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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선진당 지상욱]3% 청년의무고용제 도입, 400억원 투자
박사학위 취득에도 월 160여만 원 비정규직 취업 경험
기호 3번 지상욱 자유선진당 서울시장 후보는 그야말로 ‘정치신인’이다. 타 후보들에 비해 정치·행정경험이 부족하지만 유일한 공학 분야 출신 후보임을 내세우며 도시계획 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와의 인연, 스타 심은하 씨와의 결혼 등으로 화제를 모은 후보의 경쟁력도 만만찮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본격적인 선거유세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지상욱 후보를 지난 21일 선거사무실에서 <캠퍼스라이프> 대학생기자단이 단독으로 만나 청년층의 관심이 높은 대학생 관련 공약을 직접 들어보았다.


-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교육 관련 공약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인본교육이 교육철학이다. 배움의 기회가 보장되지 못한 교육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다. 가정형편이 어렵다고 해서 교육의 기회가 박탈돼서는 안된다.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동등한 교육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우리아이교육문화센터’를 각 동마다 설치할 계획이다.

특히 대학의 경쟁력에 관심이 많다. 그간 정부나 대학 모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연구·교육 인프라를 늘리는 데만 경쟁적으로 투자해 왔다. 진정한 대학 경쟁력은 학생들로부터 나온다. 대학생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주거문제 해결, 저렴한 교통비 등 학생복지에 좀더 신경써야 한다. 대학생을 위한 맞춤형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교통요금을 할인주는 등 생활에 부대껴 공부 못하는 상황만은 서울시가 앞장서 해결할 것이다."


- 현재 오세훈 후보와 한명숙 후보의 양강 구도가 형성돼 있다. 지 후보의 선거 전략은.

"오세훈 후보의 경우 경험을 내세우지만 시민의 삶을 황폐화시킨 경험일 뿐이다. 용산참사현장, 가든파이브, 뉴타운을 가보라. 그곳에는 서민의 눈물이 있다. 오세훈 후보는 시장시절 단 한 번도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서울 시민이 피눈물을 흘릴 때 오세훈 시장은 ‘디자인 서울’만 외치고 있었다.

한명숙 후보는 이념 틀에 갇혀있다. 노무현 정권 시절 무능하다고 해서 이미 국민의 심판을 받은 세력의 대표격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패자부활전이 아니다. 한 마디로 오세훈 후보는 형식에 빠진 후보이고 한명숙 후보는 이념에 빠진 후보다. 오세훈 후보는 서울시장이라는 직함을 대권에 나가기 위한 디딤돌로 생각하고 있다. 한명숙 후보는 총리까지 했으니 서울시장이 아닌 대권후보로 나가야 한다. 나의 선거전략은 두 후보가 가진 약점이 없다는 점이다. 참신함을 부각시킬 계획이다."


- 정치 경력이 짧아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많이 알려져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식상하다는 말도 된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만큼 참신하다는 말이다. 앞으로 대중 앞에 자주 나서 소통하는 정치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후보가 되면 핸드폰 번호를 공개할 예정이다. 언제든 대화를 통해 소통하고 하나가 되는 시대를 이끌어가는 서울시장이 되고 싶다."


- 대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취업난이다. 어떤 정책을 구상하고 있나.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에 ‘3% 청년의무고용제’를 실시할 것이다. 점차 대기업, 공공기관 순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고용비율도 매년 3%씩 늘려갈 것이다. 총 서울시 공무원 중 3%인 1천390명을 10급 공무원 수준으로 의무고용하기 위해 4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사회적 기업 담당부서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적 기업 1만개 중 4천 개를 여성과 청년을 위해 마련할 것이다. 청년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장을 마련키 위해 사회적 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 등록금 부담, 취업난 등으로 고통 받는 젊은이들을 위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등록금이나 취업 얘기만 나오면 후배들에게 얼굴을 들기가 부끄럽다. 선배로서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다. 등록금과 취업문제는 개인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나서야 해결해야 하는 사회문제가 됐다.

상아탑이라는 비유가 무색할 정도로 높은 대학 등록금은 학생들을 아르바이트로 내몰아 학습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어렵게 공부를 마치고 나면 취업난이 가로막는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난 98년 귀국했을 당시 직장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음에도 한 연구소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한 난 한 달에 160여만 원을 받았다. 현실의 벽이 아무리 높더라도 꿈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꿈이 있으면 언제든지 도전할 수 있고 도전하다보면 성공할 수 있다."


- 대학생활은 어땠는가.

"80년대의 대학가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낭만과 추억이 있었다. 그때는 축제를 대동제라 했던 것 같은데 사실은 주(酒)동제였다. 술로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던 시기였다.

축제기간 중 낮에는 캠퍼스가 텅텅 비었다가 밤만 되면 왁자지껄해지며 주막들의 불이 하나 둘씩 켜졌다. 주막운영을 위해 동아리와 학과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곤 했다.

당시 대학을 다니던 시절엔 ‘나’는 없고 ‘우리’만 있었던 것 같다.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많이 어울려 다녔고 타 대학 여학생들과 미팅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 부인 심은하 씨는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가.

"가장 가까이에서 내게 단 소리, 쓴 소리를 하는 참모다."


캠퍼스라이프 | 입력 : 10-05-26 오후 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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