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가 서준식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처럼 벌어지는 인간성을 모욕하는 작태들을 좌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독재정권과 싸웠고 차별을 온당하게 여기는 편견과 사회적 관습에 대항했다. 그래도 언제나 역사는 양심을 지키는 편에 서있지 않고 철면피들을 승리하게 만들곤 했다.
제도적 살인에 다름없는 이라크 전쟁으로 부당한 이익을 획득하려는 미국의 독선과 야만성이 언제나 인권과 인도주의로 포장돼 있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세상에 통용되는 상식은 허위와 통념에 찌들어 있다.
그래서 서준식은 우리의 통념이 위조지폐 같은 것은 아닌지, 우리의 일상이 우리를 가두어 스스로의 꿈을 좀먹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뒤돌아보라고 권한다.
어쩌면 우리가 ‘도덕’과 ‘양식’이라고 이르는 것들은 기실 ‘상식’과 ‘편견’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며 그 줄타기는 종국엔 추락으로 끝날 비참한 운명일지 모른다. 그 줄타기에 일생을 전전긍긍 하기 보다 메마른 땅위의 굳센 돌들과 민들레와 더불어 뒹굴고 부대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의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순수한 열정과 소박한 의식을 가진 스물넷의 청년이 사람의 내심을 개조하려는 살인적인 폭력에 17년동안이나 맞서 싸우며 끝내 제 자존심과 위엄을 지켜낸 과정은 '정의가 승리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케 해주는 것은 아닐까.
●서준식이 걸어온 길`
인권운동가 서준식은 1948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조센징’이 아닌 '조선놈'이 되기 위해 한국 유학길에 올라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다. 3학년 재학 중 형 서승과 북한을 방문했다가 1971년 이른바 '유학생 간첩단'의 일원으로 체포된다.
고난은 여기서 시작된다. 곧 7년의 확정판결을 받은 그는 비장한 각오로 사상전향을 거부하기로 결심한다. 주체성과 존엄을 가진 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받게 된 보안감호처분. 그는 10년을 감옥에서 더 묻혀야 했다. 그리고 1988년 5월 비전향 좌익수로는 처음으로 석방된다. 석방 후 도시 빈민들과 어울려 살며 글쓰기를 하려 했으나 '운명적인'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을 만나면서 인권운동에 투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1993년 ‘인권운동사랑방’을 세운다.
이후 인권운동사랑방을 한국을 대표하는 인권운동단체로 이끌어 왔고,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화두로 삼아 매일을 정진하고 있다. 그의 비타협적 이력만을 얼핏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강퍅한 투사'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벗들은 그를 단지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