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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불정책' 자율교육이냐? 평등교육이냐?
미국 '공공성 기반 자율규제' 선행으로 정성평가 정립
프랑스 '공공인프라' 바탕에 자율교육 기조 양립 노력

정운찬 총리의 잇단 발언으로 3불정책(고교등급제·대학별고사·기여입학제) 폐지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보조를 맞춰 김한중 연세대 총장, 이기수 고려대 총장도 “3불 폐지 검토”로 화답했다. 대학가 반응은 엇갈린다. “3불 폐지 논의를 시작할 만하다”라는 입장과 “대학 서열이 확고한 현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맞선다. 쟁점은 ‘자율교육’의 수월성을 추구하느냐, ‘평등교육’의 마지노선을 지키느냐로 귀결된다.

문제는 국내의 3불 논쟁이 ‘양자택일’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강하다는 데 있다. 3불 관련 입장 표명이 곧 자율교육과 평등교육의 ‘최전선’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로 눈길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의외로 양자의 간극이 멀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율교육의 선두주자 미국 대학입시가 3불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가 하면, 평등교육의 표상인 프랑스 대학입시에는 3불 원칙과 배치되는 제도가 보이기도 한다.

■3불 없는 미국? ‘공공성 전제’가 빠졌다


국내 대입제도의 롤모델은 미국이다. 문민정부 시절인 1995년 발표돼 현행 대입정책의 골격을 이루는 5·31 교육개혁안이 미국식 모델을 따랐다. 대학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강화하고, 평가를 통한 경쟁체제를 확립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한국적 상황’을 고려해 도입된 게 3불정책이라 봐도 무방하다. 3불 폐지론은 이 같은 상황을 지적한다. 미국식 모델의 대입정책을 채택했으면서도 그와 반대되는 성향의 3불 시행으로 ‘자율교육’의 본질과 효율성이 반감된다는 것이다.

미국 대입제도의 요체는 정성평가 강화로 집약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펴낸 ‘해외 대학입학제도 실태 조사 연구’(2007)에 따르면, 미국은 수험생의 시험 성적 외에도 인성, 가정환경, 지역사회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정량평가가 적용되는 시험 성적을 제외한 요소들은 정성평가의 대상이다. 게다가 정량평가의 기준도 엄격하지 않다. 표준오차 범위 내에서 일정 점수 이상이면 같은 등급을 매기는 방식. 국내에서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데 방해된다”며 논란이 됐던 수능등급제와 비슷한 개념인 셈이다.

속내를 살펴보면 “미국식 모델=3불 폐지”라는 등식이 깨진다. 고교등급제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고교등급제 개념은 국내와 다르다. 등급이 높은 명문고에 가산점을 주기도 하지만, 등급이 낮은 고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경우도 있다. 정성평가에 따른 ‘이중 적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전형 요소를 평가한다는 전제로 별도의 대학별고사를 치르지 않는 점, 인성·운동능력·동문 등 다양한 잣대로 기여입학제를 시행하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공공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성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 대학은 실질적으로 3불을 시행한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케네디 대통령 때 소수자 우대정책이 통과돼 대입에 지역별·계층별·인종별 할당 원칙이 뚜렷하고, 내신 성적도 50% 이상 반영한다. 대학별고사가 따로 없으며 SAT 성적을 백분위 또는 점수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이 학생 선발에 관한 자율권을 보장받긴 했지만,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됐음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입정책을 받아들이는 국민정서의 차이에도 있다. 대학에 학생 선발 자율권을 주고 정성평가로 진행되는 미국식 대입정책이 나름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다. 김한중 연세대 총장은 “미국의 경우 아이비리그 대학에 합격하고, 그보다 하위 대학에 불합격해도 이의제기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는 시험 성적을 계량화해 일렬로 세워 정원에 맞춰 자르는 방식으로 선발하지 않으면 나라가 뒤집히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결국 국민들이 대입제도에 어느 정도의 ‘불투명성’을 인정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대학 위 대학’ 엘리트 교육 강한 프랑스


