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생산인이란 수렵경제시대에는 솜씨 있는 사냥꾼을 말했다. 농업경제시대는 부지런한 농사꾼이었다. 생산보다는 약탈이 재화(財貨)를 손에 넣는 더 효과적인 길일 때는 무력이 노동을 대신하곤 했다.
전쟁에서이기면 이미 생산해 놓은 부(富) 외에도 생산 요소인 토지와 노예 노동력도 차지할 수 있다.
그래서 용감한 군인은 그 자체가 좋은 생산인이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는 해군과 해적이 농사꾼들보다 나았을 것이다. 북한의 선군(先軍)정책도 비슷한 용도가 있다고 본다. 약탈만 생산을 갈음하는 것은 아니다. 약탈당하지 않게 지키는 것도 생산을 갈음한다. 그러므로 군사적 안보는 중요한 경제 활동이다.
산업경제시대에 와서는 직업이 엄청나게 많이 분화되었다. 산업경제시대에서 정보와 지식 경제시대로 넘어 가면서 지난 시대에 자본이 가지고 있던 중요성이 전문지식으로 넘어 오고 있다.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 한 사람과의 차이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차이보다 더 심각한 격차를 가져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에는 여러 층의 중급 기술이 자본 시설에 보완적인 생산요소 역할을 해 왔다. 정보와 지식 경제시대의 노동은 고급 지식 노동자와 단순 노동자라는 단 두 가지로 거의 양극화되어 가고 있다. 중급 기술 노동력은 단순노동자보다도 더 심각하게 고용 기회 상실에 노출되어 있다.
돈이 돈을 벌던 시대도 옛날이 되어 간다. 이자율이 떨어지는 것이 그 징표다. 어지간한 목돈을 자식에게 물려주어도 거기서 생활비가 나오기는 어렵게 되어 간다. 경제 성장은 자본보다는 기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투자보다는 소비와 수출에 의존하게 되었다. 자본을 축적하든지 외국에서 빌려 와 공장을 많이 지으면 선진국이 될 수 있던 시대는 지나갔다. 기술 선진국만이 진정한 선진국인 시대, 자본가보다는 경영자가 더 빛나는 시대가 되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이 전환기가 빚어내고 있는 위험을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교육, 특히 고등 교육을 받는 목적으로서 전문성 획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도로 커져 가고 있다. 법과, 의과, 경영과 등과 기업에서 수요가 많은 '인기 학과'로 학생이 쏠리는 것은 산업사회가 지식사회로 옮아가는 데서 발생하는 생산인에게 닥친 위험을 줄이려는 교육수요자 측의 전략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가장 크게 희생되는 것은 즐거운 인생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 주는 부문의 교육이다. 여기서 말하는 즐거운 인생이란 것은 지적(知的) 예술적(藝術的) 비경(秘景)에 대한 정신의 자유로운 탐험이다. 인문학, 예술, 종교와 기초과학이 여기에 속한다. 다시 말해서 취업과 직접 관계가 없는 학문과 그 방면의 교육에 대해서는 지원자 크게 줄고 있다. 이런 정신적 탐험의 즐거움의 자리는 인스턴트 식품과 비슷한 오락이 대체해 가고 있다.
이것이 교정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릴 듯하지만 그래도 교정 노력은 필요하다. 이 노력은 주로 이것을 가르치는 교육자, 특히 대학 교수들이 쏟아야 할 것 같다. 정보나 지식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창의력인데 창의력을 기르는 것은 바로 정신적 탐험에서 나온다는 것을 선전하고, 인문학과 기초과학 교육에서는 주로 그런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을 스스로 실시하라는 것이다. 창의력이 있으면 전문성이란 것은 숙달되기 쉽고 창의력 없는 전문성이란 지식 정보 경제 시대가 필요로 하는 바의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다.
인문학이나 기초과학, 즉 liberal arts를 학부에서 공부한 다음에 전문적 대학원professional schools을 나온 사람을 선호하는 것이 지식과 정보 경제시대 고급 인력 취업의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어 가고 있다. 한국 경제도 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리버럴 아츠를 가르치는 교수들은 학부제를 반대하는 등의 소극적 방어책의 대안으로 기초 학문의 교육을 통하여 학생들의 정신적 창의력과 모험심을 길러 주는 적극적 공격에 나서는 것을 선택할 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