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중고생이 되면 폭력과 매춘에 빠진다고 한다. 이렇게 된 책임을 교사는 학부모에게 돌리고 학부모는 교사에게 떠넘긴다. 더 쉽게는 사회와 문명에게 그 책임을 돌린다. 그렇게 하면 아무도 책임 질 사람이 없어지니까 편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길은 문제를 영구히 풀지 못 하고 사회전체가 아득한 수렁으로 빠져 들어 가는 것을 방치하는 길이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대학신문 9월 16일자에 실은 인터뷰 기사에는 김인회 연세대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전문가들은 다 알아요. 배가 갈아 앉고 있다는 것을. .... 2010년이 되기 전에 우리 나라 제도 교육은 총체적인 붕괴를 맞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등교 거부하듯 교사들도 등교거부 할겁니다."
일본형 학교 붕괴에는 대학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한국형 교육 붕괴에는 대학이 그 중심의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초중등교육의 문제는 도덕의 문제라면 대학의 문제는 거기에다 지식의 문제가 추가된다. 대학이 공부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의 대학은 일류대학 일류과의 졸업장을 따기 위해서 존재하고 그것은 대학 입시합격 순간에 이미 결정된다.
지식 가운데서도 인문학 지식의 황폐화가 가장 큰 문제다. 인문학 지식은 도덕과 창의력의 기초가 된다. 사회의 변화가 기술에 의하여 선도되는 지금과 같은 세계에서는 새로운 도덕체계의 발전이 활발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새로운 도덕이 태어나야 한다. 그것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다. 아시아, 미국, 유럽, 이슬람권, 이 가운데 어디도 도덕적 도전에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곳은 없다.
그 중에서도 그 실패의 도가 두드러지는 데가 아시아와 이슬람권이다. 이슬람권은 이 도덕적 갭을 반동(反動)적, 신정(神政)적, 반(反)세속적, 반(反) 민주주의적인 근본주의로의 환원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생기는 내부적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어 비(非)이슬람권에 대한 대규모 테러리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시아에서는 산업화와 정보화에서 선진(先進)한 한국과 일본에서 기존 도덕의 무너짐이 특히 우심(尤甚)하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발달은 이 무너짐을 가속화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전통적 집단주의 도덕은 무너지고 그것을 대체할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도덕이 정착하지 못 하고 있다. 교육의 붕괴는 도덕의 붕괴가 가져오는 결과 가운데 하나다.
집단주의적 공동체 사회의 도덕은 개인의 권리는 도외시하고 그 집단의 질서 유지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역행(力行)된다. 씨족과 국가, 이 두 가지 사회가 중첩(重疊)했던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도덕의 중심을 孝와 忠에 두었다. 이 도덕 체계가 유교다. 씨족에서는 효가, 국가에서는 충이 도덕의 벼리(綱;강)다. 맹자가 조정에서는 관작 만한 것이 없고 향당에서는 연치 만한 것이 없다(朝廷에는 莫如爵이요 鄕黨에는 莫如齒라)라고 한 것도 비슷하다. 집단의 질서를 위계에 의하여 유지하려는 것이 효, 충, 관작, 연치에 공통하는 분모다.
반면에 개인주의적인 자유 사회의 도덕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와 개인의 책임이 그 벼리다. 개인의 자유가 결여되어 있거나 개인의 자유에서 권리와 책임이 균형을 잃으면 자유주의 도덕은 무너진다. 오늘날 구미(歐美) 사회의 도덕적 위기는 권리와 책임의 밸런스 상실에서 오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경우는 이 밸런스 상실이 더욱 크다. 책임은 지지 않고 권리만 훔치겠다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끈질긴 전통적 집단주의의 영향 때문에 아직도 개인의 평등한 자유가 확보되어 있지도 않다. 한국의 교육을 붕괴에서 구원하려면 자유주의 도덕을 약방문(藥方文)으로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의 책임이 자유주의 도덕의 핵심이다.
강 위 석 (월간 에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