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 성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개선, 남녀평등 의식의 제고. 최근 트렌드는 여성의 권익 신장과 활동 증가로 요약된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성 교육에 집중해온 여대가 큰 역할을 맡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남녀공학의 여학생 비율이 높아지고 있음은 여대의 입지가 좁아지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 여대도 이런 ‘위기론’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를 ‘발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목소리 역시 같이 나온다. 시대는 바뀌어도 여대가 감당해야 할 여성 인재 양성의 몫이 있다는 지적이다.
‘2010 여대로 살아남기’
< 글 싣는 순서 >
(1) 전면에 나서는 여대생들 많아진다
(2) 여대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3) 여대문화가 여학생들을 키운다
■ 여대 “위기를 기회로” 탈바꿈 = 여대의 위기론은 이미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남녀공학으로 전환한 바 있는 몇몇 여대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처음 여대의 등장 취지 자체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는 여성들을 타깃으로 삼았던 이유도 있다. 예전에 비해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교육기회를 제공받는 만큼 여대 정체성이 약해진 것이다.
여대 스스로도 이 같은 위기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덕성여대 양정호 발전정책실장은 “그동안 여대는 여성의 사회 진출 욕구나 권익 신장 등이 대두되면서 제 역할을 했다. 여성에 대한 특별한 제약이 없는 지금 여대의 존재 필요성에 대해 물음표가 따라붙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여대 이미식 기획정보처장도 “여학생들이 여대를 다소 기피하는 현상이 발견된다.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위기의 인정이 곧 여대 교육이 무용하다거나 여대 브랜드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위기를 정확히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발전의 계기가 된다고 강조한다. 바뀌어야 한다는 절박함, 위기를 기회로 탈바꿈시키는 노력 속에 여대의 미래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변화의 첫 단추는 여대만의 경쟁력을 재확인하는 데 있다. 남녀공학을 졸업한 여학생과 여대를 졸업한 여대생의 차이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여성 스스로 주체가 돼야 하는 여대의 특수한 상황과 교육 수요자가 100% 여성임을 감안한 ‘맞춤형’ 교육 시스템이 그것이다.
서울대 출신의 한 국립대 여교수는 “남녀공학은 교수들이 은연중에 여학생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면서 “대학 입학 점수는 다소 낮더라도, 여학생들에게만 포커스를 맞춘 ‘여대 교육’을 받은 여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칭찬과 배려를 중시하는 총체적 여대 문화나 인프라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도 했다.
■ 특색있는 여대 교육 프로그램 = 여대의 경쟁력은 여성에게 적합한 교육 환경을 마련해주는 데서 비롯된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의 차이다. 여학생에게만 집중되는 시스템과 인프라의 효율성이 남녀공학에 비해 높은 것은 당연지사. 기본적으로 여학생이 주체가 돼 모든 일을 해결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여기에 여성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줄 것을 바라며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여대의 분위기 자체가 커다란 차이점으로 꼽힌다.
세계 최대 규모 여대인 이화여대는 이런 풍토가 잘 마련된 여대다. 개별 여대의 세부 분야별 특성화 계획이나 발전 분야를 뛰어넘는 ‘양성평등’의 소명감이 일상적 언행이나 교과 커리큘럼 곳곳에 묻어난다. 기존의 남성 중심 사회구조에 도전해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 각종 문화·의식 형성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지은희 총장이 앞장서 ‘파트너십’을 주창해온 덕성여대도 눈에 띈다. 이화여대가 남성 리더십 못지않은 ‘여성 리더십’을 추구한다면, 덕성여대는 “수직이 아닌 수평”을 지향하는 파트너십에 주목한다. 여성이 보다 잘할 수 있는 이해·동행·소통·나눔 같은 키워드를 바탕으로 커리큘럼을 만들어 이수하면 인증을 받는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덕성여대가 전통적으로 강점을 보인 세미나 프로그램과 연계해 소통·기획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서울여대는 창학 때부터 기숙형 인성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독특한 인성 강화 교육 시스템인 ‘바롬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지난 6월 ‘학부 선진화 선도대학 지원사업’에 선정된 것 역시 이 프로그램의 성과를 입증해준다. 강의 교과목을 포트폴리오로 작성, 체계적 교수·학생 관리의 틀을 갖춘 데 이어 학과별 ‘전공 로드맵’을 만들어 진로 탐색·경력 관리 등 전반적 학부교육의 질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주력했다.
숙명여대는 ‘문제기반학습’(PBL) 개념을 도입해 눈길을 끈다. 전공 교과목 수업에서 그룹별로 나눠 문제 대처 방안을 찾아내게끔 하는 방식이다. 이화여대도 졸업생과 재학생을 맨투맨으로 잇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모두 여성의 친화력과 관계맺음 방식에 터해 시행되는 ‘여대 맞춤형 교육’이라 할 만하다.
