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물이 생명의 근원인데 물이 거의 없으니 이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픈 것이었을까? 그렇지만 그들 역시 물을 '물 쓰듯이' 쓰며 살아 온 우리와 마찬가지로 행복했던 많은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비록 가난해도 서로 사랑하고 지식낳고 살면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척박한 땅에서 겨우 얻었던 작은 행복도 이제는 그들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아무 죄도 없이 갈갈이 찢기고 피흘리며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싸울 힘도 없는 어린이와 아주머니들까지 모두 그렇게 죽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을 학살하는 이 야만적인 침략자들 편이 되어서 우리 군대까지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국익을 위해서 그러기로 했단다.
국익이란 무엇인가? 그래야만 미국으로부터 경제보복도 면하고 그래야만 한반도의 전쟁재발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일까?
이 말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조폭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똘마니들의 충성심을 최고의 가치로 치고 엄격한 상벌의 기준을 여기에 두고 있으며 미국도 지금까지 약소국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1945년 8월 11일 밤 워싱턴의 심야회의에서 '내셔널그래픽'지를 펴놓고 미국이 38도선을 그을 때부터 그후 군정을 펴고 6.25 전쟁 발발의 모든 유인 조건을 갖춰 놓고 다시 분단상태로 휴전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겪은 모든 고통은 우리가 너무 그들 앞에서 줏대없이 똘마니 노릇만 해 왔기 때문이다. 여중생들을 깔아 죽이고도 그들이 그렇게 오만했던 것 역시 우리가 무조건 충성스러운 똘마니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조건적 똘마니 노릇이 곧 국익은 아니다. 필요하면 언제라도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주적 자세가 곧 국익이다. 더구나 우리에게 평화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면 이 문제야 말로 과연 누구에게 양보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서울대 부산대 고려대 성신여대 성공회대 등 많은 대학에서 교수 또는 학생들이 반전운동을 전개해 온 것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고무적인 것이다. 비록 국군 파병은 이미 결정적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파병 여부를 떠나서 우리는 이 전쟁을 전 세계의 모든 평화애호인들과 함께 끝까지 반대하고 우리 국민의 의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세계 최강의 난폭자가 두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평화를 외치고 우리의 자주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
왜냐면 지금까지 근 60년간 우리가 강대국의 비위맞추며 얻은 것은 변함없는 분단현실과 그들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군사적 예속뿐이며 이제 우리의 평화는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