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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칼럼] 한국대학신문
이시대가 요구하는 총장상
장수영<포항공대 전 총장>
며칠 전까지도 학생들이 서울대 총장실을 점거하고 있었다. 필자가 대학생이던 1950년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며 지금도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1987년부터 시작된 총장직선제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대학의 학문적 분위기를 훼손시킨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대학총장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모금도 해야 되고 좋은 학생을 모집해야 되며 교내의 주차문제 같은 사소한 문제까지도 신경을 써야 된다.

독일대학의 총장은 책임이 훨씬 적다. 그 이유는 대학의 모든 행정은 사무총장(Kanzler)이라고 부르는 변호사가 책임지게 되어 있다. 주정부로부터 예산을 받아오고 집행하며 심지어 신임교수의 대우문제를 협상하는 것까지 사무총장의 책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독일대학 총장의 임기는 1년으로서 대학의 상징적 대표였다. 지금은 대개 4년이며 연임하는 수도 있으나 아직도 사소한 문제는 모두 사무총장 소관이다. 그리고 교무처장이나 학생처장조차 없는 것이 독일대학 이다.

지금은 독일대학 총장들이 모금도 하러 다니지만 원래 그런 전통이 없었다.

필자가 독일의 유명한 대학총장에게 “만약 정부로부터 원하는 것만큼 예산을 받아오지 못하면 교수들은 총장과 사무총장중 누구를 비난하는가?” 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대답은 놀랍게도 “정부가 비난을 받는다”였다.

우리나라 대학의 상황과는 너무도 다른 대답이었다.

미국대학에서는 총장을 보좌하는 제도가 잘 되어 있다. 교무담당부총장을 푸로보스트(Provost)라고 부르는데 그가 수석부총장으로서 모든 학장들의 보고를 받는다. 즉, 학장들은 총장에게 보고하는 것이 아니고 푸로보스트에게 책임을 지는 것이다.

따라서 총장은 주립대학의 경우는 주로 주의회와 주지사를 만나서 예산을 더 받아오는 교섭을 하며 연방정부 연구비를 많이 받아오도록 노력한다.

물론 개인기부자들도 부지런히 찾아다닌다. 교내에서 무슨 과목을 가르치는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어떻게 나누어주는지, 건물보수를 어떻게 하는지 등의 문제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캘리포니아 대학총장을 역임한 클라아크 커어(Clark Kerr)가 정의한 총장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미국의 대학총장은 학생에게는 친구이며, 교수에게는 동료이고, 졸업생에게는 ‘쓸만한 친구’ 이고 이사들에게는 건전한 경영자이며, 일반대중에게는 탁월한 연설가이고, 재단이나 정부관계기관에 대해서는 기민한 교섭자이며, 주의회에 대해서는 정치가이고, 산업계, 노동계, 농민에게는 친구이며 기부자에 대해서는 설득력있는 외교관이 되고 일반적인 교육이라면 무엇이든 알고 있으며 전문교육(특히 법률학, 의학)을 지지하고 신문기자에게는 대변인이며 자기의 연구분야에서는 훌륭한 학자이며 그 주에서나 국가적인 입장에서는 공복이며 오페라이건 축구시합이건 똑같이 박수를 보낼 줄 알고 훌륭한 인격자이며 좋은 남편이며 아버지이고 열성적인 교회의 일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비행기 여행이나 공석상에서의 식사나 의식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재질을 모조리 지니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사람에 따라서는 그중 어느 한가지에도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하바드대학에서는 푸로보스트 대신 문리과대학 학장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립대학에는 서울대를 제외하고는 부총장이라는 직제조차 없다. 사립대학에는 부총장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총장을 보좌하고 총장부재시 대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새로운 총장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즉, 고등교육법을 개정해서 대학내 일상업무를 책임지는 부총장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총장은 일상업무에서 벗어나서 큰 문제에만 신경을 쓸 수 있게 된다.

세계주요국가 대학중에서 총장을 직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호주, 캐나다, 러시아 등이 모두 직선제를 시행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당에서 여론을 조사해서 정부에서 임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일본의 국립대학들이 직선제를 택하고 있지만 우리와 같은 부작용은 별로 없다. 왜냐 하면 일본대학들도 기본적으로 독일대학들처럼 모든 행정은 문부성에서 임명한 사무국장이 담당하며 교무처장, 연구처장, 대학원장같은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전체 대학원장은 없고 분야별로 단과대학장이 겸직하고 있다.

결국 총장이 제대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우리대학의 보직교수제도를 고쳐야 한다.

미국대학들처럼 일단 보직교수가 된 사람은 전문적으로 그 일만 하도록 하고 일반교수로 돌아오지 않게 하던가 독일이나 일본처럼 대학행정책임자를 임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재의 제도는 임기 2년의 처장제도이므로 일을 제대로 배우기 전에 그만두게 되어 항상 아마추어가 대학행정을 맡는 셈이 된다.

특히 직선제 총장 밑에서 보직교수 자리가 하나의 보상처럼 여겨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와 같이 근본적으로 제도를 고치기 전에는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의 보직자비율을 낮출 수가 없다.

총장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첫째, 통찰력과 정확한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모든 대학이 한 가지 유형으로만 발전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대학의 특성에 맞는 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둘째, 용기가 있어야 한다. 물론 그 용기는 만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지구력이 있어야 한다. 대학은 대체로 보수적인 사회다. 여기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급속한 변혁으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구성원들을 설득해서 바람직한 변화를 이룩해야 한다.

그리고 교수와 직원들도 자신들은 변하지 않고 백마를 탄 왕자같은 총장이 나타나서 대학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칼럼 | 입력 : 02-04-22 오전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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