남녀공학 전환 대학 살펴보니…
앞서 여대였다가 남녀공학으로 전환한 대학들의 변(辯)은 무엇일까. 이들 대학의 목소리는 한 가지로 모아진다. “시대적 추세에 따라 이제는 ‘여대’ 브랜드만으로 살아남기 쉽지 않다”는 게다. 여학생들의 여대 지원율이 떨어지는 흐름에 입학자원 감소까지 겹친 탓이다. 남녀공학의 경우 대학 동문 네트워크가 보다 강화될 것이란 기대감 또한 깔려있다.
대구가톨릭대(전 효성여대) 우형택 교무처장은 “아직 남성과 여성이 주로 진출하는 분야가 다른 게 현실”이라며 “남녀공학에서 함께 경쟁하는 게 남녀 불문하고 경쟁력이 올라가고 네트워크도 넓어지는 측면이 있다. 대학 차원에서도 동문이나 학과 범위가 확대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신라대(전 부산여대) 박재욱 기획처장도 “여대로 남아있었다면 입학자원 모집에서 불리했을 것”이라며 “시대적 트렌드에 발맞춰 전환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섣불리 여대 존속과 남녀공학 전환의 성패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남녀공학 전환 대학들은 기존 여대가 갖고 있던 전통 브랜드와 교육 내용의 연속성을 포기한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여대만의 교육 특성화가 강점을 지닌 사실 또한 짚고 넘어갔다. 1990년대 중·후반 잇따라 여대가 남녀공학으로 바뀐 이후 2000년대 들어서 추가 전환 움직임이 없는 것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박재욱 처장은 “부산여대가 갖고 있던 사회적 평판이나 브랜드를 잃은 것은 아쉽다”고 밝혔다. 그는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며 교명을 연관성 없는 이름으로 바꿨기 때문”이라며 “상명대 같은 경우 상명여대에서 전환한 케이스라 덜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형택 처장도 “처음에는 효성여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대구효성가톨릭대’로 이름을 정했다가 웬만큼 정착이 된 후 ‘대구가톨릭대’로 다시 교명을 변경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덕성여대 양정호 발전정책실장은 “학령인구는 줄어드는데 여대는 그중 절반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교육의 역사와 전통도 중요하다. 그간 여성 인재 육성에 초점을 맞춰왔는데 이를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서울여대 이미식 기획정보처장도 “여성 교육에 여대만의 장점이 많고, 각 여대마다 나름의 특색도 있다”면서 “여대간 교육 프로그램 MOU 체결이나 상호 벤치마킹 등 여대가 가진 기존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대간 경쟁보다 협력이 필요한 때”
[인터뷰]양정호 덕성여대 발전정책실장
- 여대가 갖는 장점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나요.
“아무래도 남녀공학은 남녀 성역할 구분이 남아있죠. 어떤 일을 기획할 때 남학생이 주도한다든지 하는 형태로요. 반면 여대는 학과 일이건 단과대학 일이건 여학생들이 주도해 일을 해나가잖아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사회에 나가서도 자신감을 갖고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해나가려는 자세가 몸에 밴다고 할까요. 그런 장점 때문에 비슷한 입학점수를 받고도 여대를 선택해 오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 그렇지만 여대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말이 많습니다.
“여학생들의 여대 선호도 감소를 비롯한 입학자원 축소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현실적 문제 때문에 남녀공학으로 전환한 여대들도 있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기는 이른 것 같아요. 여대의 단점을 덮기 위해 장점을 포기한 것이라 볼 수도 있는데요. 현재로선 기존의 장점들을 극대화시키고, 시대 변화에 맞춰 특성화 전략을 추진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간 여대가 일정 역할을 담당해온 맞춤형 여성 인재 양성을 계속하는 것이 전체 교육의 다양성 관점에서도 바람직하구요.”
- 그래서 여대간 경쟁도 중요하지만 협력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화여대를 제외하면 사실 여대들이 규모가 그리 큰 편이 아니거든요. 대학원을 공동으로 운영한다든지 학회지를 함께 펴낸다든지 하는 얘기는 단과대학 중심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여학생들의 관심이 덜한 교육·연구 분야는 힘을 합쳐 활로를 열고, 여학생들이 강점이 있는 특성화 분야에 협력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죠. 마침 서울 지역 여대들은 지역적으로도 가깝고, 정보 교환도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여대간 협력활동이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 덕성여대의 경우 ‘파트너십’ 중점교육이 특히 눈에 띕니다.
“예전의 남녀 문제는 우열의 문제였죠.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게 목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달라요. 우열이 아닌 ‘차이’의 문제, 즉 여성과 남성의 다름을 인정하고 특유의 장점을 어떻게 살리느냐가 쟁점입니다. 남성적 관점에서 보면 리더를 기르는 게 중요하죠. 반면에 여성은 남성에 비해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나거든요. 그래서 파트너십을 특화하는 맞춤식 교육에 나선 겁니다. 융합교과목과 연계과목을 개발하고, 인증제를 도입해 내년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입니다.”