최근 국내에서는 무상급식이 교육감 선거 이슈로 조명받고 있다. 프랑스로 대표되는 무상교육의 맥락에서 쟁점이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프랑스 내부에서는 교육의 수월성 강화, 경쟁력 제고 움직임이 일고 있다. 프랑스 대학들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르코지 정권은 △대학 자율권 보장 제도화 △대학교육 관련 예산 확대 △그랑제콜(Grandes Ecoles) 집중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지난 2007년 통과시켰다. 기존의 평등교육에서 수월성 중심 교육으로 체질 개선에 주력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일반대학(Universite)과 다른 ‘대학 위의 대학’ 그랑제콜의 강화에 나선 점이 눈에 띈다. 프랑스 대학은 일반대학과 그랑제콜로 이원화된 학제로 운영된다.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t)’로는 일반대학에만 입학할 수 있으며, 2~3년간의 그랑제콜 준비과정(Classe Preparatoire)을 거쳐 과목별 자격시험(콩쿠르)에 합격해야 그랑제콜에 입학할 수 있다. 그랑제콜은 국가경영을 주도하는 소수정예 엘리트 양성기관으로, 에콜 노르말(고등사범학교), 에콜 폴리테크닉(파리공과대학), ENA(국립행정학교), ESSEC(파리경영대학) 등의 그랑제콜을 졸업하면 파격적 대우와 함께 명예와 출세가 보장된다.

그랑제콜은 3불의 반대편에 서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그랑제콜을 타깃으로 삼아 교육이 계층 고착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랑제콜의 자격시험은 대학별고사와 유사하고, 무상운영되는 일반대학과 달리 연 1만 유로(약 1300만원) 가량의 학비를 내야 한다. 고교등급제와 관련해서도 피에르 타피 ESSEC 총장은 “학생의 지적 능력을 선별해 뽑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대부분 기여입학제는 시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자율교육을 중시하는 영국도 마찬가지로, 기여입학제에 대한 거부반응은 유럽의 전반적 풍토로 볼 수 있다.

사실 프랑스 대입제도의 ‘기본’인 바칼로레아의 시험일정도 만만찮다. 총 8계열 26종으로 세분화돼 있고, 1주일에 걸쳐 예비고사·필기고사·구술고사 등을 치러야 한다. 필기와 회화로 진행되는 외국어 시험을 비롯해 텍스트 논평·논술과 자유 작문, 심층면접이 진행된다. 대부분 시험이 논술 형태로 출제되고, 주관식 절대평가로 심사한다.

이에 2006년, 당시 교육부 장관이던 프랑수아 피용 총리는 바칼로레아 개혁안을 내놨다. 고교 3학년에게 실시되는 개인별 졸업논문(TPE)을 없애고 선택과목 수를 줄인다는 내용이었다. 12개 과목을 6개로 줄여 학생들의 부담을 덜고, 시험 관련 비용을 아껴 교육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취지였다. 근래 교육과학기술부의 행보와 유사한 모습이다. 평등교육의 기본 인프라 위에 대입 절차 간소화, 그랑제콜 강화 등 자율교육에서 추구하는 목표 또한 절충시키고 있는 것이다.

■3불 찬·반, 지엽적 쟁점에 갇히지 말아야


미국과 프랑스의 대입제도 변화의 역사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애당초 자율교육을 표방한 미국은 현재의 국내 대학들처럼 시험 성적에 대한 정량평가를 중시했다. 그러나 이후 사회통합과 다양성·창의성 교육 등을 목표로, 점차 정성평가에 기반한 대입 자율규제의 틀이 형성됐다. 프랑스 역시 의무교육 개념을 확립한 토대 위에 엘리트 양성, 교육 수월성과 효율성 등 자율교육의 기조를 양립시키고 있다.

지방대 학생들을 미국 유수의 명문대학원에 진학시켜 화제가 된 조명석 강릉원주대 교수는 “미국 유명대학원보다 국내 명문대학원에 진학시키는 게 훨씬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학부와 대학원이란 차이는 있지만, 오히려 미국이 고교등급제 등에 개방적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3불 폐지를 포함한 대입 자율화 논의에 앞서, 자율교육과 평등교육의 간극이 좁혀지면서 ‘합(合)’의 과정을 모색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김봉구 기자 (paper81@unn.net) | 입력 : 10-03-11 오전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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