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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칼럼] 한국대학신문
[기고] 통섭의 시대를 위한 대학교육
최재천 / 이화여대 생명과학과 교수
우리가 하는 모든 학문은 다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활동이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진리의 행보는 우리가 엄격하게 그어 놓은 학문의 경계를 존중해주지 않는다. 학문의 구획은 자연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학문이란 진리의 궤적을 추적하기 위해 우리 인간이 편의대로 만든 것이다.

진리는 때로 직선으로 또 때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쳐놓은 학문의 울타리 안에 안주하면서 잠깐 들렸다 가버리는 진리의 그림자를 붙들고 평생 씨름하고 있다. 이제는 진리의 행보를 따라 과감히 그리고 자유롭게 학문의 국경을 넘나들 때가 되었다.

학문의 국경을 넘을 때마다 여권을 검사하는 불편한 과정을 생략하자. 생물학에서 출발한 문제가 경제학과 심리학을 거쳐 물리학과 수학에 정착하기도 하고, 사회학의 문제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행정학과 법학은 물론 기상학과 화학 그리고 음악의 영역까지 이어지는 게 요즘 세상이다.

나는 최근 하버드 대학의 윌슨(Edward Wilson)의 명저 (Consilience(1988))를 <통섭-지식의 대통합>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내놓았다. (Consilience)는 19세기 영국의 자연철학자 휴얼(William Whewell)이 소개한 것을 무려 한 세기 반 후에 윌슨 교수가 새롭게 부활시킨 개념이다. 나는 그걸 ‘통섭(統攝)’이라는 그릇에 담았다. 통섭은 한 마디로 말해 다양한 학문 분야들을 가로지르며 사실과 그 사실에 기초한 이론들을 한데 묶어 공통된 하나의 설명체계를 이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생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전공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것이 절대로 바뀔 수 없는, 하늘이 정해준 또는 유전자에 각인된 운명인 줄 알고 신주단지처럼 떠받들고 산다. 그 운명에 순응해 착실하게 준비만 하면 평생이 보장되는가 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대학에서 전공했던 분야에서 평생 종사하는 사람은 실제로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교육 4년으로 보장 받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제는 우리 인간의 수명이 놀랍도록 길어져 한 가지 일만 하고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사오정’이다 ‘오륙도’다 하며 이 같은 현상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학은, 좀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대학생들은 여전히 안일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금년 초 10년 넘어 몸담았던 서울대의 안락함을 박차고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겼다. 학문의 통섭을 추구하기 위해서 이 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릴 일을 저질렀다. 내가 하는 생물학인 행동학과 생태학은 특별히 통섭적인 접근을 요하는 학문이다. 생명이란 워낙 복합적인 현상이라 여러 분야가 한데 모여 통섭적으로 연구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크고, 깊고, 느린 생물학”을 하기 위해 이화여대에 왔다. 이러한 구상의 구체적인 실현으로 2007년 3월부터 이화여대 대학원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에코과학부가 신설된다. 우리의 생태환경을 보전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연구와 활동에 몸담고 싶은 대학생들에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통섭적인 교육기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더불어 내 연구실 한 구석에는 ‘통섭원(統攝苑)’이라는 일종의 사랑방 같은 공간을 마련했다. 여러 학문에 종사하는 분들이 한데 모여 자유분방한 학문의 굿판을 벌일 수 있는 공간으로 키워갈 생각이다.

통섭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우리 대학생들에게 예전처럼 하나의 학문을 전공하며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싶다. 21세기의 대학은 통섭의 시대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그에 걸맞은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어설픈 복수전공제도 정도가 아니라 철저하게 여러 학문을 넘나들 수 있도록. 이제 대학의 변신은 ‘필요’가 아니라 ‘필수’이다. 대학생 각자의 변신도 절대 예외일 수 없지만.

한국대학신문 칼럼 | 입력 : 06-10-02 오전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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