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선거가 2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참여정부 임기도 4개월여 남았다는 말이다. 참여정부는 ‘대학 운영의 민주성과 자율성 강화’ ‘학벌타파와 대학서열완화’ 등을 주요 교육정책으로 내세우며 출범했지만 평가는 낙제 수준이다. 올해 초 행정개혁시민연합이 교수, 연구원, 기업인 등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교육 분야에 대한 점수는 100점 만점에 42.3점으로 전체 평균 44.8점을 밑돌았다. 주요 정책 소비자라 할 수 있는 처장급 교수들은 참여정부 고등교육정책을 어떻게 평가할까? ‘자율화’를 중심으로 들어봤다.
정원조정·교육과정 등 입시 외에도 풀어야 할 과제 많아
“요즘 교육부가 무슨 힘이 있느냐. 거의 다 자율로 바뀌지 않았느냐.” 교육부 직원들을 만나보면 오히려 이런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교육부는 대학자율화위원회를 꾸려 2004년 63건의 규제를 완화한 데 이어 지난 8월에도 추가로 33가지 규제를 풀겠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분야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의한 총 정원 제한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정원도 교육여건만 갖추면 늘릴 수 있다.
대학 현장의 체감온도는 여전히 낮다. 최근까지 기획조정처장을 지낸 임우영 한국외대 교수는 “일일이 허가나 승인을 받던 데서 보고만 하면 되는 것으로 바뀐 게 많다”면서도 “여전히 여러 규제가 많다”고 평가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는 ‘학생 선발권’만이 아니다. 박승철 성균관대 교무처장은 “수치상으로는 자율화가 늘어난 게 사실이지만 근본적·핵심적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규제를 풀지 않고 있다”며 “정원 조정도 자율화가 확대되어야 할 대표적인 과제”라고 지적했다.
박 처장은 “한때는 학부 정원을 줄여 대학원을 늘리라고 했지만 지금은 학부를 줄이는 대신 대학원을 늘리는 게 불가능하다”며 “‘대학원 질 관리’라는 교육부 말도 일리가 있지만 질은 교육부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관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이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예상하지 못했던 규제를 발견하기도 한다. 황규호 이화여대 입학처장은 “새로운 형태의 교육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할 때 교육부가 안 된다고 해서 좌절되는 경우가 많다”며 “왜 이런 것까지 허락을 받아야 되는지 참 의문스럽다”라고 말했다.
임우영 교수는 “지난 4월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내년부터 유엔 부설 유엔평화대학을 개설키로 협정을 맺었지만 최근에야 교육부 허가가 났다”며 “빨리빨리 결정해야 할 사항이 있고, 관여해야 할 것과 안 해야 할 사항이 있는데, 말만 ‘자율화’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진배 연세대 연구처장은 “완전 자율은 어렵다 해도 지금보다 더 큰 확대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며 “처음부터 완벽한 것은 없다. 자율화 역시 진행과정에서 완벽해지는 것이다. 처음에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고 무서워하면 결국 아무 것도 못 한다”고 지적했다.
재정지원 미끼로 대학 압박, ‘부익부 빈익빈’ 심화
특히 참여정부 들어 재정지원을 수단으로 한 대학 통제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 대학가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박창희 숭실대 대외협력처장은 “대학 현장에서는 정부 지침에 맞춰야 지원금을 탈 수 있다는 염려를 많이 한다. 암암리에 제약을 많이 느낀다”라고 말했다.
황규호 처장은 “대학을 정부 정책목표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재정지원과 연계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참여정부 들어서는 더욱 드러내놓고 개입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평가를 통한 차등 지원’은 대학 자율성만 후퇴시킨 것이 아니다. ‘선택과 집중’을 표방했지만 거꾸로 ‘일부 대학 나눠먹기’와 ‘부익부 빈익빈 현상’만 부추겼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임우영 교수는 “재정이 넉넉하고 기본 인프라가 잘 갖춰진 일부 ‘메이저’ 대학은 이미 교육부가 요구하는 기초요건을 충족하고 있기 때문에 100점 만점에 30점은 안고 출발한다”며 “되는 대학만 되고 안 되는 대학은 안 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선택과 집중’을 한다면 대학 내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이뤄져야 하는데 지원받던 대학만 선정되다 보니 그 대학들은 결국 ‘백화점’이 되어 버린다. 소위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는 ‘메이저’ 대학 중에 정말 ‘선택과 집중’이 된 곳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박창희 처장은 “대학마다 규모나 재단 상황에 따라 기본 인프라가 똑같지 않은데 정량적,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해서 재정지원에 차별성을 둔다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선택과 집중’으로 가되 대학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방향성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박진배 처장은 “한쪽에서는 균형발전을 추진해왔기 때문에 그럴수록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생각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방향은 옳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박승철 처장 역시 “기대하는 만큼의 발전적 방향으로 못 나갈 때 정부가 가지고 있는 권한 중 하나가 ‘재정’인데 ‘떡 나줘 주듯’ 해서는 안 된다. 발전적으로 잘 하는 데에는 그만큼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처장은 그러나 “SCI 논문 수나 세계대학 순위 상승이 대학 스스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것인지, 교육부가 정책적으로 뒷받침한 결과인지에 대해서는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