) 하나를 짚게 되었는데 하늘에 뻗고 있던 정기도 바로 그 자리가 단서였다. 토정은 그곳에 가묘를 써놓고 푯말을 세워 ‘여기는 장군에게나 맞는 자리이니 여느 사람은 무덤을 쓰지 말라’고 했다. 이 무렵 진천의 조풍수라는 자가 터를 찾다가 우연히 우암산의 상서로움을 알고 달려가 보니 그 자리에 토정의 경고 말뚝이 있었다.

그는 토정의 경고를 무시한 채 푯말을 뽑아버리고 가묘를 파헤쳤다. 그러자 하늘이 천둥에 흔들리며 황소의 울음소리가 뒤섞이더니 거대한 우두장군(牛頭將軍)이 솟아나와 눈에 피를 흘리며 슬피 울다 가묘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벼락이 떨어지면서 가묘가 검게 탄 바위로 변했다는 내용이다. 지금도 캠퍼스 뒤편 관음사 위에는 화석묘가 뚜렷한 형태로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기술된 이 전설은 4백50년전 이미 우암산 기슭에는 천하의 영재들이 모여 지성의 요람을 이룰 것이 예견되었던 것이다.

최창식 기자 (ccs@unn.net) | 입력 : 02-05-27 오후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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