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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론의 원형 ‘매카시즘’은?
1950년대 전반 미국에서는 ‘빨갱이 사냥’의 광풍이 몰아쳤다. '매카시즘'은 이를 주도한 장본인 조지프 레이몬드 매카시 상원의원을 따서 지어진 말로, 한마디로 말하면 ‘논리적인 이론이나 사실의 근거 없이 정적을 비난하거나 공산주의 등으로 몰아 탄압하는 일’을 뜻한다.

그 작동의 배경은 대중의 본능적 공포심과 불안감. 당시 미국은 중국의 공산화, 소련의 원폭 실험과 영향력 증대 등으로 사회적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었고, 정치적 상품으로서 반공의 가치가 크게 돋보였던 시기였다.

매카시는 이런 시류를 재빨리 간파하고 “국무성 공무원들 중에 공산당원이 2백5명이나 있고 이 리스트를 갖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후 그는 누구 못지않은 반공주의자인 트루먼 대통령까지 ‘친공’으로 몰아 악명을 떨쳤다. 매카시의 최고 장기는 거짓말과 왜곡이었는데 당시 미국의 언론들은 그의 말을 사실확인없이 고스란히 인용해 매카시즘의 확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에 대해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는 “매카시는 신문의 헤드라인을 만드는 데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그는 무슨 건수가 생기면 무조건 통신사와 신문부터 먼저 찾았다.

메카시도 자신의 힘이 언론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시간 가운데에 가장 많은 부분을 기자들과 어울리는 데에 쏟았다.

그는 주요 통신과 신문의 마감시간을 다 알고 있었으며 그가 말한 것을 그대로 보도하는 이외에 기자들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때가 언제인지까지 다 알고 있었다.

그는 통신과 신문의 마감시간을 이용해 새빨간 거짓말이라도 기자가 그대로 보도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매카시는 이후 권력이 커지면서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아이젠하워 행정부에 까지 공격을 감행하고 심지어 미 육군이 공산당 동조자들을 보호한다는 공세를 취해, 결정적 자충수를 뒀다.

우여곡절 끝에 미 상원은 매카시에 대한 ‘비난’을 결의했고 이후 영향력이 땅에 떨어진 매카시를 언론도 외면하기에 이르렀다.

매카시는 죽기 전 한 신문사에 “나의 정치와 정책은 당시들이 내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었을 때와 달라진 게 없는데 왜 자신에게 지면을 할애하지 않느냐”며 언론을 조롱했다.

탈냉전이 도래했음에도 마지막 냉전의 유산인 분단국으로 남은 한국 사회에서는 '매카시즘'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그 폐해는 심각하다.

최윤수 기자 (news@unn.net) | 입력 : 03-05-01 오후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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