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부는 여풍(女風)이 만만찮다. 각종 대학가 이슈의 앞자리에 여대생들이 서 있고, 사회 진출을 비롯한 여러 통계지표에서도 여대생들의 약진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 같은 여풍이 곧 ‘여대’의 발전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국내 여대는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앞서 몇몇 여대가 남녀공학으로 전환했고,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본지는 덕성여대와 공동기획으로 여대의 특성화된 교육 방향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향후 여대의 독자적 발전전략에 대해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2010 여대로 살아남기’
< 글 싣는 순서 >
(1) 전면에 나서는 여대생들 많아진다
(2) 여대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3) 여대문화가 여학생들을 키운다
■ 여대생 숫자 늘어났다 =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82.4%)이 남학생(81.6%)을 앞질렀다. 20여 년 전만 해도 큰 격차로 벌어져 있던 남녀간 대학 진학률이 계속해 좁혀지다가 처음으로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을 추월한 것이다.
숫자가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소수, 약자였던 여대생들의 비중도 커지고 있다. 연세대 한 관계자는 “최근 대학들의 학위수여식 풍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이 관계자는 “단과대학별로 차이가 있지만, 여대생들이 주로 ‘우등졸업’을 차지한다”며 “평균적으로 여학생들이 남학생에 비해 성적이 좋다. 여대생 숫자 자체가 늘어난 영향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여대생들의 활동 증가는 그대로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로 이어진다. 각종 통계지표가 이를 대변해준다. 최근 외무고시 합격자의 50% 이상을 여성이 차지하는가 하면, 신임 법관 임명자의 70% 이상이 여성이었다.
대학 생활에서도 여대생들이 앞장서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각 대학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총학생회장을 여대생이 맡는 사례가 많아진 것도 꼽을 수 있다. 이른바 SKY 대학에서 여자 총학생회장이 나온 것은 2000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정나리 씨가 처음. 10년이 지난 지금은 양대 사학으로 꼽히는 연세대와 고려대를 비롯해 많은 여자 총학생회장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 속에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각종 영역에 여대생들이 진출하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최근에는 국방부가 학군사관(ROTC)으로 여대생 60여 명을 선발키로 하고 올해부터 시범 시행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국방부의 이런 방침은 그간 여대생들이 꾸준히 군에 진출해온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올해 12명의 여군 사관 후보에 합격자를 배출한 영남대 안옥희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장은 “취업난은 여대생들에게 더 심각한 문제”라며 “여군 장교가 전문직을 희망하는 여대생들 사이에서 인기직업으로 떠올랐다. 수년째 여군 사관 선발시험의 경쟁률이 오를 만큼 여대생들이 많이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 여대 동문 파워 증가 = 여대생들의 입지가 확대되면서 여대의 동문 파워 역시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일례로 이들 여대들은 법학전문대학원·의학전문대학원 유치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일반 대학에 비해 여대는 동문의 힘이 약하다는 게 그간의 사회적 평가였으나,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확대되면서 이 같은 모양새도 바뀌고 있는 셈이다.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배출한 웰즐리대(Wellesley College)는 미국의 대표적 여대다. 박사과정이 설치되지 않았지만 최고 수준의 학부중심대학으로 손꼽힌다. 전·현직 여성 국무장관들을 길러내면서 미국 유수의 대학 못지않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여대들도 각각의 강점 분야에서 동문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쌓아가고 있다. 덕성여대는 최근 수년간 연이어 약사 국가고시 수석 합격자를 배출해왔다. 지난해부터는 Pre-Pharm·Med 학과를 신설해 약학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이 같은 전통 덕에 덕성여대 약학대학 동문회는 약학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여대 중에선 국제적으로도 손꼽히는 규모의 이화여대는 여느 명문대 못지 않은 동문 파워를 지닌 여대의 대표적 케이스라 할 만하다. 첫 여성 국무총리를 역임한 한명숙 전 총리를 비롯해 졸업생들이 명문 일반 대학의 여대생들보다도 높은 비율로 사회 요직에 진출해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이경숙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오랫동안 모교인 숙명여대 총장을 지냈다. 동문 인사가 사회적 요직을 맡으면서 대학 위상도 함께 올라간 경우로 평가된다. 최근엔 학제구조 개편, 파격적 장학 혜택 실시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 여대는 줄어드는 추세 = 아이러니컬한 점은 여대생의 증가와 여성의 활동 영역 확대에 비해 여대는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라는 데 있다. 지난달에는 성신여대가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명칭만 일반 대학들과 같이 바꾸자는 논의가 와전된 것으로 확인됐지만, ‘여대’ 브랜드의 효용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을 대변하기도 했다.
실제로 여대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되거나 통합된 사례는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효성여대가 지난 1994년 대구가톨릭대로 바뀌면서 남녀공학이 됐고, 1995년에는 성심여대가 가톨릭대에 흡수되는 형식으로 통합됐다. 이후 상명여대가 상명대로, 부산여대가 신라대로 바뀌며 남녀공학 체제로 전환했다. 현재 4년제 여대는 덕성·동덕·서울·성신·숙명·이화여대에 지방에선 유일하게 광주여대가 남아있다.
당초 여대는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남녀 불평등 현상이 개선되고, 사회적 인식 역시 개방적으로 바뀌면서 수요자가 줄어드는 현상을 겪었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함께 남녀 경쟁에서 여학생들이 밀리지 않기 때문에 ‘여대’만의 장점이 불투명해진 점이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이 같은 현상은 일반 대학 내에선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과 부합된다. 대학 내부의 상대적 소수자인 여학생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총학생회와 별도로 설치됐던 총여학생회가 여학생들의 증가와 영역 확대에 따라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여대 역시 존재 의의와 설립 취지를 인정하면서도, 여학생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되레 입지가 좁아지는 형국이다.
때문에 내년에 서울여대에서 개최될 예정인 ‘세계 여자대학 총장 포럼’에서도 주요 안건은 ‘세계 여대가 처한 환경 속에서의 비전’이 다뤄질 전망이다. 국제적으로도 여대가 계속 줄어드는 추세인 만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조성돼 있다.
이와 관련해 박남희 전국여교수연합회장(경북대 교수)은 “과거 조직사회가 성역할 분담을 요구한 반면 최근은 성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공동분담’의 시대로 가는 과도기”라며 “여학생들 스스로도 남학생들과 어우러져 같이 경쟁하고 서로 배우는 것을 선호한다. 때문에 남녀공학 진학을 택하는 경우가 많고, 여대의 입지도 좁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그러나 여대가 남녀공학에 비해 여대생들을 ‘여성 리더’로 길러주는 면도 있기 때문에 없어선 안 될 존재”라며 “과거에 비해 여대의 수요가 줄었다 해서 무조건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신있게 여성 리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 시행하는 여대의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