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에서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거의 백치였던 그는 그날부터 오로지 한국인 엄상섭의 자문을 받아 가며 문교행정을 맡아나갔다. 엄상섭이 누구인가? 그는 패망 직전 일제 총독부의 학무국장이었으며 국장으로서 한국인은 그가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그후 군정하에 한국의 교육계를 주도해나간 사람들은 모두 총독부 건물의 새 주인인 미군과 일제 앞잡이의 막강한 영향력 안에서 형성되어 나갔다. 공립 국민학교 교장이나 중학교 교장도 대개 그들에 의해서 임명되어 나갔으며 국어교과서에는 대표적인 친일파의 시가 실리고 그는 존경받는 시인으로 둔갑했다.
그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오랜 독재정권을 거치는 동안 우리의 교육풍토는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전교조가 등장하면서 이들이 지녀온 이념적 배경은 이같은 역사적 배경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있었다. 그러므로 전교조는 필연적으로 기득권 세력과 격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금 전교조의 반전교육이라는 것을 일부 언론이 반미교육이라고 불온한 색깔을 씌우는 배경에는 이같은 신구 세력의 격돌에 언론들이 가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교조에도 물론 문제가 있지만 왜 우리는 걸핏하면 반미를 들먹여야 하는가?
이라크전이든 뭐든 현실을 바로 가르치는데 그것이 미국의 비위를 건드린다면 반미일 수밖에 없고 등을 긁어주면 친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바로 알고 역사를 바로 알고 일류에 대한 건전한 사랑의 정신을 가르치는데 도움이 된다면 반미냐 친미냐가 선택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상전에게 아부하는 못난 종놈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세뇌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에게 그토록 비굴해야만 국가안보가 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양키 고홈 하면 가고 웰캄하면 오는 나라인가? 언제 그들이 우리편 되어달라고 애걸해서 우리편이 되었나?
그들의 판단기준이 어디까지나 국익이듯이 우리도 국익만이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우리의 바른 역사를 거짓없이 가르치는 것이며 그것은 어떤 음모에 의해서도 방해되면 안된다.
약 40년 전에 작가 남정현은 소설 <분지>가 반미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혹독한 고문과 투옥을 거듭 겪었다. 이런 우매한 짓을 언제까지 거듭하며 상전앞의 못난 종놈 근성으로 태극기를 날릴 것인가?
반전교육 자료에는 아동들의 정서교육상 피해야 할 것도 있다. 그렇지만 무슨 싸움을 하든 남의 나라 밑구멍을 핥느냐 마느냐로 교육 이념의 잘잘못을 가리려는 창피한 나라는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