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칼럼
김상배
한국대학신문 논설
[김상배 칼럼] 아주대 전자공학부 교수
올 여름은 참기 어려운 더위가 찾아올 것이라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지구 온난화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오늘 우리는 유례없는 기상이변 속에 살고 있다. 기상청 자료에 의하면 특히 최저 기온의 상승이 눈에 띄는데, 과거 100년 동안 서울의 연평균 최저 기온은 0.37도/10년의 비율로 상승했다. 열대야 일수는 1908년에서 1957년 사이에 평균 1.7일이던 것이 1958년부터 2007년 사이에는 5.7일로 늘었다.
이에 따라 농작물의 북방한계선은 지속적으로 북상하고 있으며, 봄소식을 알리는 개화시기도 빨라지고 있다. 기후 패턴의 변화는 더욱 심각하여 겨울철의 전형적인 기온 패턴이던 3한4온 실종되었고, 여름철 그 흔하던 뭉게구름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장마의 모습도 현격히 달라졌다. 부슬비가 지루하게 내리던 옛 장마의 모습은 집중호우와 마른장마가 반복되는 형상으로 바뀌었다.
2007년 12월에 있었던 태안 기름유출사건은 서해안과 바다를 황폐화시켰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원유가 뭉친 타르 덩어리가 제주도 인근까지 떠내려갔는가 하면 바다 어장이 황폐화되어 어민들을 실의와 자살에 빠지게 하였다. 더 큰 규모의 기름유출 사고가 미국 멕시코만에서도 있었다.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직도 진행 중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유출은 인류를 공포에 도가니에 빠지게 하고 있다. 편서풍을 타고 죽음의 재 세슘이 지구를 몇 바퀴씩 돌고 있다. 1986년 4월에 일어났던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은 한때 가장 아름다웠던 도시를 최악의 폐허로 만들었고, 주민들은 아직도 방사능 피폭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름유출, 원자력 발전소 사고, 기상이변은 겉보기에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그 기원을 따라가면 원인은 결국 하나이다. 기상이변이 인간의 대규모 자연 질서 교란에 의한 것이라면, 기름유출과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인간이 만든 대규모 구조물에 의한 재앙이다. 결국 사람이 원인이다.
그동안 인류는 규모의 경제라는 틀 속에서 대량생산과 대규모화에 경도되어 더 좋은 길을 찾으려하지도 않았다. 이 대규모화가 가져다주는 이익에는 민감하였지만 그 대규모화가 초래하는 위험에는 둔감하였다. 이제 huge construction = huge tragedy, mass construction = mass destruction의 비극적인 등식에 민감하여야 할 때인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에서 보듯이, 대규모화에 따른 재앙의 규모는 지구 전체에 미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인류는 규모의 경제란 틀 안에서 점점 대규모화 되고 있는 인공물들의 점증하는 대규모 위험을 감내할 수 있을 것인가? 인공물들에 의한 대규모 재앙이 지구 전체를 휩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규모의 경제를 계속 추구하여야 할 것인가? 더 슬기로운 해결방안은 없는 것인가?
이미 인류는 녹색성장이라는 대안을 추진하고 있다. 무분별한 대량의 에너지 사용과 그에 따른 자연 질서 파괴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에너지 절약형 지속가능 발전 모델을 따르자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선진국의 에너지 감축분이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사용량 증가로 치환된다면 녹색성장 모델은 절반의 성공에 그칠 것이다. 규모의 경제라는 틀을 유지하는 한 대량의 에너지 사용은 불가피하고, 대규모 인공물에 의한 위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과감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녹색성장모델을 넘어서야 한다. 규모의 경제라는 틀 속에서 고효율과 고생산성을 향유하는 것이 한계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의 틀에서 벗어나는 길은 작은 규모이면서도 고효율과 고생산성을 유지하는 신개념 설계와 관련 기술의 개발에서 찾아야 한다. 그 길은 에너지 소모를 줄인다는 소극적인 접근이어서는 아니 된다. 에너지 소모의 이론적으로 한계를 살펴보고 그 이론적 한계에 접근하도록 하여야 한다. 소규모 생산이면서도 높은 생산성과 저가격을 달성하여야 한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인류의 창의성은 필요할 때마다 꽃을 피웠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그 꽃이 홍익인간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활짝 피기를 기대해 본다.
김상배 칼럼 | 입력 : 11-06-15 오후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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