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사건이 공개된 후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이 교수의 이러한 언행이 습관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대병원 노조에 따르면 비뇨기과 L교수는 지난 7일 오전 환자를 수술하던 과정에서 신규 간호사 한 명이 환부에 바르는 젤리의 양을 다소 많이 짜서 묻히자 “역시 처녀라서 농도를 못 맞춰”라고 말했다.
이런 언급에 대해 황당해하던 선임 간호사가 L교수를 제지하자 그는 다시 “그럼 니꺼(여성분비물) 발라. 너 많이 나오잖아. 니꺼 발라”라고 말했다.
이후 간호사가 L교수에게 삼가라고 말하면서 교수와 간호사 사이에는 몇차례 말다툼이 오갔다.
같은 날 오후 또 다른 수술을 끝내고 나오면서 L교수는 한 파트타임(단시간 근무) 간호사의 뒤통수를 피묻은 장갑을 낀 채 가격했고 간호사는 휘청거릴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이유는 수술과정에서 기기 조작이 원만하지 못했다는 것.
결국 이 사건에 격분한 수술실 직원들은 다음날(지난 8일) L교수에게 전날의 사건에 대해 공개 사과할 것과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각서를 요구하며 서명캠페인을 벌였다.
아울러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여성부 등에 진정하겠다는 입장도 전했다.
또 10일에는 수술실 간호과장이 L교수를 직접 만나 이 사건에 대해 수술직 직원들의 요구사항을 다시 한번 전달하고 L교수는 이를 받아들일 뜻을 밝혔다.
그러나 피해 간호사에게 돌아온 것은 L교수의 싸늘한 신경질뿐.
다음날 L교수는 병원 복도 한가운데에서 마주친 피해 간호사에게 “*** 이리와 봐, 너 입조심 해”라며 오히려 윽박질러 주위의 대기환자와 의사, 간호사까지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이후 L교수의 처신에 대해 문제제기가 계속됐지만 그는 공개사과는 할 수 없고 서면사과만 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가 확대될 조짐이 보이면서 지난 19일 진료부원장과 나타난 L교수는 수술실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사과문을 낭독했다.
“사건 무마에 급급, 의사들에만 관용적인 병원당국이 더 큰 문제”
L교수 사과문은 "한 집안의 가장이자 딸 가진 아버지로서 그동안 나의 처신과 언행이 수술장 간호사들에게 인격적 모독을 느끼게 했다면 죄송하게 생각한다. 이 일이 있은 후 본인도 많은 생각을 했다. 무릎을 꿇으라면 꿇겠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몇 번의 충고를 주었을 때 귀담아 듣지 못했던 점이 후회된다. 책임있는 입장에서 분위기를 좋게 하려는 의도였는데 많은 간호사들이 불쾌했다면 사과하겠다. 모든 간호사들에게 죄송하다"는 내용이 요지.
그러나 L교수가 사과문을 다 읽은 후 불쾌해 하는 표정으로 밖으로 나가버리면서 수술실 직원들은 “(진실성이 결여된) 허울뿐인 사과"라며 L교수의 해임과 직장내 폭력과 성희롱 근절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직원들은 L교수의 태도도 문제지만 이 사건에 일정한 책임을 가진 K진료부원장이 사건을 덮는 데만 급급해 하는 것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다.
K부원장은 L교수 사건에 대해 "우리 병원이 초일류병원으로 가는 길에 이런 문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은 반대한다“며 ”상처를 덮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지만 이런 문제들을 딛고 일어나 앞으로 일류병원으로 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해 직원들에게 더 이상 이 문제로 왈가왈부 하지 말라는 뜻을 완곡히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저 분위기 좋게 하기 위한 농담?
사건의 파장이 커져가면서 L교수의 막말과 성희롱 행태에 대한 간호사들의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L교수가 간호사의 엉덩이를 치거나 뒤에서 허리를 껴안는 등의 성희롱을 해왔다는 이들의 증언을 정리해 노조 소식지에 공개하기도 했다.
또 "밥 먹으러 가지마. 의사가 수술하는데 어디 간호사가 밥을 먹으러 가" 등 간호사들의 인격을 무시하는 차별적 발언을 공공연히 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노조는 명백한 성폭력에 대해 "분위기를 좋게 하려 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일부 의사들의 박약한 성의식 수준이 병원당국의 안이한 인식과 맞물려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지난 99년 이 병원 레지던트 K의사가 한 간호사에게 '간호사 주제에 버릇없이 시키는 대로 일을 안 한다'며 욕설을 퍼붓고 방으로 밀쳐 넘어뜨린 사건, 지난 2001년 치과대 H교수가 간호사를 발로 때리는 등 구타한 사건, 지난해 K의무장이 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 등을 예로 들었다.
첫번째 사건은 '감봉', 나머지는 각각 '서울대 총장의 경고와 보직해임', '보직해임' 등으로 끝났지만 노조는 더 이상 병원내 단순 징계만으로는 문제의 해결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조측이 앞선 K부원장의 발언에 대해 “병원이 무성의한 태도로 사건을 무마·축소하고 경미한 처벌과 재발방지에 대한 대책마련에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에 의사들의 폭행과 성희롱이 반복되고 있다”며 격렬히 성토하는 이유기도 하다.
법적 고소, 인권위 제소, 여성부 진정…“모든 방안 동원할 것”
현재 서울대병원 직원들은 ‘병원내 폭행과 성희롱 근절 및 L교수 해임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사건 진상 규명과 교수직 해임 △인권이 보장되는 직장 내 민주화 조치 △폭력과 성희롱 근절을 위해 병원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요구안을 마련해 놓은 상태.
| ▲ 서울대병원 노조가 직원식당 앞에서 L교수 퇴임과 병원측의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
또 앞으로 병원장과 서울대총장을 상대로 이러한 요구사항을 끝까지 관철시키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특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며 국가인권위 제소나 법적 고소까지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 병원측은 인턴의사에게만 의무적으로 시행하던 성폭력 예방교육을 확대하는 등 직원들을 달랠 만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울대는 대학내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성희롱과 성폭력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서울대 성희롱·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으며, 이 규정 2조 1항에 따르면 성희롱 및 성폭력을 ‘성적 수치심 또는 혐오감을 일으키는 일체의 행위로서, 그 기준은 피해자의 합리적인 주관적 판단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성적행동과 요구 등 언어적, 정신적, 물리적